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 코리아] 드라이버 길이 5㎝의 의미
질문하라,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바꿀 것인가
세계적 골프 스타 필 미켈슨은 지금 화가 많이 나 있다. 내년부터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의 드라이버 허용 길이가 최장 48인치(121.9cm)에서 46인치(116.8cm)로 줄어든다. 47.9인치 드라이버를 휘둘러 다섯 달 전 역대 최고령(50세) 메이저 챔피언이 된 그는 “어리석다” “한심하다”고 트위터에 분통을 터뜨린다. “왜 골프를 재미 없게 만들려고 애쓰냐”면서.
겨우 5cm 차이라고? 드라이버 샤프트가 46인치에서 48인치로 길어지면 비거리는 6야드, 44인치에서 46인치가 되면 10야드 늘어난다는 시뮬레이션 결과가 있다(워털루대학). 급격히 근육을 불린 브라이슨 디섐보가 온갖 물리학 이론과 통계 수치까지 동원해 지난해 초(超)장타자로 거듭난 이후, 장타 경쟁은 골프의 최대 흥행 요소이면서 정체성과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난제로 떠올랐다. 드라이버를 무조건 엄청나게 멀리 때린 뒤 웨지로 홀 옆에 갖다 붙이는 게임이 과연 진정한 골프인가. 이미 늘릴 대로 늘린 코스 길이를 얼마나 더 늘려야 한단 말인가.
46인치 넘는 드라이버는 공을 멀리 보내는 데 유리하지만 똑바로 치기 어렵다. 그래서 미국 프로 선수의 3%만 쓴다고 한다. 난제의 실질적 해결책이 되기는 어려운데도 지난 13일 46인치 제한을 발표한 미국골프협회(USGA)는 “미래를 위한 선제적 조치”라고 강조했다. 1990년대 PGA 투어에선 보통 43인치 드라이버를 썼다고 한다. 현재는 대다수가 44.5~45.5인치를 사용한다. 3%뿐이라지만, 디섐보와 미켈슨에게 자극받아 최근 긴 드라이버를 직접 테스트해본 선수는 그보다 많다.
눈부시게 발전하는 과학기술은 불가능을 곧 가능하게 만든다. 과거에 비해 드라이버 길이가 늘어난 데는 더 가벼운 소재가 개발·적용된 영향이 컸다. 지금은 48인치 드라이버를 똑바로 치기 어렵다 해도, 장비 기술이 발전하는 한 머지않아 쉬워질지 모른다. 골프란 무엇인가. 변화무쌍한 자연환경에서 다양한 상황에 맞게 여러 샷을 구사하는 신체 능력과 정신력, 전략 대결이 아닌가. 그렇다면 비거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커진 것은 아닌가. 골프 레전드 86세 개리 플레이어는 “비거리 규제는 골프 생존의 문제”라고 했다. 정답은 없으나 적절한 선을 그어야만 하는 시점이 닥쳐오는 것이다.
간발의 차로 승부가 갈리는 스포츠 세계에서 과학기술의 발전을 규칙이 제때 따라잡기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어떻게든 한 발이라도 앞서보려는 시도에 휘둘리다가는 스포츠의 존재 이유를 잃어버릴 수 있다. 단지 헤엄치는 속도를 겨루는 수영에서도 맨몸뚱이에 걸치는 수영복이 ‘무기’로 진화했었다. 국제수영연맹이 전신 수영복 등 금지를 발표한 때가 12년 전이다.
수영복 소재가 거듭 발전하고, 저항력 연구에 항공·로켓 기술까지 동원되면서 기능성 전신 수영복을 입은 선수들이 기록을 쏟아냈다. 그러자 기록의 의미는 작아지고, 누가 뭘 입었는지에 관심이 집중됐다.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조차 “이건 수영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결국 수영복 소재와 길이, 부력 등의 기준이 세세하게 다시 설정됐다. 이것이 수영이 아니라면 수영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새롭게 정립하는 과정이었다. 시대의 변화를 때론 수용하고 때론 차단하면서 스포츠의 정체성을 지켜내려는 줄다리기가 계속되는 것이다.
복잡해지고 전문화되는 세상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알 수 없다. 감당하기 어려운 발전과 혁신이 가치관과 세계관, 사회 체계를 뒤흔든다. 어떤 경우에도 포기해선 안 되는 본질은 무엇인가. 어디까지 지키고 어디서부터 바꿔야 하나. 자꾸 질문을 던져야 하는 것이다. 뭣이 중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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