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현대 산타페가 9000만원".. 이란 현지에서 전하는 '한국 제품 현주소'

김태욱 기자 2021. 10. 17. 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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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현지 매체들은 지난달 30일(한국시각)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가 '한국 가전제품 수입 금지령'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이란 테헤란 소재 삼성전자 매장 전경. /사진=알리 가요르(남·25) 제공
앞으로 이란에서 삼성·LG 가전제품을 보기 힘들어질 전망이다. 지난달 30일(이하 한국시각) 이란 최고지도자가 한국산 가전제품 수입 금지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날 이란 현지 매체들은 일제히 해당 금지령을 보도했다이란 통신사 메흐르는 '한국산 가전제품 수입 금지'라는 제목의 보도를 통해 이번 금지령이 이란 현지 기업들의 요청에 따라 이뤄졌다고 전했다. 아울러 이란 현지산업 보호 차원에서 내린 결정이라고 덧붙였다. 
이란 통신사 메흐르(왼쪽)가 지난달 30일 한국 가전제품 수입 금지령을 보도했다. /사진=이란 통신사 메흐르 캡처
머니S는 이란 현지인들과 전세계 전문가들을 비대면으로 인터뷰해 이란이 한국산 가전제품 금지령을 내린 배경에 대해 들어봤다.


 "이란 국내 기업 요청보다 한국 동결자금이 문제"


모함마드 마란디 테헤란대 교수는 최고지도자의 한국산 가전제품 수입 금지령이 보도와 달리 한국에 동결된 자금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최고지도자의 금지령은 동결
자금
때문인 것이 확실하다”며 “이는 나의 개인적인 의견이 아닌 모두가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란은 한국이 지난 3년 동안 동결자금을 돌려주지 않은 것에 대해 진한 아쉬움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마란디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이 인권과 평화의 이미지가 강하다는 점에서 (동결자금 문제 해결을) 기대한 것이 사실이라며 하지만 그런 문 대통령도 해결하지 못해 깊이 유감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란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피해가 큰 국가 중 하나"라며 "코로나19 대응에 필요한 자금이 한국에 의해 동결됐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한 해결책을 묻자 그는 먼저 8조3900억원의 동결자금이 (수입 금지령의) 한국·이란 갈등의 원인인 만큼 동결자금 해결이 최우선이라며 이란은 한국을 오래 기다렸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는 석유 판매 대금 8조3900억원이 묶여있다. 이는 지난 2018년 8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이란에 부여한 제재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마란디 교수는 현재 미국과 이란이 협상중인 JCPOA(핵합의)와 이번 금지령은 별개 사안이라고 주장했다그는 “우선 JCPOA가 쉽게 재타결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지난 10개월 동안 바이든 (미국)행정부와 (도널드)트럼프 (전)행정부의 외교정책은 큰 차이가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미국이 이번 협상에 진심으로 임하지 않는다면 핵협상이 성사될 가능성은 낮다”며 설사 미국과 이란이 핵협상을 타결하더라도 한국에 대한 실망감 해결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앞서 이란은 지난 2015년 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독일과 JCPOA를 체결했다. JCPOA 주요 내용은 이란이 고농축 우라늄 개발을 포기하는 대신 국제사회가 대이란 경제 제재를 대폭 해제한다는 내용이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018년 JCPOA를 탈퇴한 바 있다.



"한국산 제품, 3가지 경로로 들어온다"


머니S는 이란의 현지 사정을 전해듣기 위해 이란인 40대 직장인 버박(가명)과 비대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물류업에 종사하는 버박은 “현재 이란 내에 유통되는 한국 물품은 크게 3가지 경로로 들어온다며 “첫번째 경로는 지난
2018년 8월 제재 이전의 재고이며 두번째 경로는 밀수다. 마지막 경로는 정부와 국회가 간헐적으로 2~3일 수입을 허용하는 기간에 유입된 물품”이라고 설명했다. 버박은 이란 의회·정부가 일시적으로 외국 상품의 수입을 허용할 경우 이란 국내 상품의 가격이 하락세를 보인다고 설명했다.  

