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대 노총, 이념도 노선도 없으니 권위가 떨어지는 것"

박찬수 2021. 10. 15.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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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수의 직선]박찬수의 직선 - 김금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명예이사장
노동 형태 바뀌어도 착취와 억압은 존재
정보기술 시대에 노동 강도는 더 심해져
노동조합이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중요
기업별 아닌 산별 교섭으로 '격차 해소'를
한국 노동운동사에서 총파업은 단 세번뿐
현시기 민주노총의 총파업 선언은
제도개선 위한 '정치적 캠페인'에 가까워
세계 노동운동사 보면 실패가 더 많지만
그 실패가 다음 승리 위한 발판 되는 것
그래서 역사 돌아보는 게 의미 있다 생각
한국 노동운동의 산증인이랄 수 있는 김금수 선생이 7일 서울 충정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박찬수 대기자

한국 노동운동의 산증인이랄 수 있는 김금수 선생을 인터뷰하기 위해 전화를 했다. 경기 원당 댁으로 찾아뵙겠다고 했더니, 서울 충정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사무실에서 만나자고 한다. 이 연구소 명예이사장으로 요즘도 1주일에 한번 정도 사무실에 나와 책도 읽고 사람들을 만난다고 한다. 1936년생이니 올해로 만 여든다섯, 정말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는 말을 실감했다. 그러니 지난해에 <세계노동운동사>라는 대작 4, 5, 6권을 ’가뿐하게’ 출간하신 게 아닌가 싶다.

노동조합 운동에 관해 김금수 선생만큼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이는 드물다. 그는 1980년대 5공 치하에서 한국노총 민주화를 위해 싸우다 강제 해직됐고, 1995년 민주노총이 출범할 때는 지도위원으로 산파 역할을 했다. 요즘 문재인 정부와 노동계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민주노총은 10월20일 총파업을 결의해놓은 상태다. 한편으로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노동조합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이 따갑다. 어느 때보다 노동운동은 국민과 유리된 것처럼 보인다. 정보기술 발달에 따라 ’노동’에 대한 인식도 많이 달라졌다. 이런 변화들을, 십수년간 세계 노동운동의 역사를 천착해온 선생은 어떻게 보고 있을지 궁금했다.

― 민주노총이 10월20일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규모로 실행될지는 알 수 없지만, 긴장은 높습니다. 민주노총의 총파업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총파업이라고 하는 게 동일 지역, 동일 산업 노동자 전체는 아니라도 대다수 노동자가 동시에 하는 파업인데, 그리 만만한 게 아닙니다. 한국 노동운동 역사에서 몇번 없었거든요. 1929년의 원산 총파업과 미 군정 시절인 1946년 9월 총파업, 그리고 1996~97년의 노동법 개악 반대 총파업, 그 정도예요. 그러니까 한 산업, 한 지역의 대다수 노동자가 함께 파업을 벌인다는 건 쉬운 게 아니죠. 로자 룩셈부르크는 총파업을 대중 파업이라 표현했는데, 대중 파업이란 노동자 계급의 투쟁 효과를 높이려고 머리에서 짜낸 교묘한 방식이 아니다, 노동계급 대중의 운동 방식이며 혁명 과정에서 행하는 노동자 계급투쟁의 현상 형태다, 그런 말을 했어요. 총파업은 인위적 산물이 아니라 역사적인 산물이라며 그 정도로 의미를 중시했죠. 그런데 이번엔 민주노총이 ‘총파업’이라고 이름 붙여서 그렇지, 요구조건을 보면 5대 핵심 의제와 15대 요구안을 내걸었는데 그 안에 웬만한 건 다 들어 있어요. 예컨대 재난시기 해고 금지와 비정규직 철폐, 부동산 투기소득 환수, 노동기본권 보장, 주택·교육·의료·돌봄 무상 지원, 거기에 기간산업 국유화까지 들어가 있는데, 사실상 노동조합 운동이 당면하고 있는 요구조건을 다 제시한 거죠. 하루 총파업으로 이런 중대한 문제를 다 해결할 수는 없죠. 그래서 나는 (총파업이 아니라) 정책과 제도개선을 요구하는 캠페인이다, 정치적 캠페인이라고 봅니다.”

