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톡톡] 라면 끓이고 반바지 입고.. 소탈 행보 보이는 회장님들

윤희훈 기자 2021. 10. 17.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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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국 하림 회장, 라면 신제품 시식회 셰프복 입고 등장
기업 오너가 직접 나서 '웰빙' '친환경' 가치 어필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이 14일 서울 강남 하림타워에서 진행된 'THE미식 장인라면' 출시 기자간담회에서 셰프복장을 하고 라면을 선보이고 있다. /하림그룹 제공

김홍국 하림(136480)그룹 회장이 지난 14일 ‘일일 주방장’으로 등장했다. 김 회장은 이날 서울 강남 하림타워에서 열린 ‘THE미식 장인라면’ 출시 기자간담회에 조리복을 입고 나타나 직접 라면을 끓여 참석자들에게 선보였다. 김 회장이 조리복을 입고 직접 제품을 시연한 것은 하림그룹 창립 35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김 회장은 간담회에서 라면 사업을 시작하게 된 개인적인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막내딸이 기존 라면을 먹으면 수프의 특정 성분 때문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이를 보면서 좀 더 친환경적인 라면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회사가 역점을 둔 신사업을 개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며 수익성 보다는 ‘친환경’과 ‘웰빙’이라는 가치를 부각시켰다.

최근 유통·식품기업의 오너들이 소탈한 모습을 보이며 대중 스킨십을 늘리고 있다. 과거 ‘기업 회장님’이라고 하면 ‘정장 차림의 신사’와 대중들의 눈에 띄지 않는 ‘은둔의 경영인’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이제는 편안하게 일상을 공개한다. 화려한 모피와 반바지 패션으로 신선한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직책 보다는 ‘형’으로 불리길 원하는 등, ‘꼰대’를 ‘극혐’하는 MZ세대의 감성에 눈높이를 맞추는 모습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화려한 모피를 입고 배상민 롯데 디자인경영센터장과 사진을 찍었다. /배상민 센터장 인스타그램

◇ 정용진, 인스타 팔로워 ‘70만’에…신동빈, 구찌 모피 입고 ‘플렉스’

유통가 오너 중 일상을 가장 적극적으로 알리는 기업인으로는 정용진 신세계(004170) 부회장이 첫 손가락에 꼽힌다. 정 부회장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기업인, SSG랜더스 구단주, 골프와 요리를 좋아하는 ‘패밀리맨’으로서의 삶을 하나하나 공개한다. 최근에는 미국을 방문해 주요 스포츠팀의 구장을 방문한 사실을 알리며 ‘돔 구장’ 건설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골프 마니아인 정 부회장은 이번 방미 기간에 타이틀리스트가 인수한 세계 3대 퍼터 브랜드 ‘스카티 카메론’의 제작자인 스카티 카메론과 웨지 브랜드 ‘보키 디자인’의 제작자인 밥 보키와 만난 사실도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개했다. 사업을 구상하는 듯한 모습의 흑백사진을 올리고선 ‘BTS 카드 들고 멤버 이름 외우는 중’ 이라는 반전 글도 올린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최근 미국 출장에서 골프채 종류의 하나인 웨지의 명장 밥 보키를 만나 찍은 사진을 10일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 정용진 부회장 인스타그램 캡처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팔로워들의 관심사다. 현재 정 부회장 인스타그램의 팔로워 숫자는 70만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때로는 ‘OO(미안)하다 OO(고맙)다’ 라거나 ‘평화협정은 휴지다’와 같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게시물을 올려 논란을 사기도 한다.

최근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화려한 모피를 입은 파격적인 모습을 공개해 주목을 받았다. 최근 롯데 디자인경영센터장으로 발탁된 배상민 카이스트 교수는 지난 3일 인스타그램에 신 회장과 구찌 매장에서 함께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에서 신 회장은 노란색털에 화려한 무늬가 들어간 모피 코트를 입었다. 신 회장이 입은 모피는 정가가 700만원이 넘는 고가 상품이다.

신 회장이 신은 스니커즈도 주목받았다. 이 스니커즈는 롯데케미칼(011170)이 주관하고 7개 업체가 참여한 ‘플라스틱 자원 선순환 프로젝트 ‘루프(LOOP)’를 통해 만들어진 친환경 브랜드 LAR의 제품이다. 신 회장의 게시글이 올라온 후 LAR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뜨거워졌다. LAR 측은 “신 회장 사진이 주목받으면서 이달 들어 브랜드 전체 매출이 증가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함영준(오른쪽) 오뚜기 회장이 지난 8월 휴가지인 강릉에서 딸 함연지씨와 사진을 찍고 있다. /함연지 인스타그램

◇ ‘회장님 패션=메시지’… MZ세대 화법을 따르다

오뚜기(007310)의 함영준 회장은 방송 활동을 하고 있는 딸 연지씨를 통해 일상 속 모습이 대중에 알려지고 있다. 지난 8월엔 함 회장이 입은 셔츠의 겨드랑이가 찢겨져 있는 사진과 함께 “찢어진 옷을 하루종일 회사에서 입고 계셨다네요 (직원분들 눈 죄송합니다)”라는 글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휴가지에서 함 회장이 아이보리색 반팔 티셔츠에 하얀색 반바지를 입고 있는 모습도 함연지씨를 통해 공개됐다. 1959년생인 함 회장은 비니 모자에 투명 프레임의 선글라스를 매치했다. 지난달엔 스미싱 피해를 입을 뻔한 사실도 함연지씨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알렸다.

지난 8월 19일엔 서경배 아모레퍼시픽(090430) 회장이 임원회의에 반바지를 입고 등장해 눈길을 사로 잡았다. 서 회장은 평소 캐주얼 복장을 즐겨입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통업계에서는 서 회장이 옷차림으로 ‘편견에 매이지 말라, 고정관념을 탈피하라’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달 아모레퍼시픽그룹이 창립 76주년을 맞아 메타버스에서 진행한 기념식에 등장한 서경배 회장. / 아모레퍼시픽그룹 제공

이같은 기업 오너들의 소통 행보에 대해 정연승 단국대 교수는 “현 시대는 매스미디어를 통한 소통보다는 소셜미디어나 라이브커머스처럼 개인화된 매체로 소비자와 소통하는 게 주류가 됐다”면서 “예전에는 기업 CEO가 근엄한 모습을 유지하고 외부 노출을 최소화하는 것을 바람직하게 여겼다면, 이제는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 됐고, 마케팅 트렌드에도 부합한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이어 “기업인들의 소통 행보가 실제 매출이나 마케팅 효과에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난다”며 “솔직하게 표현하고 개성을 드러내는 MZ세대가 주류가 되면서 기업인들도 자신의 일상을 편안하게 노출할 수 있는 문화적 토대가 만들어졌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솔직한 소통이 장점도 많지만 언사 중에 실수를 해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솔직함을 추구하면서도 신중하고 치밀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기업 오너들이 대중과 소통하는 주제엔 소비자의 삶이 들어 있다”며 “일상을 공개하면서 고객의 생활을 더 풍요롭고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함께 보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이어 “메시지 속에는 새로운 사업이나 신상품을 어떤 가치관으로 만들었는지도 담겨져 있다”면서 “가치 소비를 추구하는 소비자들에게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를 소개하고, 기업에 대한 신뢰 이미지를 구축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최근 화두가 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서 S는 사람과 사회에 대한 영역”이라면서 “MZ세대가 원하는 SNS 방식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를 효과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앞으로 더 많은 기업인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대중과의 소통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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