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수사 부실 인정하고도.. 책임자 단 한 명도 처벌 안해 [심층기획]
공군 여중사 피해 80일 지나 극단선택
사건 초기 특임군검사 임명 해결 의지
219일 만에 수사 종료.. 15명 기소 그쳐
초동수사 담당 20비행단 군사경찰 등
지휘·감독 책임자들 모두 불기소 처분
"직무유기는 아니지만 미진했다" 해명
사건 은폐·2차 가해 등 고질병 드러나
관련자료 확보 등 대응 과정도 비상식적
'제 식구 감싸기' 비판 속 변화 노력 시급
“그렇다.”
지난 7일 공군 여중사 성추행 사건 최종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취재진과 국방부 검찰단이 주고받은 질의응답이다. 검찰단은 피해자인 이 중사를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 한 부실 초동수사 책임자 중 단 한 명도 사법처리 대상에 포함하지 못했다. 검찰단은 초동수사에서 잘못된 점은 있지만, 형사처벌을 할 만한 법리적 입증이 어려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국방부 수사결과에 따르면 충남 서산 제20전투비행단 소속으로 근무 중이던 이 중사는 지난 3월2일 상관인 노모 상사가 주도한 저녁 회식에 참여했다. 이후 부대로 돌아오는 차량 뒷자리에서 가해자 장모 중사의 성추행이 시작됐다. 이 중사가 수차례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장 중사는 성추행 행위를 반복했다.그는 다음날엔 오히려 “온종일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라며 자살을 암시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 사건이 처음 세상에 알려진 것은 지난 5월31일이다. 국방부 검찰단은 다음 날인 6월1일 공군으로부터 사건을 이관받아 재수사에 착수했다. 서욱 장관은 6월9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방부 차원에서 사건을 수사하고 있기 때문에 저한테 맡겨 달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이후 검찰단은 7월9일 관련자 22명을 입건하고 이 가운데 10명을 재판에 넘겼다며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국방부는 7월19일 창군 이래 처음으로 해군본부 검찰단장 고민숙 대령(진)을 특임군검사로 임명하기도 했다. 이번 사건 수사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각계 민간 전문가 18명을 위원으로 한 군검찰 수사심의위원회도 별도로 구성했다. 심의위는 6월11일부터 9월6일까지 3개월간 9차에 걸쳐 피의자들에 대한 기소 여부를 심의했다.
◆사건 발생부터 수사까지 민낯만 드러낸 軍
이번 사건은 발생부터 수사까지 전 과정에서 군 조직의 고질적인 병폐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군에서 여전히 여군을 바라보는 안일한 시선과 만연한 2차 가해, 인사상 불이익을 피하기 위한 사건 은폐 등은 이번 사건을 거대한 눈덩이로 키웠다.
성추행 사건 때문에 숨진 공군 이모 여중사의 사례는 군의 존재이유를 부정하게 만들었다. 군은 이 중사의 사망 이후 표면적으로는 변화를 모색하며 재발방지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실효성엔 여전히 의문부호를 남기고 있다.
이번 사건의 본체인 공군은 군사경찰단 업무 중 독립적으로 수사 업무만을 전담하는 공군본부 직할부대 ‘공군수사단’을 창설했다. 기존의 부대별로 운영해오던 수사조직을 통합해 중앙수사대 및 권역별 5개의 광역수사대와 과학수사센터로 재편성했다. 기존 군사경찰단은 수사 기능을 제외한 기지 방호, 대테러, 군내 질서유지 기능만을 담당한다. 이번 공군수사단 설치는 ‘국방개혁2.0’에 따른 군 사법제도 개혁의 일환이지만, 이 중사 사건으로 공군이 발등에 불이 떨어져 시기를 앞당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실상 이 중사를 극단적 선택으로 몰고 간 2차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신고 전 피해자 지원 제도’도 지난달 1일부터 도입됐다. 인사상 불이익이나 피해 사실이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피해자가 수사기관에 신고하지 않고서도 심리상담·의료 지원·법률 조언 등 필요한 지원을 받을 수 있게 하고, 신고 전이라도 2차 피해 예방을 위한 모니터링을 할 수 있는 제도다.
국회는 지난 8월31일 군사법원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에 따라 앞으로 성폭력 범죄에 관한 수사와 재판의 1심부터 민간이 담당하게 된다. 이 중사 사건 이후 문재인 대통령의 특별 지시로 구성된 민관군 합동위원회도 지난 13일 성폭력 전담조직 신설, 2차 가해 책임자 처벌 강화 등 또 다른 이 중사 사례를 막기 위한 방안을 다수 마련해 국방부에 권고했다. 이 같은 군의 변화 움직임에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는 반면,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전문연구위원은 “군의 지금 대응 행태는 그야말로 ‘사상누각’”이라며 “군에는 이미 충분한 매뉴얼이 다 있다.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강조했다. 군의 변화 노력 자체가 구조적으로 효과를 보기 힘들다는 냉철한 지적도 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군이라는 폐쇄적인 조직성 때문에 시민사회의 감시가 불가능한 상황은 마찬가지”라고 우려했다.
구윤모 기자 iamky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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