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계의 셀럽 '비욘드 클로젯' 고태용, '방구석 1열 패션쇼'

장회정 기자 2021. 10. 15.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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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서울패션위크 3일차. 패션쇼를 5시간 앞둔 백스테이지에서는 콜타임에 맞춰 집결한 모델들의 헤어·메이크업이 한창이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밖은 한껏 단장을 하고 온 관객과 그들을 촬영하려는 스트리트 포토그래퍼의 열기로 달아오른다. 코로나19 이전이었다면 말이다.

그 시각 ‘비욘드 클로젯’의 디자이너 고태용(40)은 서울 도산대로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디지털 패션위크라 가능한 풍경이다.

2022 S/S 서울패션위크 주간에 만난 패션디자이너 고태용. 김영민 기자



| 사전제작 영상 패션쇼 러닝타임 7분 여
| 21벌로 착장 줄이고 편집·연출에 힘 줘

지난 10월7일부터 15일까지 열린 2022 S/S 서울패션위크는 제한적 관중을 초청한 라이브 패션쇼로 치를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거리 두기 4단계 적용이 지속되면서 지난 8월12일 전면 온라인 개최를 선언했다. 코로나19로 취소된 2020 F/W 이후 세 번째 온라인 패션위크로 라이브 패션쇼 없이 사전제작된 영상을 유튜브, 네이버TV 등을 통해 송출한다. 서울시 주관 행사이다보니 이번 시즌 비대면의 빗장을 살짝 연 세계 4대 패션위크에 비해 조심스러운 행보다.

온라인 패션위크는 패션쇼의 판을 바꿨다. 고태용의 경우 컬렉션당 보통 35벌가량을 제작했는데, 이번 시즌에는 21벌을 만들었다. 영상의 경우 일정 시간이 지나면 시청자가 지루함을 느끼게 마련이라 7~8분의 러닝타임 동안 집중해서 볼 수 있는 착장의 수를 환산한 것이다. 패션쇼 하면 백스테이지에서 빛의 속도로 옷을 갈아입는 모델들의 ‘기술’을 떠올린다. 비대면 패션쇼는 끊어가며 촬영할 수 있는 덕분에 모델의 수도 자유자재로 조정할 수 있다.

고태용은 1지망부터 3지망을 덕수궁으로 쓰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결과, 중명전 로케이션을 성사시켰다.

“패션쇼에서 임팩트를 줄 수 있는 장치가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피날레 때 모델이 일렬로 죽 서서 런웨이를 걷는 거죠. 의상을 리마인드해주는 효과가 있는데, 비대면쇼는 편집으로 가능하다는 점이 다르죠.”

오프라인 패션쇼에서는 첫 번째나 피날레 의상에 힘을 준다면, 영상에서는 각종 촬영 기교를 통한 연출이 가능하다. 영화를 방불케 하는 편집 기술을 구사하거나, 카메라가 모델 주위를 360도 회전하는 것은 예삿일. 에이벨 최병두 디자이너는 아예 3D 아바타 모델이 등장하는 쇼를 올렸다.

‘YARD’라는 타이틀로 “오가닉라이프 스타일을 서정적인 무드”에 담아낸 2022 S/S 비욘드 클로젯 컬렉션.



| 중명전 로케이션 ‘YARD’ 테마 살리기에 제격
| 쇼 공개 당일에도 수정할 정도로 완성도에 공들여

“패션쇼는 맨 앞자리 프런트로에 앉은 관객들에게 의상의 테일러링(재단)이나 디테일, 소재 등을 직접적으로 선보이는 방식이거든요. 전체적인 완성도가 굉장히 중요하죠. 그런 부분에 자신이 있는데, 비대면으로 진행되다 보니 톤이나 색보정을 통해서 변질될 수도 있다는 점이 상당히 아쉽습니다.”

비대면이 주는 장점도 있다. 그동안 디자이너들은 DDP라는 한정적인 공간을 자신의 의상 콘셉트에 맞는 무대로 꾸미기 위해 의상 제작비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비용을 세트 디자인에 할애했다. 패션위크 2년차 시절 고태용은 무대 바닥을 장식할 낙엽을 직접 남산에서 주워오기도 했다. 비대면 패션쇼가 시작되면서 서울패션위크의 무대는 서울의 랜드마크로 확장됐다. 이번 시즌 디자이너들은 고궁 및 종묘사직 등에서 패션필름을 촬영했다. 고태용은 1지망부터 3지망을 덕수궁으로 쓰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결과, 중명전 로케이션을 성사시켰다. 5시간에 걸쳐 촬영한 영상은 쇼 당일 오전까지 6차 수정을 할 정도로 공을 들였다.

세 번째 비대면 컬렉션으로 치러진 이번 서울패션위크의 영상 패션쇼는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완성도를 선보였다. 고태용은 이번 컬렉션에 미국인 첼리스트와 인기 유튜버 크리에이터를 모델로 기용하기도 했다.

