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중계 시장, TV 가고 OTT 온다

배진경 2021. 10. 16.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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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의 안과 밖] 오랫동안 야구, 축구를 취재해온 최민규(한국야구학회 이사), 배진경(전 〈포포투〉 편집장) 등이 스포츠 현장과 그 이면의 소식을 전합니다.
스포츠 중계 시장이 인터넷 스트리밍 기반의 OTT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지상파와 케이블 채널은 중계권을 확보해 중계 자체로 돈을 벌었지만 OTT 시장은 조금 다르다.
8월15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과 맨시티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은 손흥민 선수(오른쪽). ⓒEPA

10년도 더 된 일이다. 한 축구단 관계자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라이벌은 영화입니다.”

그때만 해도 ‘기 싸움’으로 해석될 말이었다. K리그에서 손에 꼽히는 라이벌전을 앞두고 있던 터라 상대를 시야에 두고 있지 않다는 말로 여겨졌다. 속뜻은 달랐다. 축구를 축구장 안에서 벌어지는 ‘국지전’의 콘텐츠로만 두어선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사람들이 주말에 뭘 할까 고민할 때 극장보다 축구장으로 향하는 시대가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라고 말하던 그의 표정은 진지했다.

기억 저편의 그 말이 다시 떠오른 건 국가대표 A매치 중계를 볼 때였다. 2022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경기를 보려고 TV 채널을 돌리다 tvN에서 리모컨 조작을 멈췄다. 예능과 드라마에 주력하는 엔터테인먼트 채널에서 축구를 중계하다니. 같은 시간, 같은(CJ ENM) 계열사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인 티빙에서도 경기를 볼 수 있었다. 축구와 엔터테인먼트의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던 그 옛날의 주장은 반쯤 이뤄진 셈이다.

그렇지만 호기롭게 외치던 그도 미처 몰랐을 것이다. 불과 10년 만에 인터넷과 모바일이 극장을 대체하는 시대가 될 줄은. 콘텐츠로서의 축구가 대중문화로 수렴되는 풍경도 예상 밖이다. 플랫폼 변화가 새로운 시대를 몰고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포츠 중계 시장은 인터넷 스트리밍 기반의 OTT 중심으로 재편되는 흐름이다. 기존 시장은 지상파와 케이블 채널이 주도했다. 중계권을 확보해 중계 자체로 돈을 벌었다. 중계 앞뒤로 광고를 붙여 수익을 확보했다. OTT 시장은 조금 다르다. 콘텐츠를 유료로 제공한다. 새로운 이용자를 끌어들여 돈을 버는 구조다. 가입자 확보에 OTT 성패가 갈린다.

유료화 정책을 선도한 곳은 SPOTV다. 전문성을 내세웠다. SPOTV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스페인 라리가, 이탈리아 세리에A 등 유럽 주요 리그 중계권을 보유하고 있다. 과거에는 타 방송사나 포털사이트, 뉴미디어 등에 재판매하거나 직접 중계를 통한 광고로 수익 구조를 만들었다. 지금은 TV 채널(SPOTV ON)과 OTT 서비스(SPOTV NOW)를 유료화하는 것으로 수지를 맞추고 있다. 상품성이 가장 높은 콘텐츠는 EPL 경기다. 중계권료가 비싼 만큼 화제성과 시청률을 보장한다. SPOTV가 프리미어리그에 지불한 중계권료는 110억원을 훨씬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티빙은 월드컵 최종 예선 외에 아시아축구연맹(AFC)이 주관하는 2023 아시안컵, U-19 아시아챔피언십, 2024 파리 올림픽 아시아 예선 등 대표팀 경기 중계권을 확보했다. 지난 6월에는 유럽축구선수권(유로 2020)도 중계했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는 독일 분데스리가와 3년 중계 계약을 체결했다. 이커머스 기업 쿠팡도 자사 OTT 쿠팡플레이를 통해 축구 경기를 중계하고 있다. 손흥민 소속 팀 토트넘(EPL), 이강인 소속 팀 마요르카(라리가)의 리그 경기 및 황의조(보르도)와 메시(PSG)가 뛰고 있는 프랑스 리그앙 경기가 주요 콘텐츠다.  

