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할머니, 그리고 '한창나이 선녀님' [편파적인 씨네리뷰]
[스포츠경향]
■편파적인 한줄평 : 인생, 진하고 깊은 맛.
시간이 지날수록 깊은 맛을 내는 건 ‘곰탕’뿐만은 아니다. 착실하게 하루하루 발끝을 보며 걸어온 우리네 엄마·할머니의 삶도 그러하다. 그 성실함과 책임감에 머리가 숙여질 수밖에 없다. 나무꾼은 없어도 그 누구보다 꽉찬 하루를 보내는 ‘한창나이 선녀님’ 속 임선녀 할머니의 진하고 깊은 이야기에 코끝이 찡해지는 건 이때문 아닐까.
‘한창나이 선녀님’은 강원도 산골 68살 임선녀 할머니가 누구의 도움 없이 바쁜 일상을 채워나가는 기록을 그린다. 홀로 소를 키우고, 틈만 나면 못 깨우친 한글 공부를 하며, 짬을 내 새 집을 직접 짓는 임 할머니의 기록이 뷰파인더 안에 잔잔하게 담긴다.
‘할머니’란 단어에 깃든 모든 느낌이 필름 안에 고스란히 실린다. 무던한 표정 속 강인한 마음, 무엇이든 품어줄 것 같은 따뜻함, 때론 귀엽고 때론 안쓰러운 모습까지, 러닝타임 83분을 빼곡하게 채운다. 깊게 패인 주름에 마음이 가다가도 툭툭 내뱉는 임 할머니만의 개그에 피식 웃음을 터뜨리게 된다. 묘한 감정의 공존은 ‘할머니’만이 부릴 수 있는 마법이다.
그의 단순한 삶에서 여러 함의를 발견할 땐 뭉클해진다. 택시비 2만8000원을 들여서라도 한글을 배우고 싶은 그의 속마음을 읽거나 학사모를 쓰고 수료식에서 연설을 할 땐 힘든 시대를 살아온 ‘인간 임선녀’의 작은 소원과 도전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3년 전 세상을 떠난 남편 무덤 앞에서 자식들 몰래 진심을 꺼내보일 때나, 정든 소들을 떠나보내며 “눈물은 안 난다”는 그의 속타는 표정에선 보는 이도 입술을 지그시 깨물게 된다.
특히 청춘이 담긴 그의 애장품이 불길 속에 던져지는 엔딩에선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차오른다. 여자, 엄마, 할머니로서 우직하게 살아온 그의 인생이 관객의 감성을 건드린다.
MSG 없이 임 할머니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본 이 작품은 제1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서도 그 가치를 인정받아 관객상을 받았다. 할머니가 유독 그리운 이라면 임 할머니의 일상에 한발자국 다가가보면 어떨까. 오는 20일 개봉.
이다원 기자 edao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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