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적인 설경 파노라마 '007' 산 [박윤정의 원더풀 스위스]

- 2021. 10. 17.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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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 쉴트호른
'007 여왕 폐하 대작전' 촬영지
영화 주인공 본드 전시장선
추억의 영화 속으로 풍덩
2970m 봉우리 정상 전망대
360도 회전 레스토랑에서
슬라이드 필름처럼 설경 감상
케이블카가 유일한 교통수단
'청정 마을' 뮈렌 목가적 풍경
이른 아침 공기가 가슴 깊숙이 들어와 인사를 전한다. 또 다른 하루가 시작이다. 아침부터 서둘러 도착한 인터라켄 동역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융프라우요흐를 오를 때는 기차를 잘못 타더라도 서로 다른 경유지를 거쳐 같은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지만 오늘은 다르다. 어제의 경유지였던 라우터부르넨 행을 꼭 타야 한다. 북적이는 사람들 틈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고 플랫폼에서 출발하는 열차를 유심히 살핀다. 혹여 실수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으로 여러 차례 확인하고 열차에 오른다. 동역을 출발한 기차는 20여 분이 지나 멈춰 섰다. 계곡 아래를 내려다보니 동화 속 세상이다. ‘Lauter(많은) Brunnen(분수대)’이라는 마을 이름처럼 수백 미터 절벽 위에서 셀 수 없는 폭포가 떨어진다. 가장 긴 폭포인 슈타브바흐는 300m를 낙하한다고 한다. 스위스 관광 안내 책자에서 본 듯한 웅장하고 멋진 폭포들이 주위를 에워싼다. 귓가에 들리는 시원한 물소리는 걱정과 근심을 날려 보낸다. 아름다운 절경 아래 펼쳐진 야생화들이 위로를 전하고 살포시 내려앉은 물방울들이 운치를 더한다. 주위 산책로를 걸으며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목적지를 향하여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케이블카에 오른다. 절벽을 가로지르는 케이블카는 계곡에서 멀어지며 산봉우리를 넘어선다.
인터라켄에서 열차를 타고 20여분 지나면 알프스 빙하가 깊은 계곡 아래 만든 마을을 만난다. 야생화가 피어 오르고 70여개의 폭포가 절벽 위에서 쏟아져 내리는 동화 같은 세상이 펼쳐진다.
융프라우요흐로 가기 위해서 여러 열차를 갈아탔다면 쉴트호른을 가기 위해서는 여러 케이블카를 갈아타야 한다. 지면을 딛고 이동하는 것과 공중에 매달려 이동하는 기분은 확연히 달랐다. 허공에 떠다니는 기분은 누군가에게는 설렘과 짜릿함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두려움이다. 엇갈린 감정에도 모든 관광객들은 창밖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봉우리를 옮겨가며 변화하는 멋진 풍경이 저마다 다른 감탄을 자아내는 사람들을 품는다. 케이블카를 갈아탈 때마다 체감온도는 10도씩 낮아지는 듯하다. 피부에 닿는 온도는 서늘함을 넘어 어깨를 움츠리게 한다. 배낭을 뒤적여 옷을 주섬주섬 꺼내 든다. 스카프를 두르고 조끼를 입고 패딩을 덧입는다. 계곡 아랫마을 라우터브루넨에서 느꼈던 따스한 햇살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한기만을 등에 이고 온 느낌이다.
케이블카를 갈아타고 오르면 해발 2970m 높이에 피츠 글로리아 전망대가 새 둥지처럼 봉우리 위에 올려져 있다. 유명한 360도 회전식 레스토랑에서 경치를 감상하며 식사를 즐기려면 미리 예약해야 한다.
놓치고 온 햇살이 그리워질 무렵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곳, 쉴트호른에 도착했다. 해발 2970m 봉우리 정상에서 전망대 피츠 글로리아가 관광객들을 맞이한다. 개인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고산병은 3000m 이상에서 느껴진다고 한다. 그런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전망대는 그 언저리에 자리하고 있다. 많은 관광객들은 경치를 즐기기 위하여 이곳에 오른다. 유명한 회전식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경험하고자 하는 이들도 있다. 고산병의 불편함 없이 가장 높은 장소에서 여유를 만끽하고 싶은 수많은 사람들로 인해 성수기가 아니더라도 예약이 쉽지는 않았다.
전망대 곳곳에서 007 포스터들이 눈에 띈다. 식당 아래층에도 007 전시장이 있다. 이곳이 1969년 개봉한 ‘007 여왕 폐하 대작전’ 촬영지란다. 1967년에 케이블카가 완공되고 얼마 되지 않아 촬영한 듯하다. 스위스는 007 시리즈에 자주 등장하는 촬영지였다. 3회 ‘골드핑거’, 6회 ‘여왕 폐하 대작전’, 10회 ‘나를 사랑한 스파이’까지 알프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화려한 액션이 영화 애호가들에게 사랑받았다. 1995년 개봉한 17회 ‘골든아이’ 장면인 베르차스카 댐에서 번지점프하는 명장면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영화 007 여왕 폐하 대작전(1969)에 쉴트호른이 비중 있게 등장한다. 전망대 내에는 007과 관련한 본드 월드 전시장과 007 명예 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가장 인기 있는 레스토랑 메뉴는 007 버거 세트이다.
예약 시간보다 빨리 식당에 들어섰다. 창가 좌석에 앉았으면 하는 바람이 전해졌는지 직원이 창밖을 바라보기 좋은 좌석으로 안내한다. 자리에 앉자마자 창밖으로 시선이 머문다. 회전하는 테이블을 따라 조금씩 다르게 풍경이 펼쳐진다. 마치 세상에 둘도 없는 멋진 풍경들을 모아담은 슬라이드 필름을 상영하는 듯하다. 입과 눈이 호사를 누리며 여유롭게 앉아 360도 알프스를 감상한다. 식사를 즐기며 풍경을 바라보니 하루가 금방이다. 식사를 마치고 007 테마파크에 들른다. 영화에서 느꼈던 장면들을 다시 떠올리며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화면에 옮긴다. 스키를 타고 눈 덮인 샬레(스위스 전통 가옥) 위를 점프하는 장면이 스치며 흥분도 서서히 차오른다.
라우터브루넨에서 쉴트호른으로 오르는 경유지로 해발 1650m 높이에 자리 잡은 청정 마을 뮈렌. 마을을 오가는 유일한 교통수단이 케이블카이다.
쉴트호른에서 영화 속 주인공처럼 시간을 보내고 아쉬움을 안고 케이블카에 올랐다. 내려오는 길에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 청정 마을 뮈렌에 잠시 들른다. 1650m에 자리한 이 마을은 유일한 교통수단이 케이블카란다. 카페에 앉아 따스한 차를 주문한다. 온기가 전해지니 하루의 피곤함으로 노곤해진다. 졸린 눈을 비비며 꿈속의 풍경이 아닌 현실의 풍경에서 머문다.

박윤정 여행가 민트투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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