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공 하나에 목숨 걸 순 없다

정현권 2021. 10. 16.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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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골프] 가을 중순에 접어들었지만 여름 장마처럼 수시로 비가 내린다.

일년 중 골프를 하기에 가장 좋은 계절에 예상치 못한 비가 장애다. 이 즈음 더 주의해야 할 게 있다.

골프장 연못(해저드) 익사사고다. 올가을 유난히 자주, 그리고 많이 내리는 비에 연못은 그 자체로 안전에 큰 해저드(Hazard)다.

지난주 파주의 골프장에서 경험한 일이다. 티잉 구역에서 날린 한 동반자의 공이 연못 주변으로 날아갔다. 방향이 약간 어긋났을 뿐 일직선으로 쭉쭉 뻗는 호쾌한 타구였다.

어림잡아 220m는 날아간 듯했다. 다른 동반자들은 두 번째 샷을 위해 각자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다. 캐디도 다른 일로 바빴다.

모두 그린 주변으로 향하는데 뒤돌아봐도 공을 찾으러 간 동반자가 보이지 않았다. 그린 쪽에서는 언덕에 가려 연못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캐디와 함께 가보니 그가 젖은 바지로 연못에서 걸어나오는 게 아닌가. 연못 주변을 서성거리다 물속에서 브랜드와 번호가 선명하게 새겨진 자기의 새 공을 발견하고 지나칠 수 없었다고 했다.

처음엔 클럽으로 건져내려다 실패하고 작은 돌을 연못에 넣어 발을 딛고 시도하다 그냥 미끄러졌다는 것. 깊지 않는 작은 연못이기에 다행이지 큰 화를 초래할 뻔했다.

경기도 이천의 한 골프장에서도 여름에 물에 빠진 공을 찾기 위해 골퍼가 연못 주변을 헤매다 실족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동반자와 캐디가 발견하고 비상 구명장구를 이용해 신속하게 대처했기에 다행이었다.

당사자가 개헤엄이라도 할 수 있었고 마침 사고현장 주변에 있던 동반자들이 도왔기에 무사했다.

"공을 주우려는 섣부른 욕심이 위험 감지 능력을 가리는 데다 골프에 집중하느라 감각적인 균형체계가 제대로 잡혀있지 않기 때문이죠."

오재근 한국체대 운동관리학과 교수는 신경과 감각이 골프에 몰입된 나머지 연못 주변에서 쉽게 균형을 잃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생각대로 몸이 움직여주지 않아 실족 위험이 크다는 것.

해마다 골프장 연못에서 익사사건이 발생한다. 올해도 가평의 한 골프장에서 50대 여성이 숨졌고 청도에선 50대 남성이 수심 2.5m의 워터 해저드에서 익사했다.

지난해엔 중견 철강업체 오너가 충청도 소재 본인 골프장에서 아침 일찍 코스 점검하러 나갔다가 숨진 사고가 생겼다. 직접 카트를 몰고 나갔는데 연못에 빠진 안타까운 사고였다. 주변에 아무도 없어 도움을 청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해저드에서 안전을 무시하고 무리하게 분실구를 찾는 행동은 이미 예견된 안전사고일 수밖에 없죠. 정말 무모한 행위입니다."

이원태 대한인명구조협회장(골프 안전지도사)은 유달히 공에 집착하는 골퍼는 위험에 항상 노출돼 있다고 경고한다. 아까운 본인 공은 물론 다른 사람의 분실구에도 집착하는 유형이다.

골프장 연못은 크게 두 가지다. 경관용으로 만든 연못은 수심 1m 안팎으로 큰 위험성은 없다. 하지만 심장이 약하거나 나이 든 사람은 가을철 아침저녁엔 심장마비 위험이 있어 조심해야 한다.

문제는 용도가 있어 물을 가두어 놓는 저류형 연못이다. 비가 올 때 물이 쓸려가는 것을 방지하는 기능성 해저드로 대부분의 골프장 연못이 해당된다.

이 중 연못가를 직벽으로 만든 곳보다 경사형이 더 위험하다. 물이 빠지지 않도록 바닥을 시멘트로 만들었거나 비닐을 깔아 놓았기 때문에 헛디디면 나오지 못하고 계속 물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제주도엔 물이 잘 빠지는 현무암층 때문에 연못에 비닐을 많이 깐다.

저류형 연못의 수심은 깊고 폭도 넓다. 특히 빠지면 고함을 질러도 동반자들이 보이지 않으면 전달되지 않는다. 골프장 곳곳에서 들려오는 고함 소리가 자기 팀원이 보내는 신호인지 구분하기 힘들다.

무리하게 카트를 운전하다 연못에 빠지는 사고도 간혹 발생한다. 급커브에서 과속하다 사고를 내는 케이스다.

이 경우 2차 사고 위험성도 있어 혼자 힘으로 연못에서 탈출하기는 매우 힘들다. 노캐디제로 운영되는 골프장에서 특히 카트 음주운전은 금물이다.

연못에 빠졌다면 먼저 고함을 질러 캐디와 동반자에게 위험사실을 알린다. 무리하게 나오려 하지 말고 버팀목을 잡으며 최대한 차분히 기다려야 한다.

동반자가 달려와 구명환을 이용할 때까지 침착하게 기다린다. 동반자들도 급한 마음에 직접 뛰어들기보단 끈이나 클럽 등을 이어 간접적으로 구하는 게 현명하다.

카트가 빠지는 사고는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캐디를 통해 바로 경기실에 연락해 구조요청을 하도록 한다. 그 사이 동반자는 현장에서 취할 수 있는 비상조치를 하도록 한다.

간혹 아일랜드 홀 그린에서 집중해서 라인을 살피려고 무심코 뒤로 물러서다 물에 빠지기도 한다. 연못 옆에서 스윙하다 균형을 잃고 빠질 수도 있기에 공을 안전하게 옮기도록 배려할 필요가 있다.

골프를 하다가 연못에 빠져 익사해도 골프장 책임을 물어 기소한 사례는 한 건도 없다고 한다. 안전은 골퍼 스스로 챙겨야 한다는 얘기다.

골프장도 나 몰라라 하지 말고 저류형 연못 주변에는 구명환에 이어 간단한 비상연락망을 설치하는 것도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길이다. 골프장 근무자와 캐디, 회원들을 대상으로 골프장 연못 사고를 공유하면서 늘 경각심을 일깨울 필요도 있다.

골프에 한번 빠지면 폭우와 천둥, 번개, 안개 같은 악천후도 불사하고 강행한다. 그렇다고 골프 공 하나에 목숨을 걸 수는 없다.

[정현권 골프칼럼니스트·전 매일경제 스포츠레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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