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계급 사다리"..'국가대표 와이프' 똑똑한 시의성 [연예다트]

이기은 기자 2021. 10. 16.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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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이기은 기자] 최근 ‘상위1%’ 소개팅 앱 ‘골드스푼’의 개인정보 13만 명 분량이 해킹·유출되는 사례가 발생했다. 해당 앱은 전문직, 억대 연봉, 부모의 높은 사회적 위치, 서울 강남구 소재 부동산 유무, 개인·가족 자산 20·100억 이상, 고급 외제 차량 중 1가지 이상의 증빙 서류를 내야 가입 가능하다.

유사한 맥락의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 역시 대기업, 공기업, 전문직 등 굴지 직장을 면허증이나 사내 메일로 인증해야 한다. 등록되지 않은 영세 기업 경우 ‘새회사’로 표기되는데, 유수 직장 가입자들은 “믿거새(믿고 거르는 새회사)”라는 비아냥으로 커뮤니티 구성원들의 급수를 걸러내기가 다반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돈의 가치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현재 미국, 호주 등 서양권 국가들의 부동산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대한민국 또한 수도권 부동산, 코인 등에 팔 할의 현금이 몰리는 기현상을 겪고 있다. 실제로 1020대의 SNS 자기 소개란에는 신설 항목이 추가됐다. 과거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재학(예)’이 청춘의 우선순위 트로피였다면 최근엔 ‘반포 자이 60평 거주(예)’라는 한 줄 설명이 또래를 압살한다는 지적이다.

이달 방영을 시작한 KBS1 일일드라마 '국가대표 와이프'(극본 김지완·연출 최지영)는 강남구에 아파트를 마련하려는 워킹맘 서초희(한다감)의 계급 오르기 과정을 그린다. 초희는 굴지 대학 교수 남편 강남구(한상진)와의 결혼해 외동딸을 꼼꼼하게 뒷바라지해 온 유능한 커리어우먼이다. 하지만 학계에 몸담느라 물정 모르는 남편은 사모펀드 투자 욕심을 내다 덤터기를 썼고, 상류층 입성을 꿈꾸던 초희의 중상 계급도 ‘한강뷰’ 사정권에서 한참 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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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땅·인맥…부(富)의 트라이앵글

기성 4050세대야 입고 먹는 것이라도 줄이며 다음 기회를 노려본다지만, 문제는 하나 뿐인 자식의 성장 과정이다. 한 번 벌어진 격차는 좀처럼 메워지지 않고 공부한 노동 소득의 재분배만으로 타고난 현금 부자를 추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부부의 외동딸이 학업에 꽤 소질을 보인다고 해도 학종(학생종합부)전형부 성패는 부모의 정보력, 경제력, 인맥으로 판가름 난다. 부동산에 빠삭한 강남 엄마 노원주(조향기)의 말마따나 “자칭·타칭 금수저가 강남 곳곳에 포진한 와중에 그나마 설 자리를 유지해주는 동아줄은 (자식의) 학벌” 뿐이다. 꾸준한 양질의 교육만이 기존 계급을 존속 시키는 최소 조건이라는 것이다.

드라마는 사교육, 부동산, 인프라라는 트라이앵글 쟁점을 세찬 핑퐁처럼 플롯 곳곳에 배치해 긴장감을 견인했다. 최근 경제지 헤드라인을 장악한 대출 규제, 종부세, 양도세 등의 적나라한 단어들도 ‘국가대표 와이프’의 영감으로 기능했다. 극 중 서초희는 “청약 가산점을 높이”기 위해 교수 남편 강남구와의 서류상 이혼까지 결심하기에 이른다.

현실이 곧 드라마다. 이 같은 심심찮은 실례가 신랄한 톤으로 묘사되는 현상은 동시에 지상파 일일드라마의 진일보를 가늠케 한다. 앞서 대가족 화합, 계급을 뛰어넘는 사랑, 시련을 헤쳐 나가는 ‘캔디’ 여주인공이 공영 방송의 구축 정서였다면 2021년의 일일극은 보다 확고한 시의성을 담보했기 때문이다. 가령 국민들이 겪는 주택 청약 한계, 정부 경제 정책의 오판, 공급 부재 등의 문제의식이 자연스레 녹아든 것은 제작진의 거시적이고도 사회 고려적인 시선으로 비춰진다.

K-사다리 증축, 후세대를 위한 숙제

지난 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4관왕에 등극한 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은 지상층·반지하·지하라는 문드러진 한국형 부동산 구조를 계급 사안으로 치환했다. 각 건물의 미장센과 이를 점유한 상하 계층의 특질은 물과 기름처럼 분리됐고, 이 마술 같은 비주얼은 전 세계인들에게 전율을 안겼다. 수치는 덤이었을까. 누군가는 하릴없는 씁쓸함을 느꼈고 누군가는 필시 자성했다.

현 베이비붐 세대의 고뇌도 나날이 심화된다. 최근 이들의 자산 트렌드는 가진 돈의 반 정도만 쓰고 나머지 반은 자식들에게 물려주기 위한 밑그림 짜기에 집중돼 있다. 모 증권사 골드센터영업부 관계자는 “수 십 억에서 수 백 억을 소유한 국내 중상위 자산가들은 유산을 자식들에게 증여하거나 혹은 사망 이후 상속하는 두 가지 안을 놓고 노후 자산을 재분배한다”며 “시드머니가 미래의 큰 돈으로 불어난다는 사실을 체득한 기성세대로서는 생활비 개념의 연금을 제외하고, 어린 자식 명의로 미리 주식, 현물 등을 돌려놓으려는 현상”이라 설명했다.

수 십 년 간 성실하고 실력 있는 숱한 인재들의 노고는 대한민국을 현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인구 절벽, 출산율 급감은 기존 선진국들이 이미 겪고 있는 사회 현상으로써 한국 역시 선진국 반열의 과도기에서 고된 투쟁을 벌이고 있다. 현금의 유동성과 인플레, 흔치 않은 기회를 포착하는 시선, 냉혹한 자본주의 속 상층 계급 쟁취 또한 2030 구성원들의 적법한 욕망으로 간주할 만하다. 다만 미래 세대의 욕망이 ‘건강하게’ 작동되기 위해선 정부 정책과 시민 수준의 동시 개선이 필요한 상황. 요컨대 앞날의 사다리를 새로운 방향으로 증축하는 일이야말로, 오늘의 어른들이 풀어야 할 우선 과제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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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이기은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KBS]

국가대표 와이프 | 한다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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