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통령 한마디에 대출 금지 번복, 국민이 '실험실 쥐'인가
지난 8월부터 전방위 대출 조이기에 나섰던 금융 당국이 전세 대출과 아파트 잔금 대출은 대출 규제에서 제외해 다음 주부터 재개하겠다고 갑자기 방침을 바꿨다. 전세 자금을 못 구한 무주택 서민들의 아우성에도 ‘규제 강행’을 고집하더니 대통령 한마디에 정책을 뒤집었다. 지난 6일 문재인 대통령이 “서민 실수요자 대상 대출이 차질 없이 공급되도록 하라”고 지시하자 며칠 만에 금융위가 전세 대출·잔금 대출은 풀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대선을 앞두고 워낙 부동산 민심이 들끓자 청와대가 개입하고 나선 모양새다.
이로써 대출 실수요자들이 일단 급한 불은 끄게 됐다. 하지만 정부의 막무가내 실험에 애꿎은 국민만 몇 달 동안 피해 보고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올 들어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액 중 절반이 전세 대출이고, 전세대출 잔액의 60%를 2030 세대가 차지한다. 이런 상황에서 막무가내로 대출을 조이자 치솟는 전세금을 마련 못 한 무주택 서민과 청년층이 전셋집을 못 구해 거리로 나앉을 지경이 됐다. 집값을 잡긴커녕 주거 취약계층을 불안과 고통에 빠뜨렸다.
이런 사태는 애초부터 예상됐지만 정부는 아랑곳 않고 초강력 대출 규제를 밀어붙였다. 가계대출 관리라는 명분만 내세워 무주택 서민을 상대로 정책 실험을 한 것이다. 부작용을 뻔히 알고 있을 금융위 관료들이 서민 민생은 고려하지 않고 자기 조직 차원의 목표에만 매달린 나머지 이런 사달을 냈다. 그래놓고 대통령이 한마디 하자 손바닥 뒤집듯 정책을 바꾼다. 공직자로서의 책임감도, 소명 의식도 보이지 않는다.
잘못된 정책을 밀어붙여 취약층을 고통스럽게 만든 사례가 한두 번이 아니다. 검증되지도 않은 ‘소득 주도 성장’ 가설을 들고 나와 자영업·소상공인과 저소득층을 못살게 굴었다. 임대차 3법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지적이 쏟아지는데도 묵살하고 법 처리를 강행해 유례 없는 전세 대란을 자초했다. 민생 경제를 설익은 정책 실험의 대상으로 삼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언제나 피해는 국민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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