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 정상회의에 미얀마 군부 인사 못 간다 ..약속 안 지킨 군정에 이웃국가들 등 돌려

박은하 기자 2021. 10. 17.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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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 군부 최고사령관 양곤|AP연합뉴스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ASEAN)이 이달 말 열리는 정상회의에 미얀마 군사정부 지도자를 참석시키지 않기로 했다. 회원국 내정 불간섭 원칙을 갖고 있는 아세안으로서는 이례적 조치이다. 이웃국가로부터도 인정을 받지 못한 미얀마 군정의 입지가 크게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아세안은 정상회의에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 군부 최고사령관 대신 비정치적 대표를 초대하기로 합의했다고 의장국 브루나이가 16일 밝혔다. 싱가포르 외교부도 같은날 성명을 내고 “미얀마의 군부 지도자 참석을 배제하기로 한 것은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아세안의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했다”고 밝혔다. 전날 아세안 회원국들은 외교장관 화상회의를 열고 흘라잉 사령관의 참석 여부에 대해 논의했다.

미얀마 군정의 정통성 인정과 직결된 조치로 아세안의 결정은 국제사회의 관심을 받아 왔다. 아세안은 전통적으로 회원국을 압박하거나 내정에 간섭하는 것을 꺼려 왔다. 그러나 미얀마 군정이 쿠데타로 촉발된 유혈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아세안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자 회원국들은 경고를 택했다.

아세안은 지난 4월 미얀마 군부 쿠데타로 인한 유혈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폭력 중단, 특사 파견 등 5개 사항에 대한 합의를 채택했다. 당시에는 흘라잉 사령관도 회의에 참석했다. 그러나 군경에 의한 학살 등 유혈사태는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미얀마 인권단체인 정치범지원연합(AAPP)에 따르면 지난 2월 이후 최근까지 최소 민간인 1178명이 군경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시민들의 저항이 계속 이어지고 있으며, 미얀마 군정 역시 국가를 온전히 통치하지 못하고 있다고 인정했다.

특히 최근 에리완 유소프 아세안 특사(브루나이 제2 외무장관)가 미얀마 방문시 쿠데타 직후부터 가택 연금 중인 아웅산 수지 국가고문을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군정이 이를 거부하면서 아세안의 반감이 증폭됐다. 아세안 외교장관 화상회의에서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필리핀 등이 미얀마 군정의 약속 불이행을 문제 삼아 흘라잉 사령관의 회의 참석 배제를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국가들은 미얀마의 반 쿠데타 진영이 결성한 국민통합정부(NUG) 지도자를 정상회의에 참석하도록 하자고 요구했다고 전해졌다.

미얀마 군정은 외새 개입에 의한 것이라고 반발했다. 조 모 툰 대변인은 “외세 개입은 여기서도 볼 수 있다“며 “이전에도 일부 (아세안) 국가들의 사절들이 미국 국무부와 접촉했고, 유럽연합(EU)로부터 압력을 받았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군부는 “첫 정상회의는 정부나 합법적 정당 관계자가 참석해 신뢰를 쌓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아세안의 결정으로 미얀마 군정은 국제사회에서의 입지가 크게 좁아졌다. 중국과 러시아가 미얀마 군정을 인정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미얀마 군정에 실질적으로 명분이 된 것은 태국 등 아세안 국가들이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태국의 쿠데타 사례와 아세안 국가들의 내정불간섭 원칙이 미얀마 군정에도 방패가 돼 왔던 것이다. 엄은희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미얀마 문제는 미·중갈등의 맥락이 아니라 지역적 맥락 속에서 벌어져 왔다. 중국의 태도 역시 군정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기보다 방관하며 아세안이 해결해주기를 바라는 것에 가까웠다”며 “이번 조치는 다자압력 속에서 미얀마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미얀마 문제를 두고 다소 뒤늦게 나선 아세안 역시 자존심을 지키게 됐다.

한국과 EU 등 8개국은 아세안의 이번 조치를 지지한다고 발표했다. 유엔은 미얀마 군정이 임명한 대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아세안 정상회의는 오는 26~28일 화상으로 열린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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