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면은 둥글고 진라면은 네모인 이유
장단점 갈리지만 비용 차이 거의 없어
[食스토리]는 평소 우리가 먹고 마시는 다양한 음식들과 제품, 약(藥) 등의 뒷이야기들을 들려드리는 코너입니다. 음식과 제품이 탄생하게 된 배경부터 모르고 지나쳤던 먹는 것과 관련된 모든 스토리들을 풀어냅니다. 읽다보면 어느 새 음식과 식품 스토리텔러가 돼있으실 겁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편집자]
한국인의 라면 사랑은 압도적 입니다. 세계즉석라면협회에 따르면 한국인 1명은 1년간 75.6개의 라면을 먹는다고 합니다. 1인당 연간 55.3개를 먹는 베트남, 44.5개를 먹는 일본을 아득히 따돌리는 압도적 1위죠.
저도 라면을 즐겨 먹습니다. 밥을 하기 귀찮고, 피곤할 때 5분 정도만 움직여도 편하게 식사를 해결할 수 있어 좋습니다. 때로는 라면의 개발자 안도 모모후쿠가 노벨상을 받아야 했다는 상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라면을 먹다 보면 문득 궁금해집니다. 봉지 라면의 형태는 2가지 입니다. 신라면은 둥글고, 진라면은 네모죠. 컵라면은 용기 모양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지만, 같은 봉지 모양인데 왜 봉지 라면 형태는 다를까요. 라면 제조사들에게 한 번 물어봤습니다.
1958년 일본 닛신제품이 내놓은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 '치킨라멘'은 네모난 모양이었습니다. 라면 봉지의 모양이 네모였기 때문에 딱 맞는 모양으로 개발됐죠. 국내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삼양식품이 1960년대 출시한 국내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 '삼양라면'도 네모난 모양이었죠. 롯데(현 농심)와 동명식품이 내놓은 후속 제품들도 비슷했습니다. 네모난 라면은 '상식'이나 마찬가지였죠.
네모난 형태는 효율성이 높습니다. 각지고 평평해서 높게 쌓아올리기 좋았죠. 세로로 포장할 때도 편합니다. 다만 소비자들에게는 썩 맘에 드는 형태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1인용 냄비의 지름에 비해 라면은 너무 컸습니다. 반으로 쪼개거나, '반신욕'을 시켜 면을 풀어주고 나서야 제대로 끓일 수 있었죠. 유통 과정에서 모서리가 떨어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라면이 널리 보급되면서 이에 불만을 가진 소비자들도 점점 늘어났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농심이 아이디어를 냅니다. 농심은 1981년 사발면을 출시하며 본격적으로 컵라면 사업을 시작합니다. 자연스럽게 둥근 라면 제조 노하우가 쌓였죠. 농심은 이를 활용해 1982년 국내 최초의 둥근 봉지 라면 '너구리'를 내놓습니다. 너구리는 출시되자마자 엄청난 인기를 끕니다. 주된 인기 요인은 차별화된 '통통한 면발'이었지만, 조리하기 편한 형태도 힘을 보탰죠. 경쟁사들도 너구리의 성공에 주목하지만, 형태를 바꾸진 않았습니다. 왜였을까요.
비용 부담이 엄청났기 때문입니다. 당시 대부분 라면 제조사들은 네모난 라면을 만드는 생산 라인만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둥근 봉지 라면을 만들려면 공장을 사실상 새로 지어야 했죠. 때문에 둥근 면은 한동안 농심만이 만들 수 있는 '상징'이나 다름없었습니다. 2000년대 들어 컵라면 시장이 급성장하고 나서야 타 제조사도 둥근 면 제조 역량을 갖출 수 있었죠. 하지만 이 때는 농심이 '벽'이 됩니다.
농심은 2009년 사출면 제조 관련 특허를 따냅니다. 이 특허에는 면 모양을 둥글게 성형하는 방법이 포함돼 있었죠. 타 제조사가 둥근 면을 봉지라면에 적용하려면 이 특허 문제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때문에 둥근 면의 확산이 다소 늦어졌죠. 삼양식품이 삼양라면을 둥근 면으로 리뉴얼한 것은 2014년이었습니다. 삼양식품은 삼양라면 리뉴얼 이후 다양한 제품을 둥근 면으로 선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두 형태의 공정 차이는 있습니다. 둥근 면에는 '수화공정'이 적용됩니다. 수화공정은 뜨겁게 찐 면에 찬물을 뿌려 원형 틀에 잘 주입되도록 하는 공정입니다. 이를 통해 면의 쫄깃한 식감을 높일 수 있죠. 다만 네모난 면도 배합비나 제조 공정이 둥근 면과 달라 식감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과거와 달리 생산 방법도 개선됐기 때문에 현재는 제조 비용 차이도 거의 없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왜 둥근 면은 보다 널리 확산되지 못하고 있을까요. 소비자 입장에서는 둥근 면이 조리하기 편한 게 사실인데 말이죠. 실제로 오뚜기나 팔도는 아직 대부분의 봉지 라면을 네모난 형태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괜히 면의 형태를 바꾸었다가 소비자의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리적으로 사람은 네모난 형태를 '꽉 찬 것'으로 인식한다고 합니다. 라면은 봉지라는 '기준'이 있어 이런 경향이 더욱 심하다고 하고요. 삼양식품은 삼양라면을 둥근 면으로 리뉴얼한 당시 중량을 줄인 것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했었습니다. 이 오해는 직접 무게를 달아 본 소비자들의 증언과 회사의 적극적 해명 이후 풀렸지만, 지금도 가끔 관련 질문이 인터넷에 올라오곤 하죠.
면의 형태가 '시그니처'로 자리잡은 것도 또 다른 이유입니다. 국내 라면 시장 1위 신라면은 1986년 탄생한 제품입니다. 2위 진라면도 1988년에 출시됐죠. 라면 시장에는 이 외에도 다양한 '장수 제품'이 많습니다. 이들 제품의 외형은 이미 표준이나 다름없는 상황입니다. 주기적으로 포장지의 디자인만 바뀌었을 뿐이죠. 섣불리 제품의 외형을 바꿀 시 소비자들이 혼란을 느낄 수도 있다는 설명입니다.
농심 관계자는 "예를 들어 안성탕면을 둥근 모양으로 바꾼다면, 자주 먹던 소비자들은 혼란스러워 할 수 있다"며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거나 중량이 줄었다고 착각할 수 있어 스테디셀러 제품의 디자인을 섣불리 바꾸기는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지금까지 라면의 모양이 제각각인 이유에 대해 한 번 알아봤습니다. 오해가 풀린 부분도 있었고, 뭔가 허무하다는 생각이 드는 대목도 있었습니다. 확실한 건 형태에 따른 품질 차이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평온한 일요일 점심, 보글보글 라면 한 그릇으로 배를 채워 보는 건 어떨까요. 라면에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며 먹어보면 한층 더 즐거운 식사 시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食스토리]는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만들어가고픈 콘텐츠입니다. 평소 음식과 식품, 약에 대해 궁금하셨던 내용들을 알려주시면 그 중 기사로 채택된 분께는 작은 선물을 드릴 예정입니다. 기사 아래 댓글이나 해당 기자 이메일로 연락 주세요.
이현석 (tryon@bizwatch.co.kr)
ⓒ비즈니스워치의 소중한 저작물입니다. 무단전재와 재배포를 금합니다.
Copyright © 비즈워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