― 그런 면에서 보면, 민주노총 지도부가 ‘명실상부한 투쟁방식’을 취하는 게 아닌 거 같습니다. 이런 것이 민주노총에 대한 국민 신뢰에 영향을 주진 않을까요?

“(민주노총이) 예전부터 번번이 ‘총파업’을 얘기했으니까, 잘못하면 (국민) 불신을 살 수가 있지요. 실제로 (10월20일 총파업 당일에) 구체적인 사업장을 보면 몇 군데나 나오겠나 하는 우려가 들고, 대규모 집회를 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으로 보입니다. 민주노총도 얼마나 답답하면 이렇게까지 할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총파업이든 일반 투쟁이든 투쟁을 할 때는 그 결과로서 어떤 성과를 가져올 건지 노동운동 주체 측면에서 계산해야 하는데, 어떤 성과를 추구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 문재인 정부 들어 노-정 관계는 계속 갈등 상황입니다. 특히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구속으로 더 심해지는 모양새인데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지금은 그 대치를 풀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거 같아요. 노무현 정부 때 보니까 경제 부처들은 경제 부처들의 이해가 있죠, 노동부는 관료적 속성이 있죠, 그러니 쉽지 않았는데, 지금도 마찬가지인 거 같아요. 문재인 정부 임기도 얼마 남지 않았고, 지금은 정부는 정부대로 시대 변화에 맞는 노동정책을 펴나가고, 노동조합은 노동조합 나름대로 자기 발전을 위해서 내부를 추스르고 새로운 도전에 대한 대응을 해나가는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다만, 상황을 아주 비관적으로 볼 일은 아니에요. 산업별이나 지역별로 좀 차이가 있는데, 가령 보건의료 같은 부문은 산별 노조 차원에서 노-정 교섭을 해서 타결을 했거든요. 물론 코로나 위기 탓에 보건의료 인력이 중시되고 있는 상황이긴 하지만, 보건복지부 장관이 (노사 협약에) 서명했다는 건 놀라운 일이죠. 이게 흔한 일은 아니지만, 노-정 교섭이 타결된 건 의미 있는 일입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 노동운동에 대한 국민, 또 시민사회의 지지가 예전만 못한 듯합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에 대한 비판도 많습니다. 노동운동이 진보 세력의 구심 역할을 잘하지 못하는 거 같은데, 이렇게 된 근본 이유는 뭐라고 보십니까? 사회 변화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현상일까요?

“지금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의 사회적인 권위가 시민단체들만도 못하거든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조합원 숫자가 각각 100만명을 넘나드는데, 시민단체들 회원 숫자는 얼마나 되겠어요? 그 정도로 권위가 떨어졌단 말이죠, 정치·사회적인 권위가. 그렇게 된 데에는 노동운동이 직면한 도전들에 대처를 잘하지 못했고, 주체역량이 성숙하지 않은 두 가지 측면, 곧 주체적인 요인과 객관적인 요인이 다 있다고 봐요. 가장 큰 도전은 자본의 세계화겠죠. 이것과 맞물린 게 신자유주의와 기술 혁신이라고 할 수 있고요, 그 다음엔 팬데믹과 기후변화 같은 문제가 있는데, 이 모든 게 만만치가 않거든요. 여기에 대처를 못 하고 (노동운동이) 속절없이 당하고 있다고 봐요. 참 어려운 숙제죠.

