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증시에도 자동차주는 왜 끄떡없을까
반도체난 해소로 전망도 '맑음'
최근 국내 증시가 널뛰기 장세를 보이며 한 치 앞도 예측하기 어려운 모습이지만 자동차 관련주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견조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그간 자동차업계를 괴롭혔던 차량용 반도체 부족 문제가 해소 국면으로 접어든데다 국내 자동차업체들이 꾸준히 비중을 줄여온 중국 시장의 상황이 나빠지면서 반사이익까지 기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증권가는 자동차주와 관련해 3분기 실적에 대한 기대치를 낮춰야 한다면서도 현재 주가가 바닥을 지나고 있는 만큼 반등 가능성은 높다는 견해다.
자동차주, 시장 흐름 '역주행'
1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날 KRX 자동차 지수는 2269.36으로 마감했다. 지수가 바닥을 찍은 지난 6일 2068.92와 비교하면 6거래일 만에 10%나 상승한 것이다. 같은 기간 코스피 지수는 3.7% 상승하는 데 그쳤다.
현대차와 기아 등 완성차업체는 물론 현대모비스와 한온시스템,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등 주요 자동차 부품주 주가도 모두 상승했다. 현대차는 지난 6일 19만4000원에서 15일 20만8500원으로 7.5% 뛰었고, 기아 12.2%, 현대모비스 8.4%, 한온시스템과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는 각각 5.4%, 5.9% 상승했다.
몸집이 작은 자동차 부품주의 상승세는 더욱 가팔랐다. 지난 5거래일간 코스피 상승률 상위 종목 상단을 독차지했을 정도다.
현대차 넥쏘에 와이어하네스를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진 티에이치엔이 36% 올라 1위(우선주 제외)를 기록했다. 25% 오른 화신과 센트랄모텍(24.64%), 우신시스템(21.67%), 에스엘(21.51%)이 뒤를 이었다.
전화위복 된 '탈중국'
자동차주는 올 들어 증시가 상승세를 타는 와중에도 이와 반대로 꾸준히 하향 곡선을 그려왔다. 그랬던 자동차주가 하락장에서도 나 홀로 반등한 건 중국의 사드 보복 이후 낮아진 중국 의존도가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자동차업체들의 중국 내 판매량은 지난 2016년 중국의 한한령 이후 크게 감소하는 추세다. 현대차와 기아가 설립한 합작법인 베이징현대와 둥펑위에다기아의 중국 판매량은 한한령 본격화 직전인 2016년 각각 114만대와 65만대로, 합산하면 180만대에 육박했다. 그러나 2017년과 2018년에는 115만대 수준으로 급격히 줄어들어 2016년의 3분의 2 수준에 머물렀다. 이후 연간 20만대 규모의 감소세가 이어지면서 코로나19가 겹친 지난해에는 66만대 수준까지 쪼그라들었다.
올해 역시 비슷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올 들어 글로벌 시장에서 현대차는 265만대, 기아는 230만대를 판매하면서 판매량이 전년 대비 17%, 21%씩 늘어났지만 같은 기간 중국 시장 내 판매는 각각 29만대, 11만5000대로 전년 대비 19%, 25%씩 급감했다. 이에 따라 글로벌 판매 중 중국 시장 비중은 각각 9%, 6%로 줄어들었다.
현대차와 기아는 중국 시장 내 생산을 계속해서 줄여왔다. 베이징 1·2·3공장을 비롯해 창저우와 충칭 등 중국 내에 5곳의 공장을 보유한 현대차는 중국 내 부진이 장기화하면서 지난 5월 베이징 1공장을 전기차 업체 '리샹'에 매각하기로 했으며, 베이징 2공장 역시 매각 논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 후보로는 최근 전기차 시장에 뛰어든 샤오미 등이 거론되고 있다.
