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자의 잇고] 배달의민족이 만든 '을지로오래오래체' 온라인 전시 가보니
(지디넷코리아=최다래 기자)눈 뜨면 휴대폰부터 확인하는 세상, 음식 배달부터 업무, 부동산까지 플랫폼을 거치지 않는 영역이 없다. IT 기업들은 메타버스, 콘텐츠, 공유 플랫폼 등 새로운 서비스를 지속 출시하는 중이다. 지디넷코리아는 '사람과 기술을 잇는다'는 의미인 '잇고'(ITgo)를 통해 기자가 직접 가서(go) 체험해본 IT 서비스를 소개한다. [편집자주]
“2019년 을지로체를 처음 그릴 때부터 ‘시간이 지나면서 완전히 닳아 없어진 글꼴’을 꼭 만들어 보고 싶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을지로의 현재를 표현하고 싶다.”
배달의민족은 지난달 29일 폰트 전문회사 산돌과 협업해 개발한 ‘을지로오래오래체’를 소개하는 온라인 전시 ‘을지로입구 99번출구’를 열었다. 이번 전시는 2019년 ‘을지로체 도시와 글자’, 지난해 열린 을지로 사진전 ‘어이 주물씨 왜 목형씨’에 이은 세 번째 전시다.
‘을지로오래오래체’는 배민이 2019년부터 기획해온 을지로체의 마지막 서체다. 회사는 “글자가 처음 쓰였던 당시로부터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난 뒤의 역사를 반영한 서체로, 낡고 닳아졌지만 오히려 그 안에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시간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재탄생 시키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배민은 앞서 옛날 간판 글자 한나체와 주아체, 아크릴판에 시트지를 잘라 만든 도현체, 가판대 붓글씨 연성체, 매직으로 쓴 화장실 안내판 글씨 기랑해랑체 등을 선보였다. 이어 2019년에는 을지로체, 지난해에는 을지로10년후체를 공개한 바 있다.
기자는 15일 을지로입구 99번출구 전시를 직접 체험하고, 이를 총괄한 우아한형제들 한명수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CCO)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전시장에 입장하니 먼저 ‘트로피 만드는 손님’이라는 닉네임을 부여받고 8개 프로젝트를 감상할 수 있었다.
첫 번째 프로젝트 ‘을지로 작가들’에서는 그림, 음악, 도예와 같은 예술 분야에서 활약 중인 권지현, 김자현, 류지영 등 25인 작가들의 작업 영상을 한 시간 동안 감상할 수 있었다. 특히 배속을 없애, 작가의 작업 현장을 실제 방문한 것과 동일한 속도로 보게 한 것이 특징이다.
‘을지로 라이브’에서는 지난 12일 래퍼 넉살과 던밀스의 랜선 라이브 콘서트가 공개됐다. 던밀스는 이날 공연에서 “랜선 콘서트는 해봤지만, 이 정도의 규모는 처음이다”라고 말했다. 공연 중간에는 을지로 거리의 밤 풍경이 비치기도 했다. 15일 오후 8시에는 가수 선우정아의 공연이 공개될 예정이다.
이 외에도 ▲현재 시각을 을지로오래오래체로 보여주는 을지로시계 ▲을지로의 모습을 구현한 손으로 걷는 을지로 ▲을지로체가 담긴 물풍선을 터뜨릴 수 있는 을지로 말풍선 던지기 ▲3년간 을지로에서 만난 글자, 사람, 시간에 대한 영감을 모아 전시한 을지로박물관 ▲을지로 곳곳에서 수집한 소리를 이용자가 적은 문장과 함께 들려주는 을지로디제잉 ▲2천350개 글자 중 하나를 선택, 자신이 원하는 대로 꾸밀 수 있도록 한 2천350명의 을지로체 등 다양한 전시 프로젝트가 준비돼 있었다.
이번 프로젝트를 총괄한 우아한형제들 한명수 CCO는 “2019년 을지로체를 처음 그릴 때부터 ‘시간이 지나면서 완전히 닳아 없어진 글꼴’을 꼭 만들어 보고 싶었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을지로의 현재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한명수 CCO와의 일문일답.
