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쇳가루'는 잊어라! 과메기보다 '갯차'로 더 유명해진 포항이 뜬다

박근희 기자 2021. 10. 16.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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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동백꽃..' '갯마을 차차차' 등
드라마 촬영지 된 철강 도시
포항이 이렇게 설레던 도시였나 싶다. tvN 인기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속 '공진'으로 나오는 양포항<사진> 등 포항 해안가 일대는 동네 백수 '두식'과 어촌마을에 개원한 치과의사 '혜진'의 따뜻한 로맨스에 온기를 더해주는 배경이 된다. / tvN

17일 종영을 앞둔 tvN 인기 주말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의 숨은 주역은 ‘공진’이었다. 공진은 극 중 배경. 강원도 청호시 공진이라고 배경 설명이 돼 있지만 현실에선 청호시도, 공진도 없다. 드라마 속 마을 할머니들은 강원도 사투리를 쓰지만 실제 촬영지는 강원도가 아닌 경북 포항이다.

북구 흥해 오도리 ‘사방기념공원’을 비롯해 5일장이 열리는 ‘청하시장’ ‘청진3리 어민복지회관’ ‘석병1리 마을회관’ ‘양포항’ ‘월포해수욕장’ 등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해안가가 드라마의 주 무대가 됐다. 곤륜산 활공장 등 포항 관광지도 달콤한 로맨스의 배경으로 ‘깜짝 출연’ 했다.

포항시에 따르면 지난 추석 휴일 기간 갯마을 차차차 촬영지 등 주요 관광지의 1일 방문객은 평균 8000여 명. 개천절과 한글날 대체휴일이 있던 지난 10월 첫째·둘째 주 연휴에는 이보다 훨씬 많은 방문객이 다녀간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6일 ‘갯차’ 제작진이 공식 트위터 계정에 기존 관광지를 제외하고 주민이 거주하는 마을 방문은 가급적 자제해달라고 공지할 정도로 관광객이 붐빈다.

◇‘제철소’ ‘과메기’ 떼고 ‘힐링’ 달다

포항이 ‘힐링 드라마’ 촬영지로 주목받기 시작한 건 지난 2019년 방영한 공효진·강하늘 주연의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부터다. 메인 포스터에 등장한 남구 구룡포읍 일본인가옥거리 ‘중앙 계단’에 나란히 앉은 공효진과 강하늘의 ‘투 샷’(둘이 나란히 찍은 사진)은 ‘포항’ 하면 자동적으로 떠올랐던 ‘제철소’ ‘호미곶’ ‘과메기’라는 공식에 전혀 새로운 이미지를 추가했다. 소박한 항구를 배경으로 펼쳐진 솔직담백한 로맨스는 ‘철의 도시’ ‘공업 도시’의 강인한 남성적 이미지를 무장 해제시키기에 충분했다는 평가다. 드라마 방영 후 젊은 층에게 구룡포는 과메기보다 ‘동백꽃 필 무렵’ 촬영 지역으로 더 익숙해졌다.

2020년 코로나 사태로 발이 묶이고 포항은 다시 임시완·신세경 주연의 드라마 ‘런 온’의 배경으로 소환된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언택트 해안 산책로’인 ‘호미반도 해안둘레길’, 새로 단장한 폐철길 산책로 ‘철길숲’ 등이 등장하며 포항의 새로운 풍경들이 방송을 탔다. 비록 드라마는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지만, 드라마에 등장했던 이가리닻전망대 등은 포항 여행의 필수 코스가 됐다. 지난여름부터 초가을까지 방영한 예능 프로그램 ‘바라던 바다’의 무대도 남구 ‘흥환리해변(흥환간이해수욕장)’이었다.

‘동백꽃 필 무렵’부터 ‘바라던 바다’ ‘갯마을 차차차’까지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것은 포항의 ‘바다’다. 직장인 최희재(39)씨는 “따뜻한 사람들 이야기에 적당히 웃음을 유발하면서 탁 트인 바다가 자주 나오니 숨통이 트이고 위로받는 기분이었다”며 “드라마를 핑계 삼아 얼마 전 포항 당일치기 여행도 다녀왔다”고 했다.

