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방' 조주빈 42년, '아동 성착취' 손정우 1년6개월.. 형량 차이 왜?

박지원 2021. 10. 16.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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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성범죄에 범죄단체조직죄 첫 확정.. 중형 결정타
텔레그램 n번방 사건 드러나며 여론·법원 인식도 변화
당시 손정우에 유리하게 참작된 각종 감경 사유 차이도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왼쪽)과 ‘웰컴투비디오(W2V)’ 운영자 손정우. 연합뉴스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6)이 징역 42년형을 확정받으면서 다크웹을 이용해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 사이트 ‘웰컴투비디오(W2V)’를 운영하며 20만건이 넘는 아동 성착취물을 유포하고도 징역 1년6개월에 그친 손정우(25)와의 형평성 논란이 재가열되고 있다.

손씨의 형량이 터무니없이 낮다는 지적은 지속해서 제기됐지만, 손씨가 이미 선고받은 형을 다 살고 만기출소한 탓에 국내법으로 재처벌은 어려운 상황이다. 법원은 지난해 7월 손 씨에 대한 미국의 범죄인 인도 청구 송환도 불허했다.

반면 조씨에 대해서는 1·2심 법원 모두 40년 이상의 중형을 선고한 데 이어 대법원도 범죄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상고를 기각했다. 미성년자 대상 온라인 성착취 범죄를 저지른 두 사람에 대한 처벌이 이토록 차이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범죄단체조직죄 인정으로 디지털 성범죄에 유례없는 중형 선고

15일 법원에 따르면 전날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범죄단체조직, 살인예비, 유사강간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4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조씨에게 내려진 중형은 법원이 생후 6개월 영아까지 성범죄 대상으로 삼았던 아동 성착취 사이트 W2V 전 운영자 손정우에게 1년 6개월의 가벼운 처벌을 내렸던 것과 비교하면 크게 차이가 난다. 조씨와 손씨의 처벌이 이토록 달랐던 데에는 ‘범죄단체 조직죄’ 적용 여부가 중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형법 114조는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 또는 집단을 조직하거나 가입 또는 그 구성원으로 활동한 사람을 범죄단체조직 혐의로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지난 2013년에는 범죄단체에 이르지 못하는 조직은 범죄집단으로 보고 해당 법으로 처벌하도록 개정됐다.

텔레그램 성착취방에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해야 하는지 대해 수사 초기부터 갑론을박이 있었다. 그러나 검찰은 박사방 운영자와 핵심 연루자들이 범죄를 목적으로 역할을 분담하고 수고비 등을 주고받았으며 내부 규율까지 만들어 행동한 만큼 범죄집단으로 볼 수 있다고 보고 해당 혐의를 적용했다. 

조씨는 재판 과정에서 성착취물 제작·유포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박사방은 개인의 욕구에 따른 일탈이었을 뿐 범죄집단이 아니라는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1·2심 재판부는 물론 대법원도 이들이 범죄집단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중형을 선고했다.
사진=연합뉴스
◆디지털 성범죄 심각성 대한 여론·법원 인식 변화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 여론과 법원의 인식 변화도 두 범죄자에게 적용된 형량의 차이를 만들었다. 

텔레그램 ‘n번방’의 실체가 드러나기 전까지 온라인 성범죄는 오프라인 성범죄에 비해 가벼운 것으로 여겨져 피해를 인정받기 쉽지 않았다. 제대로 된 양형 기준도 없어 구형과 판결 역시 제각각이었다. 2018년 9월과 2019년 5월에 각각 1심과 2심 판결을 받은 손정우가 낮은 형량을 받은 것도 이 같은 당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조은호 변호사는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발생 전까지 디지털 성범죄는 피해자에게 직접적인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 범행이 가상공간에서만 이뤄진다는 이유 등으로 비교적 심각하지 않은 범죄로 인식됐다”고 설명했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으로 국민적 공분이 일자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지난해 9월에야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을 마련했다. 새 양형 기준은 통상 효력을 갖기 이전에 기소된 사건에 대해 소급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지난해 4월 기소된 조주빈은 원칙적으로 적용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에 대한 사법부 전반의 인식 변화가 이미 진행 중이었고 바뀐 양형 기준을 소급적용하는 것이 위법은 아니라는 대법원 판례(2009도11448 판결)도 있어 재판부가 바뀐 양형 기준을 완전히 무시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웹사이트 '웰컴투비디오' 운영자 손정우가 지난해 11월 9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심문)를 마친 뒤 호송차로 이동하고 있다. 뉴스1
◆‘불우한 어린 시절’, ‘혼인’ 등 가해자 중심적 감경 사유도

나이가 어리다거나 혼인신고를 했다는 등 각종 감경 사유도 손씨가 조씨에 비해 턱없이 낮은 처벌을 받은 원인이 됐다. 

2018년 1심 재판부는 “손씨의 범행은 아동·청소년에 대한 인식을 성적으로 왜곡하는 것으로 사회에 미친 해악이 크다”면서도 “손씨의 나이가 어리고 일정 기간 구금돼 있었다”는 점을 감경 사유로 들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 역시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제작자와 그 소비자를 연결해주는 매개 혹은 촉진의 역할을 함으로써 사회적으로 미치는 해악이 매우 크다”면서도 “범죄사실을 자백했고 어린 시절 정서적·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간을 보냈으며 성장 과정에서도 충분한 보호와 양육을 받지 못한 점” 등을 참작해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항소심 선고 16일 전 혼인신고를 해 부양할 가족이 생긴 점도 낮은 형량이 내려질 수 있었던 감경 사유로 작용했다. 

일부 시민단체들은 이 같은 감경 사유가 지나치게 가해자 중심적이라며 지속적으로 변화를 요구해왔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서승희 대표는 손씨의 낮은 형량 역시 가해자에게 지나친 관용을 보인 법원의 안이함이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서 대표는 “국민들이 손정우가 미국으로 송환돼 제대로 된 죗값을 치르길 기대했던 건 근본적으로 너무 낮았던 양형의 문제”라며 “관용과 용서가 재범을 방지할 것이라는 안이한 태도로 가해자 입장에서 감형해주기보다 제대로 된 처벌이 더 큰 범죄를 막고 수요를 차단할 수 있는 예방책이라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지원 기자 g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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