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의 세계속 위상과 우리의 과제

2021. 10. 15.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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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공회 경상국립대 경제학과 교수/정책기획위원회 국민성장분과 위원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에는 별별 자료가 다 있다. 그 가운데 요즘 부쩍 내 눈길을 끄는 컨텐츠가 있는데, 바로 우리의 옛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다.

한복이 일상복이었으니 이들에게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는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다. 일상복인 한복을 삐딱하게(!) 차려입고 활짝 웃는 백 년 전 조상님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감돈다.

한국전쟁기를 담은 영상물 앞에선 인상이 저절로 찌푸려진다. 카메라 바로 앞에서 포탄이 터지기도 하고 폐허가 된 도시의 건물 앞에서 병사들이 웃으며 밥을 퍼먹기도 한다. 흑백으로 촬영되었을 영상은 현실감을 더하기 위해 천연색으로 복원됐으나, 그것이 전하는 모습은 너무도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더 비현실적인 것은 그 장면이 불과 70년 전 우리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대체 어떻게 저 폐허로부터 그렇게 짧은 기간에 우리는 오늘의 풍요에 이르게 되었는가? 

객관적인 경제지표상으로 보면 우리나라를 선진국이 아니라고 하는 게 더 이상할 정도이고, 사실 그것은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다. 2000년대 내내 한국은 경제규모로 세계 10위권 안팎을 유지하고 있고, 1인당 국민소득(GNI 기준)도 2006년에 2만 달러를 돌파한 이래 착실하게 성장을 유지해 2018년에 3만1349달러를 넘어섰다. 

이로써 한국은 미국, 독일, 일본,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에 이어 세계 일곱 번째로 이른바 ‘30-50 클럽’(1인당 국민총소득 3만 달러 이상, 인구 5000만 명 이상의 조건을 만족하는 국가)에 가입하게 됐는데, 이는 지난 세기 초반에 식민 지배를 겪은 나라로는 첫 사례라고 한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 돋보이는 것은 위와 같은 양적 지표들이 아니다. 그보다는 복잡미묘한, 즉 우리 경제의 질적 성장과 국제사회에서 실질적 위상 강화를 드러내는 증거들이 부쩍 자주 보이는 것이다. 

첫째, 현재 우리나라는 2007-08년 세계경제의 격변 이후 가장 높은 대외신인도를 유지하고 있다. 피치·무디스·스탠더드앤푸어스(S&P) 등 3대 신용평가사가 한결같이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을 역대 최고 수준으로 유지 중이다. 이는 코로나19 위기에 따라 이 기관들이 주요 22개 선진국의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하고 있음을 고려하면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또한 한국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도 지난달 1일 기준 17.78bp를 기록했는데, 이는 2007년 7월 23일(17.4bp) 이후 14년 1개월만에 최저치다. 

다른 한편, 최근 글로벌 신용평가사와 대형 투자은행 등은 국민경제나 기업을 평가할 때 이들이 친환경·사회적 기여·지배구조 개선(ESG)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를 보는 경향이 부쩍 강해지고 있다. 이를 위해 각 기관들은 자체적인 ‘ESG 평가’ 기준들을 내놓고 있는데, 무디스는 올초에 한국에 독일, 스위스 등 다른 10개국과 함께 1등급을 부여했다.

흔히 전통적인 선진국들이 강세를 보일 것으로 여겨지는 이 부문에서조차 한국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은 각별한 성과라고 할만하다. 이상과 같은 성과들은 한국을 명실공히 ‘선진국’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나라로 만들고 있다.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태극기를 비롯한 국기들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한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변경했다. UNCTAD가 1964년 설립된 이래 개도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지위를 변경한 것은 한국이 처음이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그러나 이에 따라 제기되는 과제도 만만치는 않다. 먼저, 우리는 선진국의 위상에 맞는 내실을 갖추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 문재인 정부 내내 국내적으로 불평등 내지 불공정에 대한 다방면의 문제제기가 끊이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의 성과를 들어 그러한 문제제기가 근거 없는 ‘흠집내기’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지혜롭지 못한 태도다. 만약 우리 스스로 일군 위 성과들에 자부심을 갖는다면, 이를 토대로 국민들이 제기하는 문제제기를 겸허히 수용하고 과감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대외적으로 우리의 위상을 종합적으로 고찰해볼 필요도 있다. 어떤 이들은 위에서 열거한 지표들이 보여주는 우리의 현실을 두고 ‘추격의 시대’를 끝내고 ‘추월의 시대’에 들어섰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일리 있는 말이지만, 여전히 이 진단은 우리의 자리를 ‘기존 선진국들’과의 관계 속에서 설정한다는 점에서 아쉬움도 있다. 혹시 그런 시각은 계속해서 ‘기존 선진국’에 대비되는 우리의 ‘부족함’에 우리 자신을 가두는 것은 아닐까?

이는 결국 우리가 ‘어떤 선진국이 될 것인가’의 문제다. 

그간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불렀던 나라들은 19-20세기의 특정한 역사적 상황의 산물이다. 그러니 어떻게 해도 오늘의 우리가 그들과 같아질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식민지배와 선진국들의 원조가 아니면 살 수 없었던 극심한 빈곤, 그리고 20세기 냉전의 산물인 민족상잔의 전쟁과 분단까지 겪었으면서도 선진국으로 발돋움하지 않았는가? 

말하자면 우리는 지금 ‘선진국’의 새로운 유형을 만들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의미는 ‘추월’보다는 ‘선도’에서 찾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30여년 전 국제사회가 ‘기적’이라고 불렀던 우리의 경험을 인류 모두와 반성적으로 공유해 누구나 들어설 수 있는 ‘길’로 만드는 역할─이런 역할을 중심으로 국제사회에서 우리 자신을 자리매김했을 때, 우리가 발휘할 수 있는 ‘소프트 파워’도 극대화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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