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공개 재판 조재범 판결문 공개한 법률사이트

최윤아 입력 2021. 10. 15. 10:56 수정 2021. 10. 15.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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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범-심석희 소송 판결 전문뿐 아니라 일반 성범죄 판결문도 다수 공개
심 선수 변호사 "일부러 재판 비공개로 했는데..판결문 공개로 고통"
사이트 관계자 "미숙함 송구.. 재발 방지 위해 검색 알고리즘 전면 개편"
피해자 지원단체·법조계 "판결문은 공공재.. 공익성 없으면 제한해야"
심석희 선수를 상대로 수년간 성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지난달 열린 항소심에서 징역 13년형을 선고받은 조재범 전 국가대표팀 코치. 연합뉴스

법률 전문 검색서비스를 제공하는 한 사이트에서 조재범 전 국가대표 코치의 1심 판결문을 공개해 논란을 빚고 있다. 조 전 코치는 심석희 선수를 상대로 수년간 성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지난달 항소심에서 징역 13년형을 선고받은 인물이다. 판결문에는 가해사실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다. <한겨레> 확인 결과, 이 사이트에는 가해자가 조 전 코치처럼 대중에게 알려진 사람이 아닌 성범죄 사건 판결문도 상당수 공개되어 있었다. 구체적 가해 행위의 공개로 2차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판결문 기반 법률 서비스에 제한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5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해당 사이트에는 조재범 전 코치 1심 판결문이 그대로 게재돼 있었다. 판결문에 이들의 실명은 나오지 않았지만, 검색창에 ‘조재범’ 또는 ‘심석희’를 검색하면 별도의 로그인 절차 없이도 누구나 해당 판결문을 열람할 수 있었다. 해당 플랫폼은 14일 오후 2시 <이데일리>가 이 문제를 최초로 지적한 뒤 약 3시간 만에 ‘조재범’ 또는 ‘심석희’를 키워드로 검색해도 판결문이 보이지 않도록 조치했으나 페이지 주소(링크)를 입력하면 판결문을 볼 수 있었다. 이 주소가 남초 커뮤니티에 공개되어 판결문은 빠르게 확산됐다. 몇몇 언론은 이 판결문을 토대로 구체적 가해행위 등이 적나라하게 담긴 기사를 작성해 보도하기도 했다. 판결문 삭제는 14일 저녁에서야 이뤄졌다.

이와 관련, 심석희 선수 변호사는 <한겨레>에 보내온 입장문에서 “심 선수는 범죄사실이 일반에 공개되는 것을 원치 않아 수사부터 공판에 이르기까지 가명을 사용했고, 재판도 비공개로 진행했다. 그럼에도 일부 검색엔진에서 피해자 이름을 입력하면 해당 판결문이 검색되도록 해 피해자가 알리고 싶지 않았던 성폭력 행위의 구체적인 양상이 모두 공개되는 상황이 빚어졌다. 이는 20대 초반에 불과한 여성이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고통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원칙적으로 판결문은 열람이 가능하다. 헌법 109조에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재판 결과를 학술, 연구, 보도 등 공익적 목적으로 활용하고, 재판에 대한 시민의 감시 기회도 열어둬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본인인증 절차 거쳐 △1건당 1000원을 결제해야 하는 등 무분별한 공개를 막는 최소한의 장치는 있다. 또 성범죄처럼 사건 관계인의 명예나 사생활의 비밀, 안전을 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 ‘열람 제한 신청’을 할 수도 있다. 조 전 코치에 대한 판결문은 열람 제한 신청이 되어 있지는 않았다.

이 사이트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성범죄 사건의 판결문도 상당수 올라와 있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대표는 “특정 키워드나 사건번호로 검색하니 상당수 성범죄 판결문이 보였다. 정확히 어떤 기준으로 공개가 된 것인지 현재로서는 파악하기는 어렵다”며 “가해자가 유죄판결을 받아도 피해자에 대한 비난이 계속되는 구조에서, 이런 서비스를 통해 구체적 피해사실이 담긴 자료가 일반에 공개된다면 피해자의 고통이 대체 언제쯤 끝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실제로 조 전 코치 1심 판결문이 공개되면서 온라인 공간에는 법원의 유죄 판결이 잘못 되었다는 주장이 나오는 등 심석희 선수에 대한 2차피해가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피해자지원 단체는 성범죄의 구체적 피해사실을 공개하는 것은 2차피해가 될 수 있어 판결문 공개 서비스는 공익성이 명확한 경우로 한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판결문 공개는 비평·인용·분석 등 더 나은 사회적 논의와 법적 판단을 만들어가는데 꼭 필요하지만, 피해사실이 구체적으로 적시돼 피해자에게 고통을 지속시키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때문에 성폭력 사건 판결문을 인용하는 경우는 반드시 공익적 목적으로 사용하고, 피해자를 특정하거나 공개하거나 비난하는데 활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의 문구를 반복해서 넣어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법조계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장윤미 대한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성범죄 판결문의 원치 않는 공개는 피해자에게 거의 인권이 말살되는 수준의 고통을 준다. 학술·연구 등 공익적 목적일 때조차도 성범죄 판결문을 매우 신중하게 다루는 이유다. 그런데 해당 사이트는 결국 판결문 같은 ‘공적 문서’를 통해서 사익을 추구하는 기업이지 않냐. 제한이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인공지능(AI) 기술 기반 스타트업이 운영하는 해당 사이트는 법원 판결문, 공정거래위원회·금융감독원 등 행정기관의 결정문 및 유권해석을 비롯해 350만 건에 이르는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법률 전문 검색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사이트 관계자는 <한겨레>에 “오늘(14일) 접속자 수의 이상 폭등을 확인하고 문제의 판결문은 비공개 조치를 취했다. 변호사를 위한 서비스로서 다수의 공중에 판결문이 배포될 수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미숙함과 안일함으로 의도치 않은 사태를 야기하여 송구한 마음이다. 재발 방지를 위해 검색 알고리즘을 전면 재검토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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