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친헤즈볼라 단체 주도 시위 중 총격전.."최소 6명 사망"

김윤나영·박하얀 기자 2021. 10. 15.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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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레바논 베이루트 타유네 지역에서 14일(현지시간) 충돌이 발생했다. 베이루트 | 신화연합뉴스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서 14일(현지시간) 친헤즈볼라 단체가 주도한 시위 도중 총격전이 벌어져 최소 6명이 숨지고 30여명이 다쳤다. 지붕 위에는 저격수가 배치됐고, 주택은 총알로 벌집처럼 구멍이 났다. 시민들은 2006년 레바논 내전을 떠올리는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이날 첫 총격은 베이루트 남쪽 교외의 타유네 지역에서 헤즈볼라 지지자들이 시위를 벌이던 도중 일어났다. 타유네 지역은 기독교도와 이슬람 시아파 거주지가 교차하는 곳으로, 30년 전 레바논 내전의 전장 중 하나다.

기독교도 거주지의 지붕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저격수가 교차로에서 시위대를 겨냥해 총을 쐈고, 헤즈볼라 대원들이 총격으로 대응하면서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로켓 추진 수류탄과 소총, 권총까지 등장해 내전을 방불케 했다고 AP통신 등이 전했다. 소셜미디어에는 초등학생들이 혹시라도 날아올지 모를 총알을 피하려 학교 복도에 단체로 웅크리고 앉아 있는 사진이 올라왔다. 일부 주택들은 총알 자국에 패여 벌집처럼 변해 있었다.

레바논 내무부는 현재까지 최소 6명이 사망했으며 30여명이 부상한 것으로 집계했다. 사망자 중 1명은 집 안 창문을 통해 들어온 총알에 머리를 맞은 24세 여성이었다. 나지브 미카티 총리는 긴급 성명을 통해 15일을 희생자 추모의 날로 지정한다고 밝혔다.

레바논군은 인근 지역을 수색해 시리아인 1명을 포함해 용의자 9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처음 총격을 가한 주체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헤즈볼라는 저격수가 동원됐다는 점을 근거로 기독교 계열 정당인 ‘크리스천 레바논 포스(CLF)’를 배후로 지목했다. 하지만 CLF 측은 이번 사건에 개입하지 않았다며 부인했다. 미셸 아운 대통령도 “무기가 레바논 정당 간의 소통 수단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날 총격전은 헤즈볼라 측이 지난해 베이루트 창고 폭발 참사 진상조사 책임자인 판사를 교체하라고 요구하는 시위 도중에 일어났다. 베이루트 항구에서는 지난해 8월4일 창고에 6년간 보관했던 질산암모늄 270t이 폭발해 219명이 숨지고 7000여명이 다치는 참사가 일어났다. 당시 집권 여당이던 헤즈볼라는 사고의 책임을 지고 내각에서 사퇴했고, 같은 해 12월 하산 디아브 전 총리를 비롯한 헤즈볼라 출신의 고위 관료들이 질산암모늄을 방치한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헤즈볼라는 시아파 국회의원들에게까지 체포영장이 발부되자 “판사가 사건을 정치화한다”면서 판사 교체를 요구하던 상황이었다. 반면 폭발 사건 피해자의 가족들은 “사법부에서 손을 떼라”고 정치권에 경고하며 헤즈볼라 지도부가 조사를 피하면서 스스로를 보호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번 사태로 레바논의 고질적인 종파 갈등이 커졌다. 1943년 프랑스에서 독립한 레바논은 종파별 인구 비율에 따라 대통령은 기독교 마론파, 총리는 이슬람 수니파, 국회의장은 이슬람 시아파가 맡는 권력 분점 구조를 택했다. 시간이 흘러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 인구가 역전됐으나 종파 간 권력 분점 체제는 그대로 유지돼 이슬람 엘리트들의 불만이 커졌다.

레바논은 기독교 마론파와 시아파인 헤즈볼라의 충돌로 1975년~1990년, 2006년 두 차례 내전의 아픔을 겪었다. 헤즈볼라의 팔레스타인 지원에 맞서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공격하면서 내전은 미국과 이란의 대리전 성격을 띠었다. 내전 중이던 1982년 9월엔 기독교 민병대가 팔레스타인 난민과 시아파 레바논인 460~3500명을 살해하는 ‘사브라-샤틸라 학살’ 사건이 일어나 양측의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레바논은 코로나19 확산과 베이루트 창고 폭발 참사가 겹쳐 최악의 경제 위기를 겪고 있다. 가정에 전기가 끊기는 등 에너지 위기도 가중됐지만, 사태를 수습해야 할 정치 지도부는 각 파벌의 이견으로 13개월 동안 공석이었다. 재벌 출신의 나지브 미카티 총리는 지난달에야 내각 구성을 마쳤다. 이런 상황에서 치안 불안까지 불거진 것이다.

일부 시민들은 15년 전 내전이 재연될까 걱정하고 있다. 두 아이의 엄마인 마리암 다흐르(44)는 “또다시 전쟁이 발발한다는 생각에 두렵다”면서 “같은 일을 다시는 겪을 수 없어서 아이들을 데리고 나라를 떠나고 싶다”고 AFP통신에 말했다. 사드 알하리리 전 총리도 트위터에 이번 사태는 15만명 넘는 희생자가 발생한 레바논 내전을 떠올리게 한다고 올렸다.

김윤나영·박하얀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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