Q. 특별히 '을지로'라는 지역을 내세운 이유가 있나요?
“2012년 처음 배달의민족 전용서체인 '한나체'를 만들 때 모티브가 1960~70년대 길거리 상점 간판이었어요. 이후 서체에서도 지역의 소박한 특징과 우리 주변의 일상을 담고자 했습니다. 2019년 여덟 번 째 서체인 '을지로체'를 만들 때 우리나라의 가장 상징적이고 대표성을 가진 오래된 간판 동네가 어딜까 했더니, 공구를 만들던 을지로더라고요. 그래서 을지로 공구 거리의 간판들을 수집하면서 가장 예쁘다고 생각한 간판을 선정해 2천350여 글자를 만들었고 그 이후 을지로를 좀 더 깊게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간판과 간판 주인 사장님들과 대화를 나누며 을지로가 가진 이야기와 매력을 알아간 것 같아요. 을지로에는 다양한 연령과 직업의 사람들이 모여있어요. 붓글씨 간판을 쓴 장인도 있었고, 장인의 간판을 달고 수십 년 동안 철공소를 운영하시는 사장님들, 그리고 그곳에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젊은이와 예술가들까지. 다양한 세대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있어 3년 동안 을지로를 주제로 작업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간판의 시각적 매력에서 시작된 관심이 하나의 도시 공간과 사람들의 문화로까지 커진 거죠.”
Q. 이번 전시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인가요?
“을지로의 현재를 표현하고 싶었어요. 지난 2년간의 전시는 을지로의 장인, 간판, 문화에 관해 이야기했다면, 올해는 시간이 흘러 을지로를 즐기는 젊은이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문화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글자의 뼈대 흔적만 남은 간판들을 보면, '저 떨어져 나간 수많은 조각은 어디로 갔을까?' 라는 상상을 하게 되죠. 그 조각들이 사실 우리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유산을 선물로 받고 현재 도시 구석구석을 걸어다니는 생생한 우리들. 코로나19로 묶여있을 법한데 아랑곳하지 않는 건강하고 젊은 마음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마스크 없이 새로운 도시를 핸드폰으로 여행하면 재밌지 않을까요? 낡고 닳아버린 글자 뒤에 숨어있는 발랄한 생기를 느끼면서.”
Q. ‘을지로오래오래체’는 어떻게 개발됐나요?
“2019년 을지로체를 처음 그릴 때부터 생각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완전히 닳아 없어진 글꼴을 꼭 만들고 싶다고요. 그래서 작년에는 살짝 닳아버린 중간 정도를 만든 것이고 올해는 완전히 닳아버린 정도를 설정해 콘셉트 스케치를 만들었어요. 어느 지점에 페인트가 더 많이 묻었을까, 어떻게 해야 자연스러운 손맛이 보일까 고민했어요.
올해는 세월의 흔적만 남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어디를 더 과감하게 지울 수 있을까'에 대한 새로운 시도도 더해졌고 폰트 전문회사 산돌과 협업해 ‘을지로오래오래체’를 개발했어요. 수백 글자의 초벌 스케치를 서로 상의하고 기술개발의 제약도 같이 고민하면서 최종 2천400글자를 만드는 일은 8~9개월이 걸리는 일이에요. 한눈에 어떤 글자인지는 알아차리기 힘들어도 남아있는 흔적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읽을 수 있도록 하는 디테일까지 섬세하게 다뤘습니다.
중간에 계속 문장과 글줄을 만들면서 가독성과 심미성, 우리가 원하는 '읽힐 듯 말듯' 하는 정도를 계속 테스트하면서 완성도를 높였어요. 글꼴이 완성되면 최종으로 서체 이름을 정하는 일이 마지막 과정입니다.”
Q. ‘을지로입구 99번출구’는 2019년부터 이어져 온 을지로체 프로젝트의 마지막 전시인데, 소감이 어떠한가요?
“'을지로체'를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사용해주셔서 고마울 따름이죠. 활용이 조금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던 '을지로10년후체'도 생각하지 못했던 장소와 방식으로 사용되었던 걸 보며 흥미롭기도 해요. 그래서 조금 더 실험적인 '을지로오래오래체'도 사람들이 어떻게 해석하고 사용할지 더 기대됩니다. 전시를 통해 사람들이 낯선 서체와 좀 더 친숙해져서 저희가 예상치 못한 정도까지 사용해준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아요. 배달의민족 앱은 사용 안 해도 저희 서체를 써주시면 영광이죠 뭐.”
Q. 이번 전시를 통해 배달의민족 이용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전시 온라인 사이트를 열자마자 '어머, 재미있고 발랄하네' 느꼈으면 좋겠고, 이후 그 경험이 '시간의 흐름이 만들어낸 아름다움과 즐거움'으로 확장되면 좋을 것 같아요. 낡아버린 것들도 자세히 보면 소중한 의미들이 반짝이니까요.”
최다래 기자(kiwi@zd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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