기아는 중국 장쑤성 옌청시에 운영 중인 공장 3곳 중 1공장을 2019년부터 합작법인 파트너인 위에다그룹에 장기 임대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중국 자동차 시장의 수요가 지지부진해지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낮아진 중국 매출 비중이 오히려 약이 된 것이다. 중국 자동차 시장은 지난해 5월부터 수요가 회복되다가 올 상반기부터는 감소세로 전환됐다. 특히 최근에는 감소폭이 전년 대비 10% 이상으로 커졌다.
이에 더해 중국 시장의 소비 부진이 생각보다 길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높은 부채 비율과 양극화 해소에 초점을 둔 '공동 부유' 정책 추진으로 향후 적극적인 소비부양책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어서다.
반면 현대차와 기아가 중국 시장의 대안으로 선택한 신흥국 시장은 경기 회복세를 보이면서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는 중국 대신 러시아와 인도, 브라질, 베트남 등의 신흥국 시장에 집중해왔다. 러시아와 베트남에서는 시장 점유율 1위, 인도와 브라질 시장에서는 각각 2위와 4위를 기록하고 있다.
원자재를 기반으로 한 경제 구조를 가진 러시아와 브라질은 최근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면서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 중국 대신 세계의 공장으로 떠오른 인도와 베트남 경제 역시 코로나19가 진정되면서 경기가 살아나고 있는 모습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 억눌렸던 소비 욕구가 분출되면서 자동차 수요가 폭발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중소형 부품사의 주가 상승폭이 대형사에 비해 두드러진 이유도 이와 마찬가지다. 중소형 부품사는 매출에서 현대차와 기아차 등 국내 업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편이다. 중국 자동차 시장의 침체가 길어질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GM과 포드, 폭스바겐 등 글로벌 업체를 고객으로 둔 대형사들은 매출 회복이 상대적으로 더딜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현대차와 기아의 실적 회복이 빨라지면서 중소형 부품사는 가파른 성장세가 기대된다.
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대형 부품사는 주요 고객사인 글로벌 완성차업체가 중국 시장에서의 입지가 줄어들면서 가동률 회복 수혜가 느리게 나타날 전망"이라며 "현대차와 기아에 대한 매출 의존도가 높고 중국 비중이 낮아진 중소 부품사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차량용 반도체 공급도 정상화
올해 내내 자동차업체들의 발목을 잡았던 차량용 반도체 부족 현상도 점차 해소되는 분위기다. 수요가 여전한 와중에 공급 문제가 해결되면서 자동차 업체들의 실적은 자연스럽게 좋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공급난의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 동남아시아 반도체 공장 가동 중단 사태는 코로나19 확진자가 줄면서 점차 정상화되고 있다. 반도체 패키징 등 후공정 설비가 집중돼있는 말레이시아의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8월 말 정점을 찍고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9월 말 기준 말레이시아의 후공정 설비 가동률은 80% 수준까지 회복됐다.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의 대규모 차량용 반도체 설비 투자도 이어진다. 글로벌 파운드리 업체 TSMC와 SMIC는 각각 28억8000만달러(약 3조4000억원), 88억7000만달러(약 10조5000억원) 규모의 차량용 반도체 설비 증설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인텔은 향후 10년간 800억유로(약 110조원)를 투자해 유럽에 차량용 반도체 공장 2개를 짓고 아일랜드 공장의 설비를 증설할 계획이다. 내년 하반기부터 이들 회사의 증설 물량이 공급되기 시작하면서 반도체 부족 문제는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자동차 업종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사라지면서 주가가 바닥을 찍고 반등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정용진 신한금융투자 수석연구원은 "올 3분기 현대차와 기아의 실적은 예상치를 밑돌 것으로 보이나 이는 이미 주가에 반영된 듯하다"며 "실적 악화 원인이 사라지면서 올 4분기부터 실적 개선이 빠르게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진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도 "3분기 자동차업체들의 실적 부진은 수요가 아닌 공급으로 인한 업계 전반의 문제"라며 "현대차와 기아는 최근 북미와 유럽 시장에서 사상 최고 점유율을 경신하고 있다"고 전했다. 생산 차질에 가려진 본질을 볼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익진 (jinlee@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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