중계 시장을 둘러싼 미디어 환경은 코로나19 여파로 급변했다. 사람들이 집에 머물거나 집에서 근무하는 시간이 늘면서 자연스럽게 OTT 이용률이 증가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공개한 ‘2020 방송매체 이용행태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 이후 방송·OTT 시청 시간이 증가했다는 응답은 32.1%로, 감소(2.3%)보다 크게 나타났다.

OTT의 일상화가 이뤄진 현재 대부분의 콘텐츠는 드라마와 영화에 집중되어 있다. 모든 채널에서 비슷한 콘텐츠를 나열할 때, 스포츠 중계를 비롯한 스포츠 콘텐츠를 보유한 채널은 차별성을 갖는다. 구독자 처지에선 스포츠 중계만 보려고 OTT에 가입하기보다 스포츠를 품고 있는 OTT를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유의미한 결과도 있다. 모바일 빅데이터 분석업체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유로 2020 기간 티빙의 2030 남성 구독자 비율은 16.44%로 이전 한 달간(14.49%)보다 증가했다. 업계 관계자는 “OTT의 중계권 경쟁은 시장 점유율 확보를 위한 전략”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OTT발 소란이 K리그에 주는 시사점

콘텐츠로서의 축구는 타깃을 세분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대표팀 경기에 열광하는 팬, 해외 축구를 즐겨 보는 팬, K리그를 비롯한 국내 축구를 챙겨 보는 팬 등이다. 사용자의 선호도와 연령대를 고려해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는 OTT로서는 타깃 분석이 수월해진다.

콘텐츠로서의 지속성은 또 다른 매력이다. 축구는 생중계뿐만 아니라 다시보기, 하이라이트 클립 등을 통해 플랫폼에 오래 머무르게 하는 콘텐츠가 될 수 있다. 매주 이어지는 리그 경기의 경우 시즌제 드라마와 같은 재방문을 유도한다. 유럽의 스포츠 빅데이터 기업 델타트레는 2019년 ‘Where the money is going(돈은 어디로 향하는가)?’라는 리포트에서 OTT 기반으로 변화할 중계 시장을 전망하며 “단순히 경기를 스트리밍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생중계가 없을 때에도 편집 콘텐츠를 다양한 유형의 팬에게 맞춤 제공해 참여를 이끌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쿠팡플레이가 대한축구협회와 공식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축구 대표팀의 2022 월드컵 도전기를 담은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OTT발 소란(?)은 K리그에도 시사점을 던진다. 중계권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다.

중계권으로 매출을 늘릴 수 있다. 수익이 커지면 K리그가 속한 산업의 구조가 달라진다. 시대 흐름을 파악하고 플랫폼을 바꾼 일본 J리그가 그런 사례다. J리그는 2015년 기존 중계권 사업자였던 스카이퍼펙트TV(스카파) 대신 인터넷 스트리밍 업체인 DAZN과 계약했다. 연간 2222억원 수준으로, 10년이면 2조원에 달하는 초대형 계약이었다. 이 돈은 리그를 구성하는 팀에 분배금으로 돌아갔다. 자금력을 확보한 클럽들은 토레스, 이니에스타, 포돌스키 등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들을 영입했다. 경기력과 화제성을 두루 잡으며 흥행에도 성공했다.

K리그는 갈 길이 멀다. 경기력은 아시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지만, K리그 경기는 대표팀 경기 하부 콘텐츠라는 인식이 강했다. 스스로 콘텐츠를 유료화하는 데 보수적이기도 했다. 작은 발전은 있었다. 지난해부터 해외에 중계권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2부 리그 자체 중계 시스템을 구축해 균질한 영상을 제작하는 데도 공을 들이고 있다. 플랫폼 변화, 유료화 전환이라는 거대한 파도 속에서 과도기를 헤쳐나가는 중이다.

배진경 (전 <포포투> 편집장)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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