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군 부실급식의 주범은 따로 있다

한겨레 2021. 10. 15.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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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김종대 ㅣ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요즘 육군 1사단에는 활기가 넘친다. 지난 9월 군 급식의 식자재 조달체계 개선을 위한 시범사업 부대로 지정되고 난 다음부터다.

예전에는 축협·수협이 지정한 단체와 수의계약을 맺고 일정 기간에 쓸 식재료를 선구매했다. 식단을 먼저 짠 뒤 선호하는 식재료를 구매한 게 아니라, 납품되는 식재료에 맞춰 식단을 마련했다. 돼지고기의 경우 마리 단위로 구입하여 그때그때 남는 부위로 국을 끓이다 보니, 비계가 둥둥 떠다니기도 해 국을 본 장병들이 내다 버릴 때가 많았다. 고등어, 꽁치 등 비린내 나는 생선도 신선도 유지가 쉽지 않아 심심찮게 폐기했다. 보훈단체에서 납품된 자장·카레소스도 버려지고 고추장, 된장도 도대체 먹질 않으니 재고가 쌓였다. 전부 수의계약으로 조달된 재료들이었다. 전군에서 이렇게 남는 음식을 처리하는 비용이 연간 300억원, 못 먹게 된 식재료 구입비까지 포함하면 1천억원을 훌쩍 넘는 것으로 국방부는 추산한다. 하루에 3억원이 증발한다는 이야기다.

그런 1사단이 식단을 먼저 짜고, 식재료는 입찰 공고를 통해 경쟁으로 조달했다. 그 결과 세가지가 달라졌다. 첫째, 맛이 좋아졌다. 식단이 창의적으로 바뀌니까 버려지는 음식이 사라졌다. 둘째, 병사들이 사적으로 지출하는 간식비가 줄었다. 최근 국방부가 전군 18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병사 1인당 월 15만원을 간식비로 지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간식비가 주는 만큼 저축과 자기계발 기회는 늘어난다. 셋째, 달걀은 날것이 아니라 먹기 좋게 부쳐지고 채소는 손질되어 납품되니, 취사병들이 하루 평균 11시간의 중노동에서 해방되었다. 일과 중에도 식단 개발과 요리법 습득에 1시간 정도를 쓸 여유가 생겨 사회에 나가서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배운다는 보람도 있다. 이게 바로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거다.

올봄에 군 부실급식 문제로 국방부 장관이 대국민 사과까지 하고 취사병을 2천명 늘리는 등 별의별 조치를 다 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병사 수가 모자라는 판에 우리 군이 언제까지 솥단지 걸고 밥하는 군대가 되어야 하느냐는 자조가 터져 나왔다. 그런데 1사단은 하루 1만500원이라는 병사의 급식비로 문제를 해결했다. 지난 50년 동안 농협·축협·수협이 관리하는 97개 군납 조합이 독과점으로 장악해온 군 급식 조달체계에 시장경제의 원리를 적용하자 찾아온 변화다.

군이 더 이상 수의계약을 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퍼지자 기득권자들은 당장 발끈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국방부 차관을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시키겠다고 협박했다. 기득권자들은 1사단이 대기업 제품과 수입 농산물을 장병들에게 먹였다며 마치 범죄를 저지른 것처럼 몰아붙였다. 견디다 못한 국방부와 병영문화 개선 민관군 합동위원회는 수입 농산물은 배제하고, 전면적인 경쟁은 유보하는 것으로 한발 물러섰다.

그동안 국산품을 먹인다, 중소기업을 보호한다, 지역 농산물을 살린다 등의 명분으로 포장하여 특정 조합에 장기간 특혜를 주었던 관행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정작 군의 식자재 수의계약 관행은 대다수 농어민을 위한 제도도 아니고 오직 50년 동안 특정 단체만을 위한 특혜였다. 이런 잘못된 관행은 지금 식자재뿐만 아니라 피복류 조달 과정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장병의 인권과 복지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이런 제도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 경쟁 입찰로 운영되고, 지방자치단체가 공공성을 높인 학교 급식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군의 특이한 폐습이다.

막대한 낭비를 유발한 잘못된 제도의 수명을 연장하는 것도 정치권이 할 일은 아니다. 문제의 핵심을 외면하고 군 급식이 부실하다며 국방부를 두들겨 패는 국회의 이중적 행태도 반성해야 한다. 우리가 대기업을 견제하는 것은 납품 단가 후려치기, 기술 탈취, 갑질과 담합 등을 막자는 취지이지, 특정 중소기업과 이익단체에 특혜를 몰아주자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 1사단 장병들에게 올해 12월까지의 시범사업 기간이 종료되면 과거로 되돌아갈지 모른다는 아득한 절망감을 강요해서야 되겠는가. 국방부는 애초 결심한 대로 경쟁의 원리에 바탕