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월의쉼표] 소문을 탓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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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가 통화 중에 불쑥 말했다.
참, 언니도 운동선수였지.
운동선수? 응, 언니 왕년에 펜싱 선수였잖아.
어쩌다 보니 운동신경으로 주목을 받게 되어 운동부 여러 곳에서 가입 제안을 받았는데 그중 펜싱부가 신기하고 재미있어 보여 내가 택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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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때 펜싱을 배웠다. 어쩌다 보니 운동신경으로 주목을 받게 되어 운동부 여러 곳에서 가입 제안을 받았는데 그중 펜싱부가 신기하고 재미있어 보여 내가 택한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시작해 보니 딱히 재미있지 않고, 무엇보다 훈련 전후 준비운동이니 정리운동이니 하는 명목으로 운동장을 도합 열 바퀴나 달려야 했는데, 체력이 형편없어 한 바퀴만 달려도 기진맥진하는 나로서는 그 과정이 공포에 가까울 만큼 심각한 부담이었다. 매번 녹초가 된 상태로 훈련에 임하다가 결국 한 학기도 지나기 전에 펜싱을 포기했다.
대학 신입생 때 과 선배에게 어쩌다 그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그 선배가 어쩌다가 교수님에게 그 이야기를 한 모양이었다. 그 교수님이 어쩌다 다른 교수님에게 그 이야기를 하고 다시 그것이 어떻게 교수님들 사이에서 회자되다가 조교 귀에도 들어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최종적으로 내가 그 이야기를 들은 것은 학기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조교가 대견하다는 표정으로 내게 물었던 것이다. 너 아시안게임 펜싱 동메달리스트였다며? 네? 제가요? 아, 그게 아니고 동메달전에서 떨어졌다고 했나. 아무 대꾸도 못하고 있는데 조교가 다시 덧붙였다. 그래도 어쨌든 국가대표였잖아.
정말이지 할 말이 없었다. 그 이야기 어디서 들으셨어요? 나는 소문의 진원지를 역으로 추적해갔다. 그렇게 거슬러 올라가니 결국 내가 최초로 펜싱 이야기를 한 과 선배가 나왔다. 그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는 내가 펜싱을 몇 개월 배우다 포기했다는 것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다음 사람 또 그다음 사람의 말은 조금씩 달랐는데, 그 과정에서 내가 얻은 깨달음은 말이 와전된다면 사람이 말을 잘못 옮겼기 때문이라기보다 말이 옮겨지면서 스스로 변이되고 확장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만큼 소문이 와전되는 과정에는 묘하게 불가지하고 불가해한 면이 있었다. 그렇다고 말을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당시 다들 웃으며 그냥 넘겼다. 그렇게 잊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놀랍게도 그로부터 20년 세월이 흐른 이 시점에도 나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여전히 왕년의 펜싱 선수로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정도면 그게 말이든 무엇이든 탓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김미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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