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조의 토요일엔 에세이] 가을이면 생각나는 그녀, 패티 스미스
‘Because the night’로 잘 알려진 싱어송라이터 패티 스미스는 소녀 시절부터 예술가가 되고 싶었지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예술가적 소양이라고는 거의 쌓지 못했다. 열여덟 살에 원치 않는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아 입양 보낸 후, 예술가가 되고 싶어 무작정 뉴욕으로 향한다. 노숙자로 거리에서 자고, 먹을 것을 얻어먹으며 버티다가 우연히, 운명처럼, 역시 예술가를 꿈꾸던 사진가 로버트 메이플소프를 만나 연인이 된다.
자신이 위대한 예술가가 될 것이란 사실을 확신했던 찬란한 스무 살이었다. 끼니 걱정을 하고, 며칠 지난 빵을 겨우 얻어먹는 청춘이었지만 이 한 쌍은 사랑하는 예술의 힘을 맹목적으로 믿었다. 미술관 티켓 한 장밖에 살 돈이 없어 한 명만 전시를 보고 나와 어땠는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언젠가 함께 저 미술관(휘트니 미술관이었다)에 들어가는 날, 그날은 우리 작품이 전시되어 있을 거야”라고 장난처럼 말했던 비전은 결국 현실이 되었다.
가을에는 패티 스미스를 읽는다. 그녀가 쓴 책 중에서 우열을 가릴 수 없이 좋아하는 책이 두 권 있다. ‘M트레인’(마음산책)과 ‘저스트 키즈’(아트북스)다. ‘M 트레인’이 인간의 자의식에 관한 책이라면, ‘저스트 키즈’는 예술가의 정체성에 관한 책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이 질문의 흔한 대답은 이름이나 직업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직업도 이름도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주지 않는다. 덴마크의 작가 이사크 디네센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울부짖음에 답할 자격을 가진 것은 이 우주 전체에서 오직 스토리뿐”이라고 썼다. 이 말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스토리만이 정체성에 대답해 줄 수 있는 것인가 생각했다. 그렇다면 스티브 잡스 말대로, 해군이 아니라 해적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어느 가을 오후, 패티 스미스의 ‘M 트레인’을 읽으면서, 나는 정체성이 실은 언어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해적이 같은 언어를 갖고 있진 않다. 같은 모험이라고 해도 같은 스토리가 될 수 없다.
‘저스트 키즈’가 뜨겁고, 거침없으며, 슬프면서도 아름답다면, ‘M 트레인’은 감상적이고 로맨틱하며 스타일리시하다. 책을 덮자마자 다시 읽기 시작하게 되는 책은 아니지만 그 분위기에 잠겨있는 것으로 충분히 즐겁다. 내가 사랑하는 가을의 책이다. 김동조·글 쓰는 트레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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