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공군 비행단이 정부 인증 가족친화기업이라고요?

임재우 입력 2021. 10. 15. 05:06 수정 2021. 10. 15.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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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부, 인증 부여한 4340곳 중
부사관 사망 공군 전투비행단부터
성차별 면접 동아제약 등 논란 기업
금리우대, 공공사업 가점 등 혜택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사내 성폭력이나 채용 성차별로 논란이 되었던 기업과 기관 등에도 여성가족부가 ‘가족친화인증’을 부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직장 성평등, 일·가정 양립 등을 모범적으로 이행하는 기업·공공기관은 정부로부터 ‘가족친화인증제’를 통해 정부·지자체 사업 선정시 가점 등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받는다.

<한겨레>가 14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여성가족부로부터 제출받은 4340개의 가족친화인증 기업 목록을 분석한 결과, 성폭력·성차별로 논란이 되었던 기업·공공기관·군부대 등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부사관 성추행 사망 사건으로 사회적 공분을 샀던 공군 20전투비행단은 지난해 새로 가족친화인증을 받아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사내 성폭력 사건의 부적절한 처리로 문제가 됐던 가구업체 한샘 역시 지난해부터 가족친화기업으로 이름을 올렸다. 채용 성차별로 도마 위에 올랐던 동아제약·국민은행·하나은행 등도 가족친화기업 자격을 유지하고 있다.

가족친화인증제는 가족친화적이고 성평등한 직장환경을 위한 제도가 잘 정착된 기업을 격려한다는 취지로 지난 2008년 도입됐다. 인증 기업은 은행 대출에서 금리를 우대받고, 지자체가 진행하는 각종 사업자 선정 때 가점을 받는 등 220여개의 인센티브를 제공받는다. 인증 기업들은 가족친화인증 사실을 홍보에 활용하기도 한다. 이미지를 제고하며 우수 여성인력을 고용하는 데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여가부 고시인 ‘가족친화기업 등 인증기준’은 근로기준법, 남녀고용평등법, 성폭력방지법 등의 ‘가족친화 관련 법규 요구사항’ 준수 여부를 인증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심사항목 중 ‘최고경영층의 관심 및 의지’는 “(기업의) 사회적 물의 야기 여부”도 확인하도록 하고 있다. 한국경영인증원이 위탁 심사한다. 여가부 장관은 이미 인증을 받은 기업이어도 기준 미달한 것을 확인하면 인증을 취소할 수 있다.

문제는 기업의 가족친화 관련 법 위반 여부를 확인하는 기준이 허술하고, 인증 뒤 재인증 전까지 사후관리도 거의 없다는 점이다. 최근 가족친화인증제에 대한 감사를 진행한 감사원은 여가부 고시의 인증기준이 “법률명만 열거하고 있을 뿐 법률 중 어떤 조항이 해당하는지 세부기준을 마련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겨레>가 권인숙 의원실과 2019, 2020년 ‘적극적 고용개선조치’ 부진 사업장으로 공표된 기업·기관 102개를 확인한 결과, 이 가운데 10개의 사업장이 가족친화인증 기업 목록에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 역시 가족친화 제도와 관련된 근로기준법을 위반해 검찰에 송치되거나 과태료를 부과받은 109개의 기업이 가족친화 인증 기업에 포함되어 있었다고 밝혔다. 인증 기간(2∼3년) 기간 내 사후관리도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 3년(2018∼2020년)간 채용 성차별과 강제추행 등 남녀고용평등법·성폭력방지법 위반으로 인증이 취소된 기업은 5건에 그쳤다.

평가 심사를 위한 점수 부여 방식도 주먹구구식이란 지적이 나온다. 가족친화인증 신청 기업은 가족친화법과 시행령에 규정된 인증기준에 따라 9개(중소기업) 또는 13개(대기업)의 심사항목에 따라 평가받아야 한다. 문제는 100점 만점의 평가항목 중 40점을 차지하는 심사항목에서 ‘해당없음(N/A)’ 처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해당없음’ 처리할 수 있는 항목은 근로자의 육아휴직 이용률이나 출산 전·후 휴가 후 고용유지율 등이 포함된다. 즉, 신청 기업에 육아휴직자처럼 해당 제도를 이용한 직원이 없으면 이 항목에 다른 항목 점수를 그대로 환산해 부여한다. ‘해당없음’이 아닌 항목에서 만점을 받으면, 해당없음 항목에도 만점을 부여하는 식이라, 가족친화제도 중 일부만 운영되더라도 높은 점수를 얻게 된다. 감사원이 인증 신청한 기업 4856개의 심사내용을 확인한 결과, ‘해당 없음’ 항목이 5∼6개에 이르는 기업이 1265개(39.4%)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도 취지가 훼손되지 않게끔 여가부가 인증기준을 재정비하고, 인증 뒤 문제가 드러난 기업의 사후관리를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인숙 의원은 “가족친화기업 인증이 성차별 기업의 이미지 세탁 도구로 활용되어서는 안 된다. 여성가족부가 인증제도 운용을 위탁 기관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인증된 사업장이 실질적인 가족친화기업이 될 수 있도록 유관기관과 사후 점검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가부 관계자는 “인증제가 그 나름대로 가족친화제도 발전에 도움이 되었으나 그 기준을 정비해야 될 시점이 된 것 같다”며 “그동안 인증기준을 모성보호 조항 중심으로 운영해왔으나, 앞으로 기준을 확대하고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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