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장막 너머 사람을 찾아서

이정아 2021. 10. 16.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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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 카메라 시절, 현상과 인화를 위한 필수 공간이던 암실은 사진기자들의 일상과 더불어 다양한 취재 후기가 오가던 사랑방이었지요.

김봉규 선임기자는 1990년 시사저널에서 사진기자로 첫발을 내딛었다.

회사 선후배로 시작된 인연은 김 기자가 1996년 한겨레로 적을 옮긴 뒤에도 긴 세월과 함께 익어갔다.

언론사의 바쁜 일과 중에도 15년 동안 제노사이드 현장을 찾아 사진으로 기록하는 후배 기자를 지켜본 선배가 지어준 문패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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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실 토크]암실 토크

사진을 일컬어 `빛으로 그린 그림'이라고 부릅니다.

필름 카메라 시절, 현상과 인화를 위한 필수 공간이던 암실은 사진기자들의 일상과 더불어 다양한 취재 후기가 오가던 사랑방이었지요.

장비를 챙기며 나누던 대화에서 기획의 실마리를 찾기도 하고, 현장에서 겪은 아찔함을 복기하며 다음을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모든 기기가 디지털로 바뀐 지금, 편집국에 공식적인 암실은 사라진 지 오래이나 그 이야기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기 위한 사진기자들의 수다를 `암실 토크' 연재로 전합니다.

김봉규 선임기자가 지난 15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 편집국에서 김훈 작가가 원고지에 손수 써준 제노사이드 연재 문패명 ‘사람아 사람아’를 들어보이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국내의 제주 4·3 학살 터와 대전 골령골을 비롯해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폴란드 전역과 독일 등 나치 시절 강제 및 절멸 수용소에 이르기까지 지구 곳곳에 흩어져 있는 민간인 대량 학살의 역사적 현장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는 김봉규 선임기자가 지난 6일 `사람아 사람아' 연재를 시작했다. 부제는 제노사이드의 기억.

-‘사람아 사람아'라고 연재명을 정한 까닭은?

5년 전 어느 날 김훈 작가가 전화를 걸어와 한 마디 툭 건넸다. “김봉규, 그 작업의 문패는 `사람아 사람아'로 해라.” 뒤에 그 뜻을 물었더니 한 많고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자신을 죽인 사람을 부르는 장면을 떠올렸다고 했다.

김봉규 선임기자는 1990년 시사저널에서 사진기자로 첫발을 내딛었다. 그 시절 김훈 작가가 사회부장으로 시사저널에 왔다. 회사 선후배로 시작된 인연은 김 기자가 1996년 한겨레로 적을 옮긴 뒤에도 긴 세월과 함께 익어갔다. 언론사의 바쁜 일과 중에도 15년 동안 제노사이드 현장을 찾아 사진으로 기록하는 후배 기자를 지켜본 선배가 지어준 문패명이다.

대학살에서 기적처럼 살아난 느다히노 패트릭(2014년 당시 23)이 은타라마 대량학살 기념관 내 희생자들의 유골 앞에 서서 밖을 바라보고 있다. 은타라마/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이곳 바다에서 우리 아버지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아버지를 잃은 김천덕씨가 2020년 6월 13일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괭이바다 선상에서 열린 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창원유족회 주최 합동추모제를 마치고 손으로 그 바다를 가리키며 말했다. 창원/김봉규 선임기자
2018년 9월28일부터 세종시 연기면 산울리(257-2번지, 옛 연기군 남면 고정리) 일원 야산에서 희생자 유해 발굴 중 함께 나온 한 고무신에선 이름 \

-‘민간인 대량 학살'을 오랜 사진 작업 주제로 정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1950년 6월 28일 한국전쟁 당시 피난길에 오른 한강인도교가 폭파됐다. 이들을 위한 첫 위령제는 57년이 지난 2007년에야 열렸다. 그 현장을 취재하며 `이렇게 한 많은 죽음들이 있구나' 눈 뜨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물음표들. 이리 저리 들여다보아 답을 하나 구하면 두세 개의 질문이 이어졌단다. 한강인도교에서 시작된 길은 대전 골령골, 창원 괭이바다 등을 거쳐 제주 4.3으로, 또 캄보디아 ‘킬링필드’를 비롯한 아시아로 이어졌다. 나치 시절 대표적 절멸 수용소였던 폴란드 마이다네크 화장터에서 마지막으로 이 작업에 대한 렌즈를 닫을 때까지- 그 15년의 순례를 김 기자는 `서성였다'는 동사로 표현했다. 현대사의 비극과 마주하는 작업의 무게 앞에서 옷깃을 여미게 되는 기록자의 마음이 느껴졌다.

종료 시점을 정하지 않고 시작한 연재, 그러나 그 끝 문장은 이미 그의 가슴 속에 담겨 있다. “이제 술 마시러 가야겠다.”

어쩌면 그에게 `민간인 대량 학살'을 기록한다는 것은 인류의 한 구성원으로서, 또 다큐멘터리 사진가로서의 책임감 아니었을까. 무거운 마음으로 긴 연재를 시작한 그의 용기를 응원한다. 마지막 원고에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그가 풀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그의 마음도 조금은 가벼워지기를.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편집자주: ‘사람아 사람아'라고 연재명을 정한 이유에 대해 김봉규 기자가 기억의 오류가 있었다고 전해와 일부 수정했습니다. 독자들께 불편드려 죄송합니다.

▶바로가기 : [사람아 사람아] 아프리카 르완다엔 개가 없었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13964.html

▶바로가기 : [만리재사진첩] 70년 전 괭이바다에 수장된 비극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49277.html

▶바로가기 : [영상] 학살의 흔적…은고개의 슬픈 고무신

https://youtu.be/oM8yDfeOM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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