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호의미술여행] 너무 현실 같은 초현실

- 입력 2021. 10. 15.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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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꾀꼬리에 놀란 두 아이 중 한 명이 도망치듯 들판 위를 헤매고 있다.

다른 한 명은 아예 지붕 위로 올라가버렸다.

그는 꿈에서나 만날 법한 이런 이미지들로 마치 무의식의 이미지처럼 보이게 하려 했고, 현실로 부터 자유와 해방의 욕구를 표현하려 했다.

놀랍고 충격적이고 끔찍한 장면이 많지만, 이런 비현실적 장면 밑에 깔린 내용만큼은 현실과 비슷하다는 점에서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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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에른스트 ‘밤 꾀꼬리에 놀란 두 어린이들’.
밤 꾀꼬리에 놀란 두 아이 중 한 명이 도망치듯 들판 위를 헤매고 있다. 다른 한 명은 아예 지붕 위로 올라가버렸다. 그 후 밤 꾀꼬리는 유유히 사라진다. 멀리 보이는 성채와 문, 집의 벽과 이어진 담장, 옆에 놓인 시체 등 모든 것이 신비롭고 괴이하다.

괴이함은 또 있다. 그림이 액자 안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액자에 문고리와 장식이 달려 있어 문 위에 그려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림과 액자와 문의 관계가 모호해서 지붕 위 아이가 그림에 붙어 있는 문고리를 잡으려는 듯 보인다. 초현실주의 화가 막스 에른스트의 그림이다. 그는 꿈에서나 만날 법한 이런 이미지들로 마치 무의식의 이미지처럼 보이게 하려 했고, 현실로 부터 자유와 해방의 욕구를 표현하려 했다.

초현실주의는 1차 세계대전 후의 절망적인 현실을 배경으로 등장했다. 거리엔 폭격으로 부서진 건물더미들이 즐비했고, 전쟁 후유증으로 정신이상자가 넘쳐나며, 전사자로 인한 가족 파괴나 상실감도 극에 달했다. 사람들은 절망감과 반항심만을 갖게 됐고, 그 어느 것에서도 감흥을 갖지 못했다. 초현실주의는 이렇게 폐허가 돼 버린 상황 속에서 비참하고 절망적인 현실을 넘어서는 또 다른 현실이라는 의미의 ‘초현실’세계를 예술을 통해서 제시하려 했다.

이런 세계가 어떤 것이고, 어떻게 나타낼 수 있을까? 초현실주의자들은 일상세계를 지배하는 논리나 합리적인 사고를 벗어난 곳에서 찾으려 했다. 그래서 우연한 사건이나 행동, 꿈 또는 무의식의 세계같이 비합리적이며 낯설고 신비스러운 느낌을 주는 것에 주목했다.

에른스트는 특히 상황전도라는 방법에 매달렸다. 현실에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상황이나 이미지들을 결합하는 방식인데, 현실의 상황을 전도시켜 놀라움과 충격을 주면서 새로운 현실 인식으로 이끌려는 의도에서였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다. 놀랍고 충격적이고 끔찍한 장면이 많지만, 이런 비현실적 장면 밑에 깔린 내용만큼은 현실과 비슷하다는 점에서일 게다.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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