알제리인 학살 60주기..마크롱, "용서할 수 없는 범죄" 국가차원 사과·배상은 침묵

윤기은 기자 입력 2021. 10. 17.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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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알제리 학살 사건 60주기를 하루 앞둔 16일(현지시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파리 베종다리에 찾아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파리|로이터연합뉴스


프랑스 경찰들이 독립을 요구하던 알제리인 다수를 학살한 파리 대학살 사건 60주기를 앞두고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학살 사건에 대해 “용서할 수 없는 범죄”라고 표명했다. 그동안 프랑스 대통령들이 해온 유감 표명 가운데 가장 강한 표현이지만, 일부 인권단체들은 여전히 국가 차원의 공식 사과와 배상문제가 언급되지 않았다며 비판했다.

프랑스 엘리제 대통령궁은 16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마크롱 대통령은 모리스 파퐁 당시 파리 경찰청장 하에 저질러진 범죄 행위가 용서할 수 없는 범죄였다는 사실을 인정했다”고 밝혔다. 엘리제궁은 “알제리 시위대 진압은 무자비하고, 폭력적이며, 피를 불렀다”며 “1만2000명의 알제인들이 체포되고 많은 이가 다쳤으며 수십명이 숨졌다”고 언급했다.

로이터통신은 알제리인 파리 학살에 대한 마크롱 대통령의 발언이 프랑스 대통령의 유감 표명중 가장 강도 높다고 평가했다. 이날 마크롱 대통령은 학살 피해자들의 시신이 수습된 파리 센강 베종 다리를 찾아가 희생자를 추모했다.

하지만 마크롱 대통령이 이번 성명에서도 파리 학살에 대해 프랑스 국가 차원의 사과와 배상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왔다. 반인종차별 시민단체 아프리카93은 “학살은 파퐁 전 청장이 혼자 한 일이 아니다. 사람들이 고문과 학살을 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프랑스 정부) 고위층도 알고 있었다”고 AFP통신에 말했다. 알제리 언론인 카디자 벵게나는 트위터에 “학살 사건에 대한 마크롱의 인식이 충분하지 않다”며 “센강에 던져진 사람들의 수는 오늘날까지 국가 기밀로 남아 있고, 사과는 멀기만 하다”고 밝혔다.

파리 학살은 알제리 독립전쟁이 일어나고 있던 1961년 파리 경찰이 통행금지에 항의하는 알제리인 시위자들을 사살하고 일부 시신을 센강에 유기한 사건이다. 당시 프랑스 경찰은 시위대에 총을 발포하기에 이르렀고, 12세 소년을 비롯해 알제리인 200명 이상이 숨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그동은 학살 사건을 계속 은폐하다가 자크 시라크 대통령 재임 당시인 1998년에야 알제리인 40여명의 사망을 처음 인정했다. 참사가 벌어진 지 40년 뒤인 2001년 공식 추모 행사가 처음 열렸다. 하지만 아직도 당시 사건과 관련된 프랑스 정부의 일부 기록은 비공개로 남아있다.

최근 알제리와 프랑스는 마크롱 대통령의 식민지 관련 발언 이후 외교적 갈등도 빚어왔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파리 엘리제궁에서 알제리 독립전쟁 당시 프랑스 편에서 싸운 알제리인들의 후손들을 불러모아 놓고 “알제리 지배층이 다시 쓰는 식민지 시절 역사에는 프랑스에 대한 적대감이 기본으로 깔려 있다”고 발언했다. 알제리 정부는 이에 반발해 파리 주재 자국 대사를 소환하고 프랑스 군용기의 자국 영공 통과를 불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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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3월 과거 프랑스 식민 시절 프랑스군이 알제리 독립운동가를 납치해 고문하고 살해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하고, 알제리 현지에서 자행된 프랑스군의 잔혹 행위 조사를 위한 진실위원회 구성에 동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에도 과거 유혈진압에 대한 국가 차원의 공식 배상을 거부해 비판받았다.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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