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홀뚜껑·신호등·과속방지턱..사소함서 찾아낸 도시 이야기

이한나 입력 2021. 10. 15.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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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보이지 않는 99% / 로먼 마스·커트 콜스테트 지음 / 강동혁 옮김 / 어크로스 펴냄 / 1만9000원
일본 오사카에 가면 도로 곳곳에서 목판화처럼 아름답고 멋진 맨홀 뚜껑을 볼 수 있다. 일본 도시에서 하수와 빗물을 처리하는 다양한 기반시설은 오래됐지만, 표준화된 통로로 접근하는 지하 시스템은 현대에 와서 가능했다. 1980년대 당시 일본에서 하수도와 연결된 가정은 절반에 불과했다. 당시 건설성 고위직에 있던 가메다 야스타케라는 지역주민들이 하수도 건설을 지지하도록 유도하는 캠페인에 맨홀 뚜껑을 활용하도록 했다. 각 지자체가 헬로키티는 물론 민속, 자연을 활용한 문양을 맨홀 뚜껑에 넣으면서 예술적 표현을 경쟁하게 됐다. 이에 일본에서는 '만호루(맨홀의 일본어 표현) 마니아'가 생겨났고 맨홀 뚜껑을 소재로 한 사진, 머리핀, 스티커, 자수 문양 책자까지 나올 정도로 문화적 상징이 됐다. 관광객들이 구매하는 대표적인 오사카 기념품이다.

우리가 매일 지나치는 신호등과 과속방지턱, 자전거도로 등등 무심코 지나치지만 매일 경험하는 사물들에 담긴 인간과 도시의 진화사가 책으로 나왔다. 저자 로먼 마스와 커트 콜스테트는 '보이지 않는 99%'란 주제로 팟캐스트를 10년간 진행한 경험을 책으로 엮어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더럼에 '깡통따개'라는 별명이 붙은 다리 '노퍽서던-그레그슨 고가교'가 있다. 높이 약 3.6m의 차량만 통과할 수 있는 설계는 1940년 건설 당시에는 충분해 보였다. 하지만 트럭 높이가 높아지면서 교량과 부딪히는 일이 갈수록 잦아져 사고가 발생했다. 인근 주민이 2008년 카메라를 설치해 사고 현장을 기록한 짤막한 영상을 올리자 널리 회자됐다. 이곳은 관계 당국의 책임 전가로 뾰족한 해법을 내지 못하다가 2019년 마침내 노스캐롤라이나 철도회사가 50만달러를 들여 작업을 단행해 약 3.8m로 높였다. 하지만 여전히 더 높은 트럭이 다니는 상황에서 사고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잘못된 사회기반시설은 도시 내에서 해결되지 않는 골칫거리지만 주인의식을 가진 시민 한 명 덕에 해법을 구하려는 시도도 나왔다.

이처럼 도시 공간 곳곳에 숨어 있는 사연들을 알고 나면 주변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뉴욕이나 도쿄, 런던 등 다른 대도시들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격언이 새삼 떠오른다. 다만 서울 등 한국 도시만의 디테일(세부 내용)이 없는 것은 아쉽다. 한국에서도 매일 밟으며 지나가는 보도블록이나 지나치는 도시 구석 공간에 대한 면밀한 탐구가 이어지고 이를 적극 해결하는 과정에서 도시 거주민 99%가 더 행복해질 것 같다.

[이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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