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의 상인, '인간의 세속적 존엄'을 노래하다

한겨레 2021. 10. 16.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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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임병철의 이탈리아 르네상스인들][한겨레S] 임병철의 이탈리아 르네상스인들
잔노초 마네티
잔노초 마네티는 ‘인간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존재이기에 신이 인간의 형상일 것’이라는 대범한 주장으로 가장 잘 요약된다. 위키피디아

1450년대 초반의 어느 날 나폴리의 왕 알폰소에게 한 권의 책이 헌정되었다. 모두 네 권으로 구성된 이 책에는 놀랍게도 <인간의 존엄성과 탁월함>이라는 범상치 않은 제목이 달려 있었다. 중세 기독교 세계에서는 ‘오만’(hubris)의 죄로 간주될 수밖에 없던 위험한 생각, 즉 ‘존엄’(dignitias)이라는 관념이 인간에게 부여된 것이다. 아무튼 이 책에서 잔노초 마네티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존엄”하게 창조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토록 높은 지위가 부여되었기에” 지상에서든 하늘에서든 “우주의 온갖 피조물은 인간의 통제와 지배 아래 놓여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렇기에 부단히 덕을 실천하기만 한다면, 인간 앞에는 지복의 세계,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신과 유사한 경지에 오르는 길이 열려 있다는 대범한 이야기였다.

1396년 피렌체의 부유한 상인 가문의 첫째 아들로 태어난 마네티의 삶은 초기 르네상스, 특히 피렌체 문화를 반영하는 거울처럼 보인다. 상인으로 성장하기를 바랐던 아버지 탓에 비교적 늦은 나이에 학문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마네티야말로 상인 그리고 피렌체 공직자로서의 삶을 휴머니스트 지식인의 삶에 무리 없이 조화시킨 남다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휴머니즘 특유의 인문교양학문뿐만 아니라 자연철학에서 신학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를 섭렵한 흔치 않은 지식인이었다. 그에 대한 전기를 남긴 한 당대인이 마네티를 꽃의 도시 피렌체를 빛낸 “장신구”이자 당대 누구도 범접하기 어려운 뛰어난 “논객”으로 상찬한 것도 그 때문이다.

시민적 삶의 이상을 실천하며
중세의 인간관에 도전한 인물

인간이 능동적 우주의 주인’ 평가

그래서일 테다. 오늘날의 여러 역사가들은 마네티를 소위 ‘시민적·활동적 삶’의 이상을 실천한 전형적인 인물로 평가하곤 한다. 물론 15세기 전반 최고의 지식인으로 인정받던 피렌체의 서기장 브루니와 그가 맺었던 긴밀한 관계가 그러한 해석에 큰 몫을 차지한다. 브루니는 젊은 학자 마네티를 처음 만난 이후부터 평생 그를 동학이자 믿음직한 후배로 아꼈으며, 웅변가로서의 그의 능력을 알아보고 공직의 길에 들어서도록 이끌었다. 이를 고려하면, 브루니가 사망했을 때 피렌체가 자랑하던 그 당대 최고 명망가를 기리는 추도연설을 마네티가 맡게 된 것은 별반 놀랍지 않다. 특히 학자의 삶을 사회적 존재로서의 공인의 삶과 연결시켰다는 점에서, 마네티는 브루니 이후 세대 가운데 시민적 삶의 이상을 몸소 구현한 대표 주자였다.

흥미롭게도 이 점은 <인간의 존엄성과 탁월함>에도 여실히 반영되어 있다. 기실 이 작품은 13세기 초반 교황지상주의를 천명하면서 기독교 세계를 호령하던 인노첸시오 3세의 유명한 논고에 대한 ‘르네상스 휴머니스트’의 진지한 응답이었다. 인노첸시오는 인간의 육체를 벌레의 그것에 비유하면서 인간의 현세적 삶은 비참함 그 자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마네티는 아름다운 육체와 고귀한 영혼이 결합된 인간이야말로 신의 최고의 피조물이라고 예찬하면서, 그 교황에게 인간이 이룬 모든 업적을 되돌아보라고 이야기한다. 그에게 인간은 지성과 의지를 가진 존재로서 마치 창조주처럼 이 세계를 새롭게 발전시키는 능동적인 우주의 주인이었다.

