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바이옴과 뇌건강 [조성진 박사의 엉뚱한 뇌 이야기]

노희준 2021. 10. 1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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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진 순천향대 서울병원 신경외과 교수가 뇌 이야기를 합니다. 뇌는 1.4 키로그램의 작은 용적이지만 나를 지배하고 완벽한 듯하나 불완전하기도 합니다. 뇌를 전공한 의사의 시각으로, 더 건강해지기 위해, 조금 더 행복한 인생을 살기 위해 어떻게 뇌를 이해해야 하고, 나와 다른 뇌를 가진 타인과의 소통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의학적 근거를 토대로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들과 함께 탐구해보겠습니다. 일주일 한번 토요일에 찾아뵙습니다.

[조성진 순천향대 부속 서울병원 신경외과 교수] 우리의 몸은 입으로부터 항문까지는 비어있는 구조로 되어있다. 인체에 필요한 모든 에너지원은 입을 통해 들어가서 분해와 흡수를 통해 얻어지고 있기에 장이라는 기관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 내장에서 일어나는 일은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이다. 장이 비어 있으면 정보를 뇌로 전달해서 음식을 먹도록 해야하고, 행여 장이 병원체에 공격을 당하고 있다면 이 또한 반드시 뇌가 알아야 한다. 따라서 장과 뇌 사이의 신경 연결은 중요한데 이를 총칭하여 장-뇌 축이라고 한다. 스트레스나 불안과 빠른 배변 사이의 관계는 이런 장-뇌 축의 한 예라 할 수 있다.

음식을 분해시키기 위해 소화 효소의 역할도 있지만 장안에 살고 있는 100조개의 마이크로바이옴이라 불리는 장내미생물의 역할도 매우 크다. 위와 소장이 우리가 먹는 특정 음식을 소화할 수 없을 때 장내미생물의 도움을 받아 우리가 필요한 영양소를 얻을 수 있다. 특히 장내미생물은 비타민 B와 K의 생산을 돕고 면역기능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내미생물군집의 2/3는 사람마다 고유하며 이것은 우리가 먹는 음식과 기타 환경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고 한다.

우리 몸이 대략 30조 개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으니 우리 몸에는 박테리아가 더 많이 살고 있는 것이다. 박테리아는 우리 종보다 수십억 년 전에 출현하였고, 앞으로도 수십억 년을 더 살 수 있는 종이다. 따라서 우리는 몸속에 우리의 조상을 모시고 사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건강과 질병에서 장내미생물의 역할은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2013년 ‘헬리코박터 파일로리’라는 장내 세균이 염증 조절과 관련된 면역체계를 변화시켜 위암과 십이지장 궤양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 유명한 연구이다. 최근에 주목할 만한 것은 장내미생물이 우리의 뇌와 행동을 조절할 수 있다는 연구이다. 장내미생물이 우리의 심리와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증거는 20년전에 알려졌는데 간성 뇌병증으로 뇌기능이 저하된 환자에게 경구 항생제를 복용한 후 뇌기능이 개선되었다는 것이었다. 이후 불안, 우울증 및 자폐증도 마이크로바이옴과 연관이 있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마이크로바이옴의 변화가 이런 정신과적 상태를 만든 것인지, 아니면 정신과적 상태와 그에 따른 행동 패턴의 변화로 마이크로바이롬이 변화 된 것인지 증명하기가 어려웠다.

최근에는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이 어떻게 뇌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했는데, 그 가설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장 내벽의 투과성이 증가하게 되고, 이 때 마이크로바이옴이 장신경계에 있는 미주신경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또는 장신경계에 있는 감각뉴런과 미생물유전체의 직접적인 접촉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연구자들은 마이크로바이옴이 대사산물을 방출하여 체내 칸타비노이드 시스템에 작용하여 기분 조절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또 다른 연구는 장내미생물 건강을 회복하는 것이 우울증 치료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인데 프로바이오틱스를 복용하였을 때 우울증 환자의 기분이 개선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장내미생물이 뇌 기능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최근 쥐 실험에서 스트레스로 인한 장내미생물총의 변화가 항우울제인 프로작(플루옥세틴)의 효능을 감소시킨다는 사실이 발견되었고, 다른 연구에서 우울증이 있는 쥐의 분변을 건강한 쥐에 이식을 하였더니 건강한 쥐에서도 우울증의 증상이 보였다고 하니 이러한 사실이 조금씩 증명이 되고 있는 듯 하다.

미래에는 마이크로바이옴을 이용한 의약품이 정신질환 치료를 위해 만들어 질 것으로 생각된다. 최고의 지능을 가진 인간이 부분적으로나마 단세포 생명체의 통제 하에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이야기이며, 마이크로바이옴의 연구로 지금 정복하지 못했던 질병도 미래에는 치료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이야기이다. 인체는 알면 알수록 점점 오묘해진다.

노희준 (gurazip@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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