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명품과 미술품의 광채
값어치 넘은 존재 미술품과 닮아
KIAF 출품작품 절반 예약 판매
서울, 문화적 글래머 도시 변모
검은 이브닝드레스 차림에 몇 겹이나 되는 진주목걸이를 걸고, 머리를 말아 올려 우아한 목선을 드러낸 여인(오드리 헵번 분)이 택시에서 내린다. 이른 아침 인적이 없는 뉴욕의 5번가에서 천천히 티파니 보석점 앞으로 걸어가는 그녀는 보석점 주인의 딸일까, 아니면 상류층 여인일까. 여인은 쇼윈도 너머로 반짝거리는 보석을 부러운 듯 바라보면서 종이에 포장해 들고 온 크라상과 커피를 꺼내 입에 오물거린다. 동경어린 저 눈빛이 여인의 정체를 드러내는 이 순간은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첫 장면이다.
본래 ‘글래머’에는, 마치 신데렐라 이야기에서 호박이 마차로 변신하는 것처럼 ‘마법 같다’는 뜻이 스며 있었다. 19세기 초 영국의 월터 스콧 경이 쓴 사례를 보면, 무엇에 글래머가 씌워지면 마치 마법이 일어나듯 풋내기가 공주나 기사로 보이고, 지하 감방에 늘어진 거미줄이 대저택 연회장에 걸린 장식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글래머가 마법의 영역에서 탈피하게 된 것은 돈의 힘이 정말로 마법을 부리게 되면서부터다. 돈으로 학력과 미모, 자기계발 및 자존감 향상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대중사회의 평등주의는 “너도 변신할 수 있어”라고 속삭이고, 자본주의는 “너는 그럴 가치가 충분하지” 하고 덧붙인다. 글래머가 윤활하게 작동하는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자신의 변신을 맘껏 상상할 수 있도록 기회가 열려 있다. 그리고 명품브랜드가 생산해내는 각종 이미지들은 변신을 위한 본보기로 효력을 발휘한다.
그런데 명품을 원하는 사람은 늘었지만 돈을 가지고도 명품 구매가 쉽지 않아졌다. 지난주 샤넬에서는 인기 높은 몇몇 핸드백에 대해 1인당 1개씩만 살 수 있도록 제한하겠다고 발표했다. 줄 서서 대기하다 보니, 지인들 것까지 부탁받아서 구매를 대행해 준다거나 아니면 유행하는 제품을 싹쓸이하여, 나중에 간절히 원하는 사람에게 웃돈을 붙여 되파는 사람들이 생긴 것이다. 그런 행태들로부터 샤넬의 희소가치를 유지하려는 의도에서 제한조치가 취해진 듯하다.
명품 소비자는 그 브랜드의 제품이 자신이 선망하는 ‘그 무엇’에 부합하기 때문에 그것을 원한다. 물건을 살 때 자신이 갈망해오던 광채까지 함께 구매하는 것이다. 그래서 명품은 대중적인 삶 속에 있으면서도, 아무나 손을 뻗칠 수 없는 쇼윈도의 비전처럼 조금 멀찍이 거리를 두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전략이 바로 자본주의 체계 속에서 명품이 값을 매기는 방식일 것이다.
값어치를 위해 잡히지 않는 ‘그 무엇’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점에서 명품은 미술작품과 닮았다. 내일까지 열리는 한국국제아트페어(KIAF)가 올해 20주년을 맞아 열기를 띠고 있다. 작품을 다 걸기도 전에 출품작의 절반 이상을 예약 판매한 갤러리도 있다고 들린다. 내년 가을부터는 세계 3대 아트페어 중 하나로 손꼽히는 영국의 프리즈(Frieze) 아트페어가 서울에 진출해 KIAF와 협업으로 동시에 개최된다. 서울은 점점 문화적 글래머의 도시가 돼가고 있다.
이주은 건국대 교수 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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