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후 연습·샤프롱..아역배우들 '절대 지켜'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로 본 공연계 아동·청소년 보호 지침

[경향신문]

2010년 국내 초연 이후 올해로 세 번째 시즌을 맞고 있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출연진(빌리 전강혁, 미세스 윌킨슨 최정원, 발레걸스, 앙상블)이 넘버 ‘Solidarity’를 부르고 있는 장면. 신시컴퍼니 제공

출연 배우들 대다수가 초등학생
학업에 지장 없도록 일정 짜고
컨디션·식사부터 멘털 관리까지
아동·청소년은 보호해야 하니까

지난 8월31일 개막한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는 같은 이름의 영화를 원작으로 제작됐다. 1980년대 영국 북부 탄광촌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의 주인공은 11세 소년 빌리다. 우연히 복지센터에서 발레를 접하게 된 소년 빌리에게 천재적 재능이 번뜩이지만 가난하고 척박한 환경은 소년의 재능을 가로막는다. 그럼에도 소년은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따뜻하고 찡한 빌리의 성장 이야기, 발레를 중심으로 한 화려한 퍼포먼스는 큰 감동을 선사하며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어린 소년이 주인공인 만큼 이 작품의 주요 배역은 아역 배우들이 담당한다. 현재 이뤄지는 세 번째 시즌에 이르기까지 10대 초반의 초등학생들이 무대를 책임지고 있다. 이들은 공연마다 성인 배우 못지않은 고난도의 안무와 풍부한 감정연기를 선보인다.

고된 연습과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해야 하지만, 그에 앞서 아동·청소년인 만큼 세심한 권익보호가 필요하다. 과거와 달리 근래에는 이에 대한 의식이 높아지면서 현장에서 아동·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지침들도 생겨나고 있다. <빌리 엘리어트> 출연 아역 배우들의 사례를 통해 공연계의 아동보호 방침을 살펴본다.

학업은 어떻게?

<빌리 엘리어트> 출연 아역 배우들은 대다수가 초등학교 재학생이다. 이 때문에 학업에 지장이 가지 않도록 주로 방과후에 연습과 공연이 이뤄진다. 비대면 수업이 많았던 올해는 상대적으로 연습시간과 학업 스케줄 조정이 용이한 편이었다.

다만 주인공 빌리 역을 맡은 배우들은 주 1, 2회 정도는 학교를 조퇴해야 했다. 전체 발레 수업, 애크러배틱 수업, 플라잉 무대 연습 등은 장비 등의 문제로 다른 배우들과 함께 연습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 장면엔 출연할 수 없다!

1막 넘버 ‘Solidarity’ 장면에는 10세 이하의 배우들이 출연할 수 없다. 다소 격한 가사와 안무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 9세 이하의 배우들은 빌리와 데비가 화장실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 노출되어서는 안 된다. 성적인 내용이 대화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장면이 이어지는 동안 보호대상이 되는 아역 배우들은 모니터 화면을 볼 수 없는 별도의 공간에서 대기해야 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성적인 농담이나 욕설을 연기하는 배우들은 리허설을 하는 장소 이외의 다른 곳, 이를테면 대기실이나 복도 등에서 해당 대사를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아역 배우와 함께하는 ‘샤프롱’

<빌리 엘리어트>는 샤프롱 제도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샤프롱이란 젊은 여성이 사교장에 갈 때 따라가 보살펴주던 이를 뜻하는 프랑스어다. 최근에는 공연계의 아역 배우들을 전담 관리하는 스태프를 통칭해 부르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빌리 엘리어트>에는 6명의 샤프롱이 함께한다. 샤프롱의 임무는 연습장이나 공연장에 도착하는 아역 배우들을 부모에게서 인계받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부모들이 연습장이나 백스테이지에 출입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샤프롱은 아역 배우들을 인계받자마자 연습과 공연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안전 및 스케줄 관리, 컨디션 체크는 물론 학습과 식사도 챙겨야 한다. 연습 중에 아역 배우들이 힘들어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적절한 멘털케어도 필요하다. 영국에서는 3년마다 지역 행정당국의 인증을 받아야 샤프롱으로 일할 수 있다. 국내에는 아직 이런 공식적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 제작사에서 자체적으로 채용, 운영한다.

안전을 고려한 스케줄 공지 및 캐스팅

일반적인 뮤지컬 공연은 티켓을 오픈하기 전에 일찌감치 배우들의 캐스팅 스케줄을 공지한다. 하지만 <빌리 엘리어트>에 출연하는 아역 배우들의 캐스팅 스케줄은 공연하기 약 2주 전에 공지된다. 아역 배우의 컨디션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해외 공연에서는 아예 사전 캐스팅 공지를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제작사 신시컴퍼니는 “캐스팅 정보에 따라 티켓 예매가 좌우되는 국내 공연시장의 특성을 감안해 이런 정도의 타협점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역 배우에게 문제가 발생할 경우는 언제든 캐스팅이 변경된다. 또 이에 대비하기 위해 다른 배역에 비해 더 많은 수의 아역 배우가 캐스팅된다. 국내 초·재연 당시 빌리 역에는 5명의 배우가 캐스팅됐다. 이번 시즌에도 4명의 아역 배우가 빌리를 연기한다. 2022년 2월2일까지. 서울 대성 디큐브아트센터.

올댓아트 정다윤 에디터·임승은 인턴 allthat_ar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