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부는 제주 밭.. 붉고 노란 맨드라미가 물결치네
‘복면 쓴 자객의 잘 벼린 비수이거나 / 미처 꺼내지 못한 몸속의 불씨이거나 / 오래전 미리 써두었던 붉은 묘비명이거나’
‘그 여름의 맨드라미’(김제숙 시집 ‘홀가분해서 오히려 충분한’ 중)라는 시에서 맨드라미는 비수, 불씨 혹은 묘비명이다. 도톰한 붉은 꽃잎이 강렬해 맨드라미는 찌르고 태우고, 잠재우는 존재로 비유된다. 시인들은 그 생김새의 특이함 때문에 이 꽃을 사랑했다. 시인 이상화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서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라고 했다. 맨드라미는 나비와 제비가 인사할 만큼 우리 산천에 흔하게 깔려 눈에 쉽게 띄는 여름꽃이다. 시인 하린은 맨드라미를 ‘옥상위 지뢰’로 묘사했다. 주택 옥상에 놓인 맨드라미 화분을 보고 연상한 시어(詩語)가 특이하다.
붉은 맨드라미는 꽃잎이 얼핏 보기에 닭벼슬같다. 한자로 ‘계관화’(鷄冠花)로 불리는 이유이다. 일반적인 꽃 모양새가 아니어서 사람마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정도가 다르다. 모양이 닭벼슬을 닮아서인지 그에 상응하는 전설도 많다. 그 전설에는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나 모두 사람을 해치려는 지네가 등장하고, 이 지네를 막아낸 존재로 닭이 나온다. 닭은 사람을 위해 지네를 물리치지만 결국 목숨을 잃고 만다. 닭이 죽은 그 자리에 피어난 꽃이 맨드라미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민간속설에는 된장을 좋아하는 지네가 장독대에 스며들지 못하도록 장독대 부근에 맨드라미를 심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맨드라미는 ‘만들어 놓은 것 같다’라는 순우리말이다. 꽃말은 ‘건강’,’시들지 않는 열정’등이다. 본래 여름에 피지만 추석 때까지 꽃을 볼 수 있을 만큼 생명력도 길다. 약재로도 쓰여 부인병 치료에 많이 이용된다. 지금 제주 표선에 있는 보롬왓 농장에서 맨드라미로 가득한 들판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특이하게 노란색 맨드라미도 볼 수 있다. 보롬왓은 바람이 부는 밭이라는 뜻의 제주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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