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신석기 벼농사 증거 '고양시 볍씨' 기념탑 세운다

황대일 2021. 10. 1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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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지볍씨 발굴터 주변 2022년 건립 목표로 추진

(고양=연합뉴스) 황대일 기자 = 1991년 일산 신도시 개발 현장에서 출토된 가와지볍씨의 역사적 의미를 기록한 기념탑 건립이 추진된다.

가와지볍씨 상징물 [고양시 농업기술센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가와지볍씨는 발굴 시점을 기준으로 5020년 전에 경작된 것으로 나타나 한반도 벼농사가 청동기시대가 아닌 신석기시대에 시작됐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중국 벼가 남방 해상로를 따라 일본으로 전수됐다는 기존 학설에도 의문이 생겼다. 가와지볍씨 출토를 계기로 한국 벼가 일본으로 들어갔을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고양시는 이러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 가와지볍씨의 발굴 30주년을 맞아 기념탑 건립을 준비하고 있다.

정현덕 고양시 농업기술센터 도시농업팀장은 16일 "관련 예산안이 오는 19일 시의회를 통과하면 2022년에 기념탑을 건립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기념탑 건립 후보지로는 볍씨가 출토된 일산서구 대화동 장성초등학교 주변 2곳이 선정됐다. 가와지볍씨와 주먹도끼, 토기 등이 전시된 가와지볍씨 박물관이 2013년 고양시 덕양구 농업기술센터에 건립됐으나 볍씨 발굴 지역에는 아무런 상징물이 없는 점을 고려한 조치다.

고양가와지볍씨 박물관 안내판 [고양시 농업기술센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가와지볍씨는 일산신도시 개발사업이 한창이던 1991년 6월 발견됐다. 이융조 충북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가 이끈 발굴팀이 한강 하류 주변 논바닥을 삽으로 파 들어가다가 토탄층에서 볍씨 12톨을 확보했다.

이 교수는 공주 석장리와 청원 두루봉과 소로리, 단양 수양개 등에서 구석기 유물을 발굴한 주인공으로도 유명하다.

평균 길이와 너비가 각각 7.03mm, 2.78mm인 가와지볍씨는 약간 가늘고 길지만, 오늘날의 단립종 벼(자포니카)와 유사하다. 명칭은 출토 지역인 고양군 송포면 대하4리 가와지마을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가와지볍씨 모양 확대한 상징물 [고양시 농업기술센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가와지볍씨는 방사성탄소연대 분야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미국 베타연구소(BATA ANALYTIC INC)에 보내져 측정한 결과 5020년 전에 생성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특히 사람이 재배한 흔적은 한반도 벼농사가 청동기시대에 시작됐다는 기존 학설을 뒤흔드는 단서가 됐다.

통상 벼의 재배 여부를 판단할 때 벼 줄기와 낱알을 연결하는 '소지경(小枝莖)'을 관찰한다. 야생 벼는 알곡이 완전히 익으면 소지경이 저절로 떨어지지만, 재배 벼에서는 그대로 유지되는 특징을 활용한 감별 방식이다.

소지경이 떨어진 단면도 서로 다르다. 자연스레 이탈된 곳에는 매끄러운 원형 흔적이 남지만, 인간의 수확으로 잘린 단면은 거칠다.

가와지볍씨의 소지경은 손이나 도구 등으로 뜯어 생긴 울퉁불퉁한 모습을 띠었다. 동일 지역에서 발견된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에서도 재배 벼에 존재하는 규소체가 포착됐다.

발굴팀은 이런 흔적 등을 근거로 가와지볍씨가 우리나라 최초의 경작 벼라고 결론지었다. 학계 일각에서는 한반도 농경문화의 시작이 청동기시대가 아닌 신석기시대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반도 최초의 재배 벼가 발견되자 외국에서도 높은 관심을 보였다.

1994년 9월 17일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가와지볍씨를 자세히 소개했다. 가와지 유적에서 출토된 쌀이 5천 년 전의 재배종으로 밝혀짐으로써 한반도 벼농사 역사가 약 2천 년 앞당겨졌다는 보도였다.

이 신문은 가와지볍씨 출토를 계기로 일본 쌀의 기원을 둘러싸고 논란이 예상된다는 평가도 했다. 중국 벼가 대만과 일본 남방 섬들을 거쳐 본토로 들어왔다는 것이 당시 일본 학계의 정설이었다.

그런데도 국내 학계에서는 신석기시대에 한반도 벼농사가 시작됐다는 주장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게 다수설이다. 가와지볍씨 외에 농기구와 경작 흔적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게 이들의 견해다.

충북대 퇴직 이후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이사장으로 활동하는 이융조 교수는 학계의 이런 시각은 잘못됐다고 비판한다. 신도시 개발로 신석기 유적이 대부분 사라져 농기구 등을 확보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신석기시대에 벼농사가 시작됐음을 공인받으려면 추가 증거 확보가 필요한 상황"이라면서 "앞으로 고양시 한강 하구 주변의 농경지를 개발할 때는 정밀 조사작업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had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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