내부적으로 정비를 하지 못하는 측면도 커요. 민주노총이든 한국노총이든 장기 전략이 없어요. 이념이 없고 노선이 없다는 얘기죠. 민주노총이 산업별로 전환을 했는데, 실제 교섭은 산별로 이뤄지지 않는 게 단적인 예죠. 또 정치 노선이 없어요. 민주노총이 (2000년에) 민주노동당을 만들 때만 해도 그게 있었는데, 지금은 잘 보이질 않죠. 정치 노선도 없고, 조직 노선도 없고, 투쟁 노선도 없고, 총 노선도 없고, 그러니까 사회적 영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거죠.”

― 그런 게 한국 노동운동만의 문제인가요? 자본의 세계화와 기술혁신은 전 지구적 차원의 문제인데, 어떻게 보면 노동운동의 퇴조는 세계적 현상일 수 있는 거 아닐까요?

“선진 공업국들하고 과거 식민지였던 나라들 사이에 차이가 있어요. 선진 공업국의 노동운동은 그동안 자리를 잡았기에 아직도 사회적 권위를 갖고 있어요. 내가 스웨덴을 방문했을 때, 안내하던 이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한 친구를 가리키며 스웨덴 금속노조 사무총장이라고 하더라고요. 이 사무총장이 텔레비전에 나와서 국민경제에 관해 얘기도 하고 그러니까 많이 알아보는 거죠. 서유럽 국가들은 역사적으로 노동자들의 희생도 많았고, 혁명도 여러번 거쳤고, 또 (노조 정치노선을 대변하는) 사회민주당이 집권하기도 했고, 그래서 스웨덴 같은 나라에선 복지국가 토대를 놓은 거니까, 그런 경험이 있으니까 그래도 (사회적 권위와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는 거라고 봐야겠죠. 반면에 이른바 개발도상국의 노동조합 운동은 다 어려움에 처해 있는 거 같아요. 아시아만 하더라도 한국만 한 데가 없고,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타이가 좀 그래도 나은데 여전히 일정 수준에 올라서지 못하고 있어요. 브라질이나 남아공 같은 나라도 어려운 건 마찬가지고요. 자본의 세계화는 끊임없이 진행되는데, 이른바 신자유주의에 따른 구조조정, 민영화엔 딱히 대책이 없는 거죠.”

― 어려운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으로 갈라진 노조 조직을 하나로 통합하는 건 어떻습니까? 불가능한 일일까요?

“외국의 노동계 인사들이 한국에 와서 자주 묻는 게 그거에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차이가 뭐냐고. 그 질문에 대답하기가 참 어려워요. 한국노총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계기로 개혁을 해야 했는데 그걸 못하니까 과거 잔재가 남아 있는 거고, 그런데 민주노총에 대해선 자꾸 한국노총 닮아가는 거 아니냐는 소리도 나옵니다. 어쨌든 (두 노총이) 공동 사업, 공동 작업을 하는 게 중요한데 지금 그런 게 없다는 게 제일 큰 문제죠. 1990년대 후반에 권영길 민주노총 위원장, 박인상 한국노총 위원장 시절엔 그래도 함께 일을 하고 대화도 나름 많이 했는데, 지금은 그렇지가 않은 거 같아요. 오히려 불신만 더 커지고…, 양쪽 모두 여유가 없는 거 같아요. 누가 제1노총이냐 따지는 건 사실 아무 의미 없어요, 지금이라도 공동 사업, 공동 투쟁할 지점을 찾는 게 중요하죠.”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 사회적 양극화 또는 소득 불평등 심화는 자본과 노동 사이 간극뿐 아니라 노동자와 노동자의 간극도 크게 벌렸습니다. 당장 코로나 상황을 보더라도 대기업과 공공기관 노동자들은 별 타격이 없고 중소기업, 비정규직, 플랫폼 노동자 등에 타격이 집중됩니다. 지금 같은 정보기술 시대에 노동자 사이의 격차 심화는 피할 수 없는 일입니까?