항상 자신의 관심사를 컬렉션에 풀어내는 고태용은 이번 시즌 ‘YARD’라는 타이틀로 “오가닉라이프 스타일을 서정적인 무드”에 담아냈다.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차분한 색상에 과감한 프린트, 위트 있는 패치워크 등을 활용해 ‘고태용다움’을 잃지 않았다. 지속 가능한 삶에 대한 오랜 고민은 선인장이나 한지를 이용한 비건레더를 통해 구현됐다.

영상으로 만나는 비대면 패션쇼는 ‘방구석 1열’에서 스카프와 셔츠의 패턴, 그리고 토끼 로고 등 디테일에 강한 비욘드 클로젯의 면모를 속속들이 살펴보는 재미가 있다.

패션쇼 당일 지인들에게 초대장 대신 유튜브 링크를 보내줬다는 고태용은 그동안 고생한 직원들과 함께 사무실의 대형 모니터로 쇼를 지켜볼 예정이라고 했다. 비대면 쇼의 가장 좋은 점이라면, 패션위크가 끝나도 즐길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방구석 1열이잖아요. 패션위크의 프런트로는 프레스나 바이어, 셀러브리티가 차지하고 2열까지는 그래도 잘 보이는데, 3열은 ‘신발을 못 봤다’, 4열은 ‘바지를 못 봤다’, 뒤에 서서 본 분들은 ‘(모델)머리만 봤다’고 하시거든요. 그런데 비대면 패션쇼는 그렇지 않잖아요. 우리 컬렉션의 A부터 Z까지 다 볼 수 있는 기회이니 잘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6개월의 작업이 7분 안에 끝나는 게 아이러니하기도 하지만, 많은 분들이 보시고 좋은 에너지를 받으시면 그걸로 된 거죠.”

비욘드 클로젯은 이번 서울패션위크의 ‘글로벌 패션브랜드 텐소울(10Soul)’에 선정됐다. 서울시 소재 패션브랜드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육성하자는 취지에서 기획된 사업으로 선정 브랜드는 해외 유명 온·오프 쇼름 입점 및 바이어 대상 B2B 및 해외 패션위크 진출 지원을 받는다. 코로나19의 기세가 누그러지면, 다음 시즌 비욘드 클로젯의 해외 패션위크 오프라인 패션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고태용은 ‘패션인’을 꿈꾸는 후배들을 위해 책을 쓰고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등 가이드의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 20대 후반 대학 졸업 후 바로 ‘비욘드 클로젯’ 론칭
| ‘고태용표’ 패션으로 셀럽들의 디자이너로 자리매김

의류학과 편입생 고태용은 과제 때문에 찾았던 서울패션위크에서 가슴 뛰는 경험을 한 뒤,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했다. 2008년 서울패션위크 최연소 참가 디자이너로 데뷔한 이래 매년 참가 도장을 찍을 정도로 서울패션위크는 그에게 각별하다. 익숙한 디자이너의 이름이 눈에 띄게 줄어든 이번 시즌 그의 이름이 더욱 반갑다. 브랜드의 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는 채널이 증가하면서 꽤 많은 비용과 공력이 드는 패션쇼가 디자이너의 필수 과업에서 밀려난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패션위크 참가를 ‘도전’으로 읽어야 하는 이유다.

“서울패션위크는 제가 이 일을 하게끔 한 시작점이자 계속하게 만들어준 원동력입니다. 디자이너는 디자인 외에도 비즈니스 관련 업무가 많거든요. 그런 데에서 오는 회의감이나 딜레마에 빠질 때 내가 선택한 이 길이 맞는다는 걸 확인시켜주는 시간이기도 하죠.”

비욘드 클로젯의 2022 S/S 컬렉션을 한 눈에 보여주는 보드맵과 각종 로고 디자인. 김영민 기자

비욘드 클로젯은 일명 ‘국민 개티’라 불리는 강아지 모티브 티셔츠로 국내외에서 “드라마틱한” 성공을 거뒀다. 각종 브랜드와의 협업, 홈쇼핑 진출 등 다각화 전략을 통해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보기 드문 디자이너 브랜드이기도 하다. 올해로 데뷔 14년 차, “과거 ‘힙’한 스트리트 무드에 열광했다면 이제는 힘을 빼는 느낌이 강하다”는 그의 표현대로 비욘드 클로젯은 한층 성숙해졌다는 평을 듣고 있다.

입담 좋기로 소문난 고태용은 “어려서부터”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그것이 소년시절인지, 데뷔 초기인지를 묻는 것은 무의미했다. “어려서부터 마크 제이콥스의 다큐를 보면서 디자이너를 동경했다”는 그는 디자이너의 꿈을 키우는 후배들을 위해 책(<세상은 나를 꺾을 수 없다>)도 썼고 유튜브도 한다. 비록 유튜브 채널 ‘이 패션 어태용?’의 인기 콘텐츠가 ‘비욘드 클로젯 제품을 당근마켓에서 내놓은 판매자를 직접 만나 구매하는 영상’일지라도, 그는 기꺼이 시간을 낸다. 축구 국가대표팀 유니폼 제작 디렉팅을 하거나, 두바이엑스포 한국관 서포터스의 유니폼 제작에 참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패션이 발휘할 수 있는 영향력에 대한 고민. 고태용의 다음 스텝에 대한 힌트가 되겠다.

장회정 기자 longcu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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