버박은 “(이란 소비자들은) 한국 제품을 품질면에서 선호한다"고 밝혔다. 그는 "문제는 경제제재로 인해 (한국 제품들은) 보증서가 없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 현대자동차 '산타페'가 테헤란에서 대략 7만6000달러(원화 9090만원)에 판매된다"며 "이란에 현대차 부품이 거의 없어 (차가) 망가지면 언제 수리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 걸림돌”이라고 설명했다. 버박은 이어 “심지어 현대자동차 부품들은 주변 국가들에서 자체적으로 구해야 할 때가 많다”고 덧붙였다. 


버박은 “
이란에서 한국차를 구매하면 연식이 과거 연식의 차종일 경우가 많다”며 “가령 오늘 현대차를 구매하면 지난 2018~2019년도 연식의 차종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그는 “이란은 한국 물품을 기술이전 등을 기반으로 이란 국내에서 생산·조립하는 것은 허용하나 완제품 수입은 금한다고 덧붙였다이는 지난달 30일 이란 국영 방송매체 프레스 TV의 보도(국내 제조 물품은 수입 금지령 대상 제외)와 일치한다.

지난달 30일 이란 방송매체 프레스TV는 이란 국내에서 조립된 물품은 수입 금지령 대상이 아니라고 전했다. /사진=이란 프레스TV 캡처


"한국 가전제품, 주로 바네시(市)에서 수입'


머니S는 수도 테헤란이 아닌 다른 도시 소식을 전해듣고자 이란 이스파한시에서 가전제품 사업을 하는 아미르(가명)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는 “삼성·LG 가전제품들은 '쿠르디스탄 주'에 있는 '바네'란 도시에서 육로를 통해 수입·밀수된다"며 "문제는 대부분 보증서가 없어 거의 판매가 안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이란 이스파한주에서 가전제품 사업을 하는 아미르(가명)는 바네시(市)에서 한국 물품이 대거 수입된다고 설명했다. 사진은 이란 바네시(市) 위치. /사진=구글 맵 캡처
이어 그는 “그래도 LG·삼성을 찾는 분들을 위해 1~2개씩 개별 단위로 주문을 받아 판매한다”며 "지금은 이란 국산제품 위주로 판매하는 가게가 증가했다"고 밝혔다. 그는 "많은 이란인들이 현재 이란 현지 기업들인 엑시 비전·스노와·파르스 카자르·GLX 등의 제품을 즐겨 사용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최고지도자의 금지령 이전에는 한국 가전제품을 이라크에서 대거 수입해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수도(테헤란)에는 한국 제품 창고가 있지만 바네시(市)보다 대략 30%가량 가격대가 높다"며 "이 같은 이유로 테헤란을 제외한 다른 도시에서는 한국 제품 위주로 판매하는 가게를 찾기 어렵게 됐다”고 귀띔했다. 
이란 자국 기업인 엑시 비전·스노와·파르스 카자르·GLX 등의 제품들이 삼성전자·LG전자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잠식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은 왼쪽부터 GLX스마트폰과 파르스 카자르사(社)의 공기청정기. /사진=마에데예(여·23) 제공


"현재 판매중인 삼성·LG 제품, 서울 본사와 관계 없다"


김혁 한국외대 페르시아어·이란학과 겸임교수는 "현재 이란에서 판매되고 있는 삼성·LG 제품은 한국 본사와는 관계가 없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현지 제품들은 이란 기업인 '골드 이란'과 '삼 앨랙트로닉스'가 자체 제조·유통·판매중"이라며 “이들은 삼성·LG가 아닌 자체 브랜드인 SAM·G PLUS로 판매 중”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란의 한국 제품에 대한 수입 금지령이 처음이 아니라고 밝혔다. 그는 "지난 2009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며 "당시 이란 정부는 10개월가량 한국 제품 수입 금지령을 내렸다"고 말했다. 이어 "이란은 명목상 자국 산업 보호를 (수입 금지령 이유로) 내걸고 있으며 이는 일정 부분 맞는 말"이라며 "이란은 친미 국가인 한국을 압박해 곧 재개하는 미국과의 핵협상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란 현지에서 판매되는 삼성전자 제품들은 서울 본사와는 관계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은 왼쪽부터 테헤란 소재 삼성전자 매장 내부와 이란 현지 기업 삼 앨랙트로닉스가 제조·판매중인 스마트폰. /사진=알리 가요르(남·25) 제공