“과학기술 혁명도 작용하겠지만 그게 주된 원인은 아니에요. 근원적으로 따져보면, 우리나라가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정부 정책이 대기업 위주였거든요, 재벌 위주, 그러다 보니까 다른 중소기업들은 전부 하청화 됐단 말이에요, 그러면서 기업 규모별로 임금 격차가 커져 버렸어요. 거기에 신자유주의가 닥치면서 자본간 경쟁이 치열해지니까, (경영) 합리화를 계속 강도 높게 추진하는 과정에서 비정규직을 많이 쓰게 되고, 비정규직과 정규직 사이 격차도 커진 거죠. 물론 기술 혁신이 일어나면서 새로운 직종의 노동자들이 생기는 측면도 있어요, 플랫폼 노동자들이라든지, 자영업자인지 노동자인지 노동자성이 논란이 되는 특수고용노동자와 같은 직종이 생겨나고 있죠. 이게 객관적인 조건이라면, 주체적인 조건으로는 기업별 노동조합이 (임금·단체) 교섭을 하는 체계가 있는 거죠. 대기업들은 많이 벌었으니까 그 노동자들도 성과급을 많이 받죠, 1년 성과급 받는 게 다른 중소기업 노동자 1년 임금 인상분과 맞먹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산업별 노조 체계인데도 기업별 교섭이 계속 유지되고 있으니까 임금 격차를 줄이지 못하죠. 산업별 교섭 체계와 산업별 협약의 효력 확장, 이런 게 되지 않으면 (격차 해소가) 상당히 어려워요. 산업별 (노조) 차원에서 중소기업, 비정규직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뤄야지, 기업별로 (교섭) 해서는 기득권을 허물 수가 없습니다. 이런 노동시장의 분절화가 노동운동 내부에 분열로 나타나는 겁니다. (대기업이나 공기업) 정규직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경우가 실제로 있잖아요.”

― 그러면 예전에 노동 현장에서 많이 외쳤던 상징적인 슬로건, 예를 들면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이런 구호는 지금 시대엔 내세울 수 없게 된 걸까요?

“글쎄, 지금 우리나라도 네이버 같은 데서 노동조합을 만들었잖아요. 노동자라는 게 자기 노동력을 팔아서 그 대가인 임금으로 먹고사는 건데, 노동 형태와 노동 양태가 어떻게 바뀌든 착취와 억압은 존재하는 겁니다. 업종 이 바뀌고 노동 형태가 바뀌고 고용 형태가 바뀐다 하더라도, 노동조합이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아무리 정보기술(IT) 시대라고 해도 노동자들이 고통을 받지 않는 건 아니니까요. 어떻게 보면 노동 강도는 더 심해질 수가 있거든요.”

― 대규모 공장에 기반한 전통적인 산업노동보다 문화나 정보기술, 유통의 규모가 훨씬 크고 사회적 관심도 많은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 ‘노동의 의미’라는 건 어떤 걸까요? 과거와는 노동의 의미가 달라졌다고 보십니까?

“노동 양태가 변할 뿐이죠, 노동력을 판매해서 임금으로 먹고산다는 노동자의 근본적인 처지는 동일해요. 다만 노동의 조건은 달라져야 할 부분이 많겠죠. 가령 요즘 젊은 사람들은 연공서열에 따른 급여체계를 싫어하잖아요, 기계도 잘 못 맞추는 나이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보다 임금을 많이 받는다고 불공정하다 말하는데, 그런 임금 체계(연공급)를 직무급으로 바꿔야죠. 똑같은 직무는 똑같은 임금을 주는 거죠. 중소기업이든 대기업이든 똑같이 용접을 하면 비슷한 급여를 받도록 하고, 정규직이나 비정규직도 그렇게 하고요. 그러려면 영국이나 프랑스처럼 산업별 노동조합 교섭을 해야 해요. 산별 교섭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전통적 의미에서 노동조합 운동은 기업별 노조가 아니고 산별 노조 운동이죠.”

