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70년의 오해' 한국 최초 누드화 그린 김관호, "그는 '동우'가 아니다"
근대 거목 서양화가 김관호 글씨로 알려진 채 거래
전후 혼란, 남북 분단 하 오해 지속
화가는 '동우 김관호' 아닌 '매원 김관호'로 추정
미지의 '동우 김관호' 새 인물 부상
한국미술사 새로 쓰여질 수도
15일 국립현대술관에 재직 중인 학예사 배원정 박사에 따르면, 서양화가 김관호는 ‘동우’라는 호를 쓰지 않았으며 1927년 조선일보 기사에 ‘매원’이라는 호로 표기된 기록이 발견됐다. 그간 ‘동우’라는 인장이 찍혀 김관호 글씨로 여겨지고 고미술상과 미술품 경매 회사 등에서 거래돼 온 서예작품들은 ‘동우’라는 호를 썼던 다른 김관호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배 박사는 “그간 ‘동우 김관호’의 서예전 등을 보며 서체가 평양 서단의 글씨로 보기에 의아하다 생각했고 여러가지 의문점을 갖게 해서 조사를 하게 됐다”며 “대단한 역사적 인물이기에 궁금증은 큰데 평양 출신이라 분단 이후에는 확인이 어려웠고, 그 시대 사람들은 다들 붓글씨를 썼기에 아마도 서양화가 김관호가 말년에 쓴 글씨일 것이라고 추측하면서 잘못된 정보가 사실로 굳어졌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오해가 생긴 시점에 대해 배 박사는 “현재까지 찾아낸 자료에 의하면, 분단 이후인 1959년도에 나온 책에 처음 적혔고, 이걸 그 다음 세대가 계속 받아쓴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최소한 62년간 서양화가 김관호가 오해돼 온 셈이다.
배 박사는 사료와 김씨 족보 등 방대한 자료를 조사한 결과, 화가 김관호의 것으로 알려져온 서예작품은 공교롭게도 똑같은 한자를 쓰는 대한제국 궁내부(宮內府)에서 근무한 사무관(事務官) 김관호(金觀鎬, 1863-1934)가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배 박사는 그러면서 화가 김관호와 서예가 김관호에 대해 각각 정확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배 박사는 “분단 이후 김관호의 행적을 살필 수 없는 상황 탓에, 화가 김관호와 대한제국 궁내부 사무관 김관호를 혼동하는 결과를 낳았다”며 “이는 화가 김관호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방해함과 동시에 진짜 동우 김관호의 서예와 문학, 민족주의자로서의 면모들을 가리게 됐다”고 말했다.
서양화가 김관호는 1916년 동경미대 졸업 후 한국 최초로 누드화 작품 ‘해질녘’을 그려 일본 문부성전람회에 출품, 특선을 받은 유일한 인물이다. 당시 매일신문이 누드화라는 이유로 신문에 작품을 게재하지 못한다고 밝히며 수상 소식을 전한 사건이 유명하다. ‘일제강점기 천재 화가’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평양에서 태어나 남북 분단 이후에는 북한에서 활동을 이어갔다.
그간 한국미술사학에서 김관호는 천재 서양화가였으나 말년에 서예에 더 집중한 인물로 이해됐다. 인사동 고미술상에 ‘동우 김관호의 서예작품’이 유통돼왔고, 메이저 미술품 경매회사에 ‘동우 김관호 서예작품’이 올라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학계에서는 김관호에 대해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존재했다. 서병호의 책 서문을 김관호가 썼다는 기록이 대표적 사례다.
1936년 구황실의 전의장(典醫長)을 지낸 서병효(徐丙孝, 1858-1939) 진료소 동남약방(潼南藥房)에서 ‘경험고방요초(經驗古方要抄)’를 펴냈는데, 이때 책의 서문을 ‘동우 김관호’가 썼다. 서문에서 김관호는 서병효를 ‘나의 벗’이라고 하는 등 친근하게 부르기도 한다. 당대 의료계와 화단의 유명인사가 ‘특별한 교류’를 한 역사로 해석돼 왔다. 하지만 1858년생인 서병효와 1890년생인 서양화가 김관호의 32살 나이차는 설명되지 않았다. 배 박사의 지적대로 이 책에 등장하는 김관호가 대한제국 궁내부 사무관 김관호라면 의문점이 풀린다.
배 박사는 16일 미술사학연구회 2021년 추계학술대회 ‘전후 평양화단의 재편과 전개’에서 이같은 내용의 연구 결과를 발표한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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