"이란 경제, 수입대체 산업화" 


나데르 엔테세르 사우스앨라배마대학교 명예교수는 머니S와 온라인 인터뷰에서 "이번 수입 금지령은 복합적으로 해석된다"며 "이란 최고지도자가 밝힌 바와 같이 자국 경제 육성과 동결자금에 대한 불만이 복합적으로 작용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엔테세르 교수는 이란의 수입금지령이 과거 1960-1970년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채택한 수입대체 산업화와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사진=김태욱 머니S 기자
엔테세르 교수는 "이란의 저항경제는 지난 1960~1970년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서 시행한 수입대체 산업화"라며 "(이란이) 수입 금지를 통해 단기 성과는 거둘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회의적"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실제 이란은 자동차 산업 분야에서 '저항경제'로 일부 성공을 거둔 바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엔테세르 교수는 이란이 유독 한국에 강경한 태도를 취하는 이유도 설명했다. 그는 "삼성·LG가 이전과 달리 공식적으로 이란을 떠나 이란 관계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JCPOA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엔테세르 교수는 "아직 이란 협상팀이 윤곽이 잡히지 않았다"며 "현재로서는 협상팀이 지금과 같이 이란 외무부 산하에 있을지, 아니면 최고지도자 국가안전보장회의 산하로 이전될지도 확실하지 않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엔테세르 교수는 "근본적으로 미국과 이란은 핵협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며 "미국은 핵을 필두로 미사일 등 다른 분야로 (협상을) 확장되기를 희망하지만 이란은 핵 자체만이 협상의 대상으로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나데르 엔테세르 사우스앨라배마대학교 명예교수는 이란의 경제를 수입대체 산업화로 요약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영상은 이란 바시즈 민병대가 제작한 자국 제품 구매 홍보 영상. /영상=이란 영상 플랫폼 아파라트·마에데예(여·23) 제공


"면제(waiver), 해결책 중 하나"


머니S는 이란 전문가인 호세인 아스카리 조지워싱턴대학교 명예교수(전 사우디아라비아 경제기획부 장관 특별보좌관)와 비대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아스카리 교수는 과거 이란 정부가 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 정부와 관계 개선을 모색할 당시 중재자로 활약한 이슬람 경제학 전문가다.

아스카리 교수는 머니S에 "우선 중동 내 미국의 영향력은 낮아지고 있다"며 "앞으로 중국이 중동에서 영향력을 더욱 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미국은 이란에 제재를 가하고 있지만 반대로 이란이 미국에 악영향을 끼친것은 찾기 어렵다"며 "IS(이슬람국가)를 격퇴하는 데 공을 세운 것도 이란"이라고 덧붙였다. 아스카리 교수는 "하지만 미국은 이란의 영웅인 솔레이마니 사령관을 사살했다. 이로서 이란인들은 미국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아스카리 교수는 한국 가전제품 수입 금지령 해결책을 제안했다. 그는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면제(waiver) 요청을 고려해 봐야 한다"며 "과거 이라크는 웨이버를 통해 비슷한 문제를 해결한 바 있다"고 조언했다. 실제로 지난 4월1일 로이터통신은 미국이 이라크에 '면제'를 허용해 이라크 정부가 이란에 돈을 납부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로이터는 지난 4월1일(현지시각) 이라크가 미국으로부터 '웨이버'를 받아 이란에 전기료를 납부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사진=로이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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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욱 기자 taewook9703@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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