그가 “이해”하고 “행동”하는 것이 지상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역할이라고 강조한 것도 바로 그런 맥락에서였다. 마네티는 신은 인간을 위해 우주를 창조했다고 항변한다. 그 자체로 완전무결한 신에게는 우주의 어떤 피조물도 필요치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창조된 세계에서 신이 만든 세계를 이해하고 그것을 자신의 필요에 따라 변화시키면서 인간이 세계를 지배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던 셈이다. 또한 그는 이를 통해 문명이 발전하고 진보한다는 생각도 잊지 않았다. 더욱이 마네티에 따르면, 필멸의 존재인 인간이 신과 같은 불멸의 경지에 오를 수 있는 것도 바로 세계와 우주에 대한 지배를 통해서였다. 지극히 현세적인 세계관, 지극히 활동적인 인간관, 지극히 조숙한 진보적 역사관이 움트는 순간이다.

물론 이와 같은 그의 생각에는 피렌체 상인의 세계관이 투영되어 있다. 그가 진보를 가능케 한 인간 지성의 예로 항해술에 관한 논의를 출발점으로 삼은 것도 그 때문이다. 더욱이 같은 맥락에서 그는 당대인들이 거둔 예술적 성취를 거론하면서 고대인들과 견주어도 손색없는 현대인들의 업적을 예찬했다. 흥미롭게도 이와 같은 생각이 벼려지는 데에는 휴머니스트로서의 마네티의 역사적 감각이 작동했다. 소크라테스에서 세네카, 페트라르카에서 니콜리, 그리고 교황 니콜라스 5세에 이르기까지, 그는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다양한 인물에 대한 전기를 남겼다. 그런데 바로 그러한 전기문학을 통해 그가 주목한 것이 인간 지성의 작용, 즉 이해와 행동, 그리고 기억을 통한 문명의 창조와 보전이었기 때문이다.

현세적 인간 최고의 예찬 속에
위험한 유럽 문명관의 씨앗도

신이 인간의 형상’ 대범한 주장

생각하고 행동하는 존재, 문명을 일구는 존재, 궁극적으로는 그것을 통해 이 세계를 지배하는 존재. 바로 이것이 마네티가 그린 인간이었다. 따라서 그에게 인간은 존엄할 수밖에 없었다. 이와 같은 그의 생각은 ‘인간이 신의 형상대로 창조된 것’이라기보다, ‘인간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존재이기에 신이 인간의 형상일 것’이라는 대범한 주장에서 가장 잘 요약된다. 마네티에게서 예기치 못한 불경의 냄새를 맡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다면 앞선 세대의 몇몇 이탈리아인들이 수정과 교정을 통해 인노첸시오의 논고에 답하려 했다면, 마네티는 그 13세기 교황의 생각을 완전히 뒤엎으려 했다고 해도 무리는 아닐지 모른다. 다른 이들과 달리 인간의 육체를 예찬하면서 그가 너무도 분명한 현세적 세계관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미심장하게 바로 그 때문에 그의 인간 예찬에는 위험한 구석도 적지 않다. 신이 인간을 위해 우주를 창조했고, 그렇기에 우주의 모든 것들이 인간을 위해 봉사하고 인간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오늘날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찌푸리게 만드는 유럽인들의 오만한 세계인식의 일그러진 싹이 어렴풋하게나마 그 속에 숨어 있는 듯하다.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르네상스는 말과 글을 통해 고대 세계를 부활시키려던 지적 운동이었다. 14세기 이후 백가쟁명의 지성사를 검토하는 ‘르네상스와의 대화’로 인간과 사회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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