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가전·반도체 '코로나 특수' 끝나나
코로나 사태로 반사이익을 누려온 IT 제조업 경기가 하강 국면에 들어섰다는 경고음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코로나 백신 접종으로 사람들의 야외 활동이 증가하면서 ‘집콕’의 필수품인 TV와 노트북·스마트폰·가전, 그리고 이들 제품의 핵심 부품인 반도체와 LCD 패널의 수요가 동시에 둔화되는 피크아웃(고점 후 하락)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원자재 가격 상승, 시스템 반도체 공급 부족, 중국발 전력난, 물류 대란 등 여러 악재가 겹치면서 글로벌 시장 조사 업체들은 주요 IT 제품의 판매량 전망치를 일제히 낮추고 있다. 조대곤 KAIST 경영대학 교수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어진 글로벌 IT 기업들의 호실적은 코로나라는 특수 상황 영향이 컸다”면서 “한번 경기가 침체되기 시작하면 내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수퍼 사이클 끝났나
메모리 반도체 업계에서는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됐던 수퍼 사이클(장기 호황)이 이미 끝났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세계 3위 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마이크론은 최근 올 9~11월 매출액 전망치를 78억5000만달러(9조2780억원)로 기존보다 10%가량 낮췄다. 지난 9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들의 D램 반도체 수출 증가 폭도 작년 대비 28.7%로, 7월에 전년 대비 39.8%, 8월 55.1%에 비해 크게 둔화됐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13일(현지 시각) 내년 D램 가격이 평균 15~20%가량 추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메모리 반도체 업황이 악화되고 있는 것은 핵심 수요처인 IT 제품 판매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PC 시장에서는 내년 노트북PC 출하량을 평균 7% 줄어든 2억2200만대 수준으로 전망한다. 화상회의, 원격 수업 등으로 전례 없는 성장세를 기록했던 노트북 판매가 최근 기업들의 사무실 복귀가 시작되면서 둔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시장은 성장세 둔화에 더해, 비(非)메모리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생산 차질까지 빚어지고 있다. 애플은 미국 브로드컴과 텍사스인스트루먼트의 반도체 부품 생산 차질로 올해 아이폰13 시리즈 생산량을 1000만대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삼성전자도 당초 10월 내놓을 예정이었던 스마트폰 신제품 갤럭시S21 FE 출시 일정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TV 시장은 이미 성장세가 꺾였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올 하반기 글로벌 TV 시장 출하량은 지난해 하반기보다 10% 줄어들 전망이다. 옴디아는 내년 1분기에도 TV 판매량이 올 1분기보다 4.6% 감소하고, 2분기에도 이런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봤다. TV 수요 감소는 디스플레이 업체들에 직격탄이 되고 있다. 올 3분기에 10% 이상 떨어진 TV용 LCD 패널 가격은 4분기에 평균 29% 더 떨어질 전망이다. IT업계 관계자는 “세탁기, 냉장고 같은 생활가전도 코로나로 인한 집콕 수요가 끝나면서 내년 역성장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퍼펙트 스톰 일어날 수도
글로벌 기업들을 둘러싼 각종 악재도 심화되고 있다. 비메모리 반도체 공급 부족 현상이 내년까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미국발 물류 대란이 유럽으로 확산되면서 공급망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 영국 가디언은 “공급망 위기로 세계경제가 경로를 이탈하는 퍼펙트 스톰(심각한 경제 위기)이 일어날 수 있다”고 보도했다. IT와 유통업계에서는 원활한 제품 수급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연중 최고 성수기인 연말 쇼핑 시즌을 망칠 수 있다는 위기감도 높다. 여기에 유가 등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인플레이션 조짐까지 나타나고 있다. 원유는 1년 만에 두 배 이상 뛰었고 연말에는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아연 가격은 2007년 이후 최고치로 치솟았고, 알루미늄·구리 가격도 계속 오르고 있다. 중국, 유럽 등에서 전력 부족이 확산되면서 전기 사용량이 많은 금속 제련 산업이 가장 먼저 타격을 받고 있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13일 “유가와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해 월스트리트에서는 스태그플레이션(불황 속 물가 상승)을 우려하는 투자자들이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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