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신기전의 DNA를 품은 누리호, 그 도전의 역사

채연석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 위원장(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 2021. 10. 15.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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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전(神機箭)은 조선 세종 시대에 개발된 독창적인 화약무기로 상세한 제작 자료가 남아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로켓이다. 채연석/과학동아DB

1447년(세종 29년) 11월 23일 조선 한양(서울)에서 보낸 신무기인 '대주화' 60기와 '소질려포' 36문이 의주에 도착했다. 로켓 병기에 해당하는 대주화는 1448년 '대신기전'으로 이름이 바뀌고 소질려포는 임진왜란 때 '진천뢰'로 발전되는 지름 18cm 크기의 철 파편이 들어 있는 나무통 폭탄이다.  소질려포를 부착한 대신기전은 압록강과 두만강 건너 수백m 밖에 진을 치고 호시탐탐 침략을 일삼던 여진족을 막아내고 국경을 지키기 위해 개발한 신무기다. 신기전은 로켓 설계도가 남아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로켓이며 길이 5.5m의 대신기전은 15세기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던 대형 로켓탄이다.  이 가운데 대신기전의 일종인 산화신기전은 세계 최초의 2단 로켓이었다.

이렇듯 우리는 한때 세계 최고 수준의 로켓 제작기술을 보유하고 있던 발사체 강국이었다. 신기전의 개발 주역들의 DNA를 이어받은 국내 로켓 과학기술자들이 이달 21일 본격적인 로켓 활용을 시작한지 570여년만에 한국을 한번 더 로켓 선진국으로 발돋움시키기 위해  한국형발사체 누리호 발사 카운트다운에 들어간다. 

누리호의 뿌리인 액체 추진제 로켓 연구는 지난 1995년 5월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추력 180kgf(킬로그램힘)의 소형 액체 로켓 엔진 연소 시험에 착수하며 시작됐다. 필자는 당시 액체 로켓 엔진에 첫 불을 붙이는 막중한 역할을 맡았었다. 1997년 12월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정부가 국가 우주개발의 미래를 위해 한국 최초 액체추진제 과학로켓(KSR-3) 연구개발에 연구비 550억원을 투입하기로 결정하면서 본격적인 액체 로켓시대를 열었다. 최종적으로 780억원이 투입된 KSR-3은 2002년 11월 성공적으로 발사됐고 국내 액체 추진제 로켓 분야의 기술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2002년 시험발사에 성공했던 국산 액체추진 로켓 KSR-3.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사실 로켓기술은 민간용이라도 국제적으로 강력하게 통제되고 있다. 설계와 제작, 시험 등 연구개발에 필요한 모든 분야를 독자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특수한 분야이다. 이런 이유로 비용도 많이 들고 개발 기간도 오래 걸려서 정부의 장기적인 투자와 지원, 그리고 국민의 신뢰와 성원 없이는 기술 확보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항우연은 본격적인 우주발사체 독자 개발을 위해 2003년 추력 30t급 고성능 액체엔진 개발에 착수했다. 2009년에는 전남 고흥 외나로도에 위성을 독자적으로 발사할 수 있는 나로우주센터를 건설했고 두 차례 실패 끝에 2013년 러시아의 1단 로켓과 국산 2단 로켓을 조합한 첫 우주발사체 나로호로 무게 100kg의 위성을 쏘아올리는데 성공했다. 나로호 발사 과정에서 우리는 위성을 궤도에 올리는 방법을 배웠고 발사체를 유도하고 제어하는 소프트웨어 능력도 확보했다. 

이를 바탕으로 10여 년에 걸쳐 지구 600~800km 상공의 저궤도에 무게 1.5t에 이르는 인공위성을 발사할 수 있는 첫 독자 우주발사체 누리호를 개발해왔다.

현재 지구 저궤도에 무게 1.5t 위성을 발사할 수 있는 우주발사체를 보유한 나라는 미국과 러시아, 유럽연합, 중국, 일본, 인도 등 6개국 정도다. 누리호의 추력 75t급 액체 엔진은 추진제인 등유와 영하 183도의 액체산소를 폭발시켜 대기압의 60배 압력에서 3500도의 연소가스를  만들어 추력을 얻는 방식이다. 우주를 날아가는 고압 용광로이며 대표적인 극한기술이기 때문에 확보가 어려운 것이다. 한국이 중형 우주발사체를 확보하는 것은 선진국 반열에 올라간 현재의 국가 위상에 걸맞고 건국 이후 최고의 과학기술 연구의 쾌거이며 경사이다. 

발사대로 이송해 기립장치에 기립된 누리호 비행 기체의 모습.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지난해만 26회 발사에 성공한 미국 스페이스X의 팰컨9은 현재 전 세계의 상업위성 발사시장을 휩쓸고 있다. 이 회사 창업자 일론 머스크가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우주발사체를 만들 수 있던 것은 미국이 수십 년간 아폴로 계획 등 우주개발에 꾸준히 투자해 우주산업 기반을 단단히 다져놓은 덕분이다.  한국이 어렵게 확보한 우주발사체 기술의 산업 경쟁력을 높이려면 1단 로켓의 재사용 등 신기술 연구에 대한 지속적 지원과 함께 항우연과 함께 누리호 기술을 확보한 기업들이 이를 계속 유지하도록 정부가 연간 최소 2~3회 발사를 보장해주어야 한다.

누리호의 성공적인 발사는 또한 청소년에게 미래 과학기술자의 꿈을 심어주고 우리의 과학기술수준과 과학기술인의 능력이 최고의 수준임을 확인하는 기회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26년간 국산 중형 우주발사체인 누리호 개발을 위해 수조원의 연구비를 묵묵히 투자한 정부와 그동안 성원해주신 국민, 연구 현장에서 모든 열정을 불사른 연구원과 산업체의 기술자와 함께 성공적인 발사를 기원한다. 

채연석 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장

[채연석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 위원장(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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