김금수 선생이 지난해 완간한 <세계노동운동사>. 2013년 1~3권을 펴낸 데 이어 7년만인 2020년,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1970년대까지를 다룬 4~6권을 출간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 지난해에 세계노동운동사 4, 5, 6권을 출간하셨습니다. 2013년 1~3권 출간에 이어 7년 만의 후속편 출간입니다. 첫 권 집필을 시작하신 때부터 세면 17년의 대장정을 마친 셈인데요, 이렇게 오랫동안 세계노동운동사 집필에 매달리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처음부터 의도했던 건 아니고, 나이가 들면 아무래도 역사 쪽에 관심이 쏠리는 거 같아요. (2000년대 초에) 노동교육원에서 <노동교육>이란 계간지를 냈는데 그때 세계의 10대 노동 인물을 한번 연재하면 어떻겠냐 제안을 해왔어요. 그런데 차티스트 운동(1838~48년 영국에서 노동자 계급을 중심으로 벌어진 참정권 운동)이나 파리코뮨(1871년 노동자를 주축으로 파리 시민들이 세운 혁명적 자치정부. 두 달 만에 보수파 정부군에 유혈 진압됐고 이 과정에서 3만명이 숨진 거로 알려져 있다)이나 철저한 대중 운동이라 (중심) 인물이 없어요. 그래서 옛 소련에서 출간한 책 등을 참고자료로 해서 세계노동운동사를 쓰게 됐지요. 저 혼자 쓴 게 아니라, 학습 모임을 만들어서 발제하고 토론하고 세미나 하는 식으로 해서 나온 결과물입니다.”

― 2013년에 나온 1~3권은 자본주의 태동기부터 2차 세계대전까지를 다뤘고, 지난해 출간한 4~6권은 그 이후부터 1970년대까지 세계 노동운동을 다루고 있습니다. 한국의 민주노조 운동은 1980년대 이후에 본격화했는데, 앞으로 1980년 이후 노동운동사도 쓰실 생각인가요?

“나는 늙어서…, 이제 다른 사람이 해야지요.(웃음) 지금은 민주노조 운동을 얘기하는 사람도 별로 없어요. 한국의 민주노조 운동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본격화해서 97년 총파업 투쟁이 정점이었지요. 그 성과를 이어받아 민주노동당을 창당한 건데, 이게 내부 분파로 인해 완전히 깨져버렸어요. 안타깝죠. 서유럽을 보면 영국은 노동당하고 노조총연맹하고 굉장히 밀접한 관계예요, 스웨덴은 노총이 두 개인데 공무원·관리직 노조(TCO)는 정당과 관계없지만 또다른 생산직 노조(LO)는 사민당을 통해서 정책을 반영하죠. 독일만 하더라도 노조와 사민당의 관계가 그렇게 소원한 거 같지 않아요.”

― 역사는 과거를 들여다보는 일입니다. 요즘처럼 모든 게 너무 빨리 변해 따라가기도 바쁜 시대에, 과거를 돌아보는 건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프랑스 혁명가들이 묻힌 묘지 앞에 이런 글귀가 쓰여 있대요, ‘죽은 자가 산 자를 일깨운다.’ 역사가 지금 살아있는 우리를 일깨우는 게 아닐까 싶어요. 세계 노동운동 역사를 돌아보면, 본격적인 투쟁은 1800년대부터 시작되는데, 실패 사례가 더 많고 그 실패가 다음 승리를 위한 발판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역사가 현재를 만든다고 할 수 있어요. 지금 상황이 어렵더라도 노동조합 운동의 원리나 원칙 이런 것이 결국은 역사적인 결과물이니까, 거기서 답을 쉽게 찾기보다는 끊임없이 물음을 제기해서 토론하고 고민하고 학습하고 그러다 보면 뭔가 앞길이 보이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해요. 역사의 교훈을 찾자는 게 아니라, 어떤 질문을 던지고 고민하는 단초로서 역사가 의미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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