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을 기르다가 '반려 거미'를 만났습니다

안희제 2021. 10. 16.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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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화분들을 베란다로 데려가서 샤워를 시키듯 물을 준다.

언제나 곁에 있던 거미였지만, 반려식물들과 살아가면서 베란다에서 후다닥 움직이는 작고 까만 거미는 비로소 우리 일상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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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인의 오후] '짝이 되는 동무.' 반려라는 단어에 담긴 의미입니다. 고양이, 개, 식물 등 짝을 이뤄 함께 살아가는 반려인들의 단상을 담았습니다.
ⓒ안희제 제공

아빠는 화분들을 베란다로 데려가서 샤워를 시키듯 물을 준다. 화분에서 물이 충분히 빠지면 그때 다시 화분 받침으로 데려다 놓았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아빠는 물을 줄 때마다 아가 고양이나 강아지라도 본 듯 웃기 시작했다. 식물이 아니라 거미 때문이었다.

화분에 물을 주다 보면 물방울이 사방으로 튄다. 그러다 보면 작은 물방울이 거미줄에 걸린다. 그런데 베란다에서 물 주는 곳 근처에 거미줄을 치고 살아가는 아주 작고 까만 거미가 그 물방울이 자기 먹이인 줄 알고 후다닥 달려오는 것이었다(사진). 그렇게 달려왔다가 그게 그냥 물방울이라는 걸 발견하면 계속 튀는 물방울을 피하려고 다시 자기가 있던 구석으로 후다닥 도망가는 거미를 보고 아빠는 그렇게 웃음이 나왔다고 한다.

아빠는 이 귀여운 거미 좀 보라며 나와 엄마를 불러내곤 했다. 식물을 기르면서 벌레는 우리에게 좀 더 익숙한 존재가 되었다. 벌과 나비가 반가워졌고, 개미는 더 익숙해졌다. 언제나 곁에 있던 거미였지만, 반려식물들과 살아가면서 베란다에서 후다닥 움직이는 작고 까만 거미는 비로소 우리 일상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침의 베란다에는 아빠의 웃음 대신 걱정스러운 침묵이 깔리기 시작했다. 원래는 왼쪽 구석을 중심으로 들락날락하다가 얼마 뒤부터는 오른쪽 구석에서 물을 피하더니…. 대체 우리 거미는 어디로 갔을까. 이제는 자기 거미줄에 물방울이 걸려도 후다닥 달려 나오지 않는 걸까.

식물에게 우리 집은 살 만한 곳일까?

아빠와 나는 별의별 걱정을 다 하기 시작했다. 베란다에 있는 다리가 훨씬 긴 거미에게 잡아먹히기라도 한 것일까? 아니면 에어컨 실외기 때문에 갑자기 뜨거워진 베란다에서 죽은 걸까? 다행히도 거미는 얼마 뒤에 물이 닿지 않는 안전한 구석에서 다른 거미와 함께 우리의 웃음을 되찾아주었지만, 베란다 거미 실종 사건은 현대 도시에서 식물의 반려 인간으로 살아가는 일을 돌아보게 했다. 여름의 에어컨과 실외기, 겨울의 난방은 거미뿐 아니라 식물에게도 큰 위협이다. 과연 식물에게 우리 집은 살 만한 곳일까?

나는 도시에서 식물을 기르는 것이 그 자체로 문제라 생각하지 않는다. 자연과 문명은 이미 서로의 안에서 자기 자신을 유지하고 있고, 도시에서의 원예가 식물에게 더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삶의 장소와 방식은 경직적이어서 바꾸는 데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 우선 당장 삶의 형태 안에서 우리는 공생을 모색해야 한다.

에어컨의 풍향과 바깥 날씨를 동시에 고려하면서 화분의 위치와 환기의 빈도를 바꾼다든지 하는 작은 실천을 하면서도, 동시에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함께할 방법을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 화단의 식물과 동네 고양이를 쫓아내는 실외기를 지금처럼 두는 것이 과연 괜찮은지, 식물이 단지 즐거움을 주는 대상으로 ‘소외’되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매일 아침 거미의 안부를 묻는 일은 계획에 없었다. 아빠는 자신이 거미를 돌보지 않고 귀여워하기만 하므로 ‘반려 거미’가 아니라 ‘애완 거미’라고 했지만, 이제는 나도 물을 줄 때 거미줄이 끊어지지 않도록 신경을 쓰게 되었다.

식물과의 관계는 언제나 예상치 못한 만남을 수반한다. 거미도 우리의 일상에 아주 가늘지만 끈질긴, 거미줄 같은 흔적을 남긴 것 같다.

안희제 (작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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