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기시다 '첫 통화' 30분 넘게 했지만..입장차 재확인
"일본 강점기 징용 문제와 위안부 문제로 인해 한일 관계는 계속 어려운 상황이다. 적절한 대응을 해달라"(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한일 양국 관계가 몇몇 현안들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의지를 갖고 서로 노력하면 함께 극복해나갈 수 있다"(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5일 오후 6시40분부터 30분 넘게 통화를 하면서 예상을 꺠고 민감한 현안 얘기를 주고 받았다. 당초 이번 통화가 두 정상의 첫 통화인만큼 덕담 수준의 인사가 오갈것이란 전망이 많았지만, 두 나라의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며 접점을 찾지 못했다. 기시다 총리는 특히 문 대통령과 통화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전화통화 내용을 직접 브리핑까지 했다.
문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이날 통화에서 강제징용과 일본군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 대북 정책과 한반도 비핵화, 코로나19 대응 및 한일 간 왕래 회복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기시다 총리 취임 당일 축하 서한을 보내 "한일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함께 노력하자"는 뜻을 전한 바 있다.
이날 통화는 지난 4일 기시다 총리가 취임한 지 11일 만에 이뤄졌다. 문 대통령은 전임 스가 총리 때는 취임 8일 만에 첫 통화를 가졌다. 이후 스가 총리와 추가로 한 전화 통화는 없었다.
문 대통령은 스가 총리 전임인 아베 신조 총리와는 12차례에 걸쳐 전화를 했었다. 한일 정상회담도 7차례 진행했다. 하지만 2019년 7월 일본 정부가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를 단행한 후 양국 관계가 급속히 냉랭해지면서 교류도 점차 줄어들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 7월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방일을 추진했으나 소마 히로히사 전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공사가 문 대통령을 향해 성적 비하 발언을 한 사실이 전해지면서 막판에 무산됐다.
이처럼 한일 관계가 냉랭한 상황에서 이뤄진 문 대통령과 기시다의 첫 통화는 현재 한일 관계를 보여주는 듯 했다. 기시다 총리는 취임 하루 뒤인 지난 5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와의 연쇄 통화를 시작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7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이상 8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13일) 등 6명의 정상과 통화했다.
문 대통령은 7번째로 통화를 했는데 전임 스가 요시히데 총리 때 6번째로 이뤄진 것과 비교해 큰 차이는 없다. 다만 일본 보수언론들은 기시다 총리가 취임한지 10일 이상 지나 문 대통령과 통화한 사실을 언급하며 우리가 '1순위 그룹'이 아닌 2순위 그룹으로 밀렸다고 평가한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기시다 총리는 이날 통화에서 "한일 관계가 징용 및 위안부 문제로 인해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며 문 대통령에게 보다 적극적인 대응을 요구했다.
일본은 한국인 노동자 강제 징용 문제 등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위안부 문제는 2015년 한·일 외교장관 간 '위안부 합의'로 완전히 해결됐다는 입장이다. 기시다 총리는 당시 위안부 합의의 협상 당사자인 외무상이었다. 일본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한국이 이들 합의를 사실상 파기했다고 보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와 관련해 "양국 관계가 몇몇 현안들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의지를 갖고 서로 노력하면 함께 극복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의 적용 범위에 대한 법적 해석에 차이가 있는 문제"라면서 "양국 간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며, 외교당국 간 협의와 소통을 가속화하자"고 했다.
문 대통령은 또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피해자 분들이 납득하면서도 외교 관계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다"며 "생존해 있는 피해자 할머니가 열세 분이므로 양국이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기시다가 문 대통령과 통화에서 비교적 강경한 태도를 보인건 일본 자국내 정치 상황과 스가 내각 때부터 이어져 온 한일관계의 냉랭함을 종합적으로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기시다 총리는 이달 31일 중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어 한일관계에 대한 강경 태도로 자국내 지지층 결집을 의식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실제 기시다 총리는 전날 참의원 본회의 대표 질문에서 한일관계에 대해 "한일을 건전한 관계로 되돌릴 수 있도록 받아들일 수 있는 해결책을 한국 측이 조속히 제시하도록 강력히 요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물론 이날 통화에서 덕담이 오가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이밖에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가장 가까운 이웃 국가로서 동북아 지역을 넘어 세계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도 함께 협력해야 할 동반자라고 생각한다"며 "한반도 문제 이외에도 코로나 위기와 기후변화 대응, 글로벌 공급망 문제 등 새로운 도전과제에 맞서 양국이 함께 대응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희망이 있는 미래로 열어가기 위해서는 양국 간 협력을 더욱 공고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는 "따뜻한 축하 말씀에 감사드린다. 엄중한 안보 상황 하에 한일, 한미일 공조가 중요하다"며 "한일 양국을 미래지향적인 관계로 발전시키자는 문 대통령의 말씀에 공감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양국 국민들 간의 긴밀한 교류는 한일관계 발전의 기반이자 든든한 버팀목임을 강조하고, 특별입국절차 재개 등 가능한 조치를 조속히 마련해 양국간 인적 교류 활성화 재개의 중요성을 피력했다. 기시다 총리는 코로나 대응 및 한일 간 왕래 회복 등을 위해 함께 노력해 나가자고 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기시다 총리와 자주 소통할 수 있기를 바라며, 직접 만나 양국 관계 발전 방향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교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기시다 총리는 양국 정상 간 허심탄회한 소통이 매우 중요하다는 데 공감을 표했다.
하지만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기시다 총리는 "현재 문 대통령과 정상회담 계획은 없다"고 보도했다.
박 대변인은 이날 양국 정상들의 통화에 대해 "기시다 총리는 강제징용 문제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입장을 설명했고, 양국 정상의 솔직한 의견 교환을 평가하면서 외교당국 간 소통과 협의 가속화를 독려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한편 한일 정상 간 접촉은 지난 6월 영국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문 대통령이 스가 요시히데 전 일본 총리와 대면인사를 나눈 이후 약 4개월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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