포항 구룡포 하면 특산물인 '과메기'부터 떠올렸지만, 2019년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드라마 주요 촬영지였던 구룡포는 '동백이 동네'로 유명해졌다. '동백꽃 필 무렵' 메인 포스터도 구룡포 '일본인가옥거리' 중앙 계단에서 촬영했다. / KBS

◇동해안 ‘섭외 1순위’

장소 섭외를 전문으로 하는 로케이션 담당자들은 포항이 촬영지로 뜨는 가장 큰 이유는 조용하고 한적한 ‘비대면 바다’가 많기 때문이란다. 독특한 형태의 해안선은 위치와 방향에 따라 다채로운 풍경도 담을 수 있다. ‘갯마을 차차차’의 로케이션 담당자인 이슬기(35) 워킹뷰 섭외팀장은 “‘갯차’의 경우 밀도 있는 어촌 마을을 찾는 게 관건이었다”며 “남해부터 동해안 최북단까지 해안선을 따라 훑다가 찾아낸 곳이 구룡포 석병1리 마을이었다”고 했다. 그는 “지리적으로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사방기념공원’은 극 중 두식의 배를 옮겨 놓는 것만 해결되면 더없이 아름다운 풍광을 담을 수 있을 것 같았다”며 “포항은 누가 봐도 처음 보는 곳처럼 느껴질 법한 소박하고 이국적인 해변이 곳곳에 있다”고 했다.

로케이션 감독으로 유명한 김태영(51) 로케이션 플러스 대표 역시 “삼척부터 울진, 영덕, 포항에 이르는 해안은 속초, 양양, 강릉 등 동해안의 다른 해변에 비해 미디어 노출이 적었던 곳”이라며 “특히 해안선이 긴 포항은 동해안의 ‘레어템’(희귀한 아이템) 같은 곳”이라고 표현했다. 김 대표는 “포항은 대도시의 유흥 시설부터 원초적인 풍경을 간직한 해안 절벽, 산촌, 농촌, 어촌 등이 서로 가까운 거리에 있어 해외 로케이션 촬영이 어려운 요즘 같은 시기에 짧은 시간 안에 다양한 장면을 연출할 수 있는 것이 매력적”이라고 했다.

최우석(49) 포항시청 홍보담당관실 마케팅팀장은 “그간 시가 나서서 별도로 방송 유치나 지원을 제안한 적은 없다”며 “지금까지 방영된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제작사 측 섭외 담당자들이 포항시에 촬영 협조를 먼저 의뢰해온 경우”라고 말했다. 시민들은 반갑다는 반응이다. 포항 북구에 사는 황진선(70)씨는 “철강 산업이 한풀 꺾여 도시가 활력을 잃어가는 데다 몇 해 전 지진까지 겹쳐 집단적 트라우마가 있었다”며 “따뜻한 드라마의 배경이 되고, 그걸 계기로 사람들이 찾아와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으니 기분이 좋다”고 했다.

실제로 포항시는 철강 산업을 기반으로 한 도시의 태생적 특성을 유지하되 무게중심을 문화·관광·도시 재생 등으로 분산시키고 있다. ‘그린웨이 프로젝트’ 등을 추진하며 도시의 색감도 회색빛 산업 도시에서 녹색 도시로 바꿔가는 중이다.

tvN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속 주인공 '두식(홍반장)'이 배를 정비하는 장면. 드라마 촬영을 위해 포항시 흥해 '사방기념공원'에 설치한 '두식의 배'는 드라마 종영 후에도 드라마를 추억하며 찾는 이들을 위해 남겨둔다는 계획이다. / tvN

TV 속에 등장했던 포항 풍경이 방송 종영 후 어떻게 바뀔지도 관심사다. 지난 7일 촬영을 끝낸 ‘갯마을 차차차’ 제작진에 따르면 청하시장의 ‘오징어 탑’과 사방기념공원의 ‘홍 반장의 배’는 드라마를 추억하며 찾는 이들을 위해 포항시에 기증해 보존키로 했다. ‘바라던 바다’의 세트장이었던 흥환리해변의 바(bar)는 새 단장해 마을 관광 자원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동백이네 동네’도 달라진다. ‘동백꽃 필 무렵’의 촬영지였던 구룡포 일본인가옥거리와 그 일대는 정체성을 살려 근대해양문화거리로 조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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