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222] 오래 달리기

백영옥 소설가 2021. 10. 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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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사이에서 자주 인용되는 고전적인 말 중에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가 있다. 그러나 이 말은 최근 뒤집힌 채 ‘살아남은 자가 강하다’는 말로 더 자주 인용되곤 한다. 다양한 도전을 하며 꾸준히 일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노하우가 궁금했다. 가수이며 배우인 김창완에게 그 비결을 물은 적이 있는데, 그는 침착하게 말했다. 그게 어떤 일이든 스스로 그만두겠다고 하지 않는 것. 그냥 계속하는 것. 잘릴 때까지. 늘 ‘최고’라고 생각하던 예술가에게서 ‘잘리기 전까지’라는 의외의 말이 나왔다는 것에 많이 놀랐었다.

인간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많은 방어기제를 가지고 산다. 헤어질 기미가 보이면 먼저 헤어지자고 말하는 것도 방어기제 중 하나다. 당연히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노!’라고 말하는 것 역시 그렇다. 내가 배우 ‘남궁민’을 처음 주목한 건 그의 연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인터뷰 기사 때문이었다. 그는 서브 남자 주인공 역할만 들어오던 시절, 다섯 작품을 연달아 거절했던 긴 공백기를 회상하며 그때 배운 점을 담담히 말했다.

“배우는 자기가 원하는 캐릭터를 소화하는 걸 즐거움과 덕목으로 삼으면 안 되겠더라. 어떤 역할이든 도전해서 정말 그 사람처럼 소화하는 게 매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배들에게 말한다. 자꾸 캐릭터를 보지 말고 조금 부족한 캐릭터라도 맡아라. 더 좋은 캐릭터를 하겠다고 흐름을 끊으면 안 된다.”

그는 이후 많은 연기를 선보였고, 드라마 스토브리그의 ‘백승수’ 같은 압도적이며 상처 많은 캐릭터를 연기했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다만 매 순간의 ‘선택’이 있을 뿐이다. 분명한 건 이제 나는 버리고 떠나는 사람보다, 남아서 버티는 삶을 더 존중하게 됐다는 것이다. 폼 나지 않고, 지질함에도 그 안에서 견디며 자기 색깔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삶 말이다. 어떤 이에게 용기란 투쟁이 아닌 수용이다. 삶에 오만해지지 않기 위한 수용 말이다. 그게 내가 좋아하는 두 예술가가 오래 달린 비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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