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박영석 10주기.. 인간적 면모 담긴 '1%의 고독' 출간

글 서현우 기자 사진 서울시 산악문화체험센터 2021. 10. 15.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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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박영석 대장 10주기 (2) 추모 전기
박영석, 그는 악몽에 시달렸다
1980년 5월, 동국대 마나슬루 등정 환영 카퍼레이드.
박영석 대장의 생애를 다룬 전기 <1%의 고독>이 그의 실종 10주기인 오는 10월 18일 출간된다.
먼저 발행된 전기들이 그의 영웅적인 면모와 등반 성취를 주로 다룬 반면, <1%의 고독>은 탐험가 이전에 인간 박영석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에 주안을 뒀다. 집필은 산악인이자 작가인 국립한국등산학교 김헌상 행정실장이 맡았다.
월간<山>이 이번 10월호에서 지구상의 정점과 극점에 섰던 인간 박영석의 고뇌와 고독 일부를 먼저 공개한다. 자료 제공은 서울시 산악문화체험센터.
#카퍼레이드
“아저씨, 무슨 환영 행사예요?”
마나슬루가 어쩌고저쩌고 눈사태로 사람이 많이 죽었는데 이번에는 성공했다는 기자아저씨의 이야기를 영석은 금세 알아듣는다.
“그래, 맞아. 히말라야에 갔다가 아마 눈사태로 죽었었지.”
대규모 사망사고가 났던 기억이 아련히 떠오른다. 그런데 몇 년 후 또다시 그곳에 갔다가 이젠 형제 산악인 중 동생이 눈사태로 죽어서 한동안 사회적으로 떠들썩했던 기억도…영석은 카퍼레이드에 파묻힌 지프를 우두커니 서서 계속 바라본다.
영석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뭔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낀다. 그것은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이었다. 뭐가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한 것인지 영석도 명확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 강렬한 인상은 집에 돌아오는 내내 영석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특히, 왜 산악인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그렇게 험한 산을 오르는지, 올라갔다가 내려 올 산을 왜 그렇게 죽기 살기로 가는지 영석은 이해할 수 없었다. 마치 운명적으로 다가온 어떤 사건처럼 그날의 카퍼레이드는 영석의 뇌리에 각인된다. 영석은 그날 밤 카퍼레이드를 생각하면서 잠을 설치고 만다.
1993년 동국산악회 에베레스트 원정대.
#치유되지 않는 산
“진섭아, 원우야.”
한동안 잦아들었던 악몽이 최근 들어 다시 박 대장의 잠자리를 괴롭힌다. 박 대장은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깬다. 원정으로 인해 지친 몸과 마음을 충전하기 위해 뉴질랜드에 올 때마다 박 대장은 악몽을 꾸곤 했다. 노년의 부모님을 편안하게 모시고자 뉴질랜드 최대 도시 오클랜드에 거처를 마련한 박 대장. 박 대장은 이곳에 올 때마다 악몽에 시달렸다. 한국에 있을 때는 원정준비뿐만 아니라 후원사 언론사를 비롯해 여러 행사와 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밖에 없었고, 그런 빡빡한 일정 때문에 숙소에 돌아오면 파김치가 되어 곯아떨어지곤 했다. 그러다가 동생이 살고 있는 뉴질랜드에 오게 되면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졌고, 그 한적한 시간이 오히려 박 대장을 괴롭혔다. 박 대장에게는 오히려 혼자만의 시간으로 인해 지난날의 치유되지 않은 트라우마가 되살아난 것이었다.
“니가 후배를 잡아먹은 거야.”
박 대장은 악몽을 꾸는 듯 또 잠꼬대를 한다.
*안진섭, 남원우 대원은 1993년 에베레스트 남서벽 등반 중 사망했다. 박 대장은 당시 두 대원을 끝까지 책임지지 못한 것에 대해 자신을 질책했다.
#박 대장 술에 취해 횡설수설한다
“저는 왜 멈추지 않고 나아가야 하죠. 언론이 무서워서일까요? 아니오. 산에 가지 않는 산악인 박영석이 부끄러워서요. 동물원에 있는 호랑이가 호랑이입니까. 호랑이는 산과 들판을 뛰어다니며 포효해야 그게 호랑이죠.”
2007년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 무전기를 손에 꼭 쥔 채 고개를 떨군 박영석 대장.
#2007
이튿날 새벽, 수색에 나섰던 셰르파들로부터 캠프2 인근에서 희준과 현조의 시신을 찾았다는 연락이 온다. 박 대장의 눈에는 초점이 없다. 김동영, 정찬일, 김석우 등 남은 대원들도 서로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 박 대장이 침통한 표정으로 무전기를 잡는다. 그가 어딘가를 찾으며 울먹이며 말한다.
“종호 형, 텐트가 없어졌어요. 캠프4가 없어졌어요. 형, 내가 죽였어요. 내가 죽었어야 하는데….”
북극 원정 중 강한 바람에 휘청거리는 대원들. 2003년.
#14좌 후
박 대장은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혼란스러워진다. 지금까지 히말라야 14좌를 해내기 위해 죽기 살기로 달려온 그. 히말라야 14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것의 본질은 무엇인지 고민할 겨를도 없이 달려왔었다.
14좌를 완등한 후 박 대장은 아이러니하게도 한동안 상실감에 빠져 있었다.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그 뭔가를 이루어 냈을 때 오는 허탈감. 막상 가지고 싶었던 그 뭔가를 손에 쥐었을 때 오는 무상함일까. 더 이상 목표를 찾지 못한 채 지난날의 열정이 사그라지는 자신을 채찍질하기 위해 메스너가 못다 이룬 남극 북극을 생각했다. 하지만 주변의 반응은 “그건 허영호가 이미 하지 않았냐”였다.
후일 박 대장이 남극 북극 원정을 계획할 때도 그것이 산악그랜드슬램이라는 말로 탈바꿈되리라는 것은 누구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본 기사는 월간산 10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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