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에 걸린 사랑의 자물쇠, 원조는 1차 대전 세르비아
도시의 보이지 않는 99%
로먼 마스·커트 콜스테트 지음|강동혁 옮김|어크로스|504쪽|1만9000원
‘투머치토커’ 박찬호가 된 것처럼 입이 근질근질해진다. 평소 ‘TMI(Too Much Information·너무 과한 정보)’ ‘설명충’이라는 지적을 받는 사람 손에 들어가면 ‘이 책은 해로운 책’이라고 느끼는 주변인도 나올 것이다. 현대인과 불가분의 관계인 도시에 관한 깨알 지식을 집대성했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독일 뉘른베르크 에카루셀 분수를 찾아간 독자가 분수처럼 말을 쏟아낼 모습이 그려진다. “에카루셀은 ‘결혼 회전목마’라는 뜻이야. 결혼생활의 행복과 불행을 너무나 노골적으로 묘사해 1980년대 완성된 이후 지금까지도 호불호가 갈리는 랜드마크야. 그런데 이 조각상은 지하철 배기구를 가리는 역할도 하고 있어. 원래 있던 지하철 배기구를 조각상으로 둘러싸 숨긴 거지.” 도시의 위장술과 관련한 이야기는 끊임없이 이어질 수 있다. 영국 런던에서는 상류층 주택가에 두께 30㎝가량의 가짜 파사드를 세우고 그 뒤에 지하철 배기구를 뚫었다. 호주 시드니 하이드 파크에 세워진 이집트풍 오벨리스크는 사실 하수로에서 생기는 가스를 배출하는 굴뚝이다.
일본에서는 신호등을 보고도 수다스러워질 것이다. “일본도 우리처럼 녹색 신호를 ‘파란불’이라고 불러. 일본 신호등의 파란불은 사실 ‘한없이 블루에 가까운 그린’이래. 1973년 내각 명령으로 기술적으로는 녹색이지만 ‘파란색’이라고 일컬을 수 있을 만큼 파란색에 가장 가까운 색을 사용하기로 했대.”
책은 도시라는 거대 시스템 속에서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했거나, 관심이 닿지 않아 무심코 지나치는 요소를 재발견하게 한다. 유모차·장애인을 위한 경사로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이제 반세기밖에 되지 않았다. 가로등은 자동차가 부딪치면 잘 부러지지만, 태풍은 버텨내도록 설계돼 있다. 맨홀 뚜껑이 둥근 이유(그래야 하수구로 안 빠진다), 건물 해체 방법(아래층부터 철거하는 방식도 있다), 절세(節稅) 목적으로 만들어진 프랑스 파리 건물 지붕 건축 양식 등 숨은 그림을 찾듯 도시를 파고든다.
연인들이 사랑의 증표로 맹꽁이 자물쇠를 철망에 거는 ‘사랑의 자물쇠’는 한국에서는 남산타워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원조는 1차 세계대전 당시 세르비아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세르비아의 마을 브르냐치카바냐에 살던 한 연인이 남자의 입대를 앞두고 다리 위에서 사랑을 약속했다. 이후 이 마을에서 맹꽁이자물쇠에 이름을 새겨 다리 난간에 걸어 잠그고 열쇠를 강물에 던져버리는 전통이 생겼다.
한국인 최고 관심사인 부동산 이야기도 잠시. 땅주인은 지하와 지상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비행기와 지하철이 없던 13세기 이 권리는 ‘천상에서 지옥까지’였다. 당시 라틴어 문구를 보라. “토지를 소유한 사람은 천상에서 지옥까지 모든 것을 소유한다.”(Cuius est solum, eius est usque ad coelum et ad inferos).
우리말로는 똑같이 ‘~가(街)’로 번역하는 ‘애비뉴’와 ‘스트리트’도 이름을 붙이는 기준이 있다. 애비뉴와 스트리트는 직각으로 만난다. 도로 양쪽으로 빌딩이 서 있으면 스트리트다. 애비뉴는 길가에 가로수나 건물 중 무엇이 있어도 된다. 대로(boulevard·불러바드)는 도로 중앙선과 도로변에 식물을 심어둔 넓은 도로를 말한다. 캘리포니아 선셋 대로 중앙에는 식물이 없다고? 도로명에는 예외가 많다고 저자는 말한다.
책은 지난 10년 동안 400회 이상 방송하며 누적 다운로드 5억건을 넘긴 인기 팟캐스트 ‘보이지 않는 99%’를 바탕으로 한다. 해당 팟캐스트 진행자와 PD가 함께 썼다. 127개에 달하는 꼭지는 얼핏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도시가 인간과 상호작용하면서 진화해온 역사를 그려낸 점묘화다. “이젠 세상 어디를 가도 이야깃거리가 보일 것”이라는 저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미국인 저자들의 시선이 한국까지 와닿지 않음은 아쉽다. 원제 ‘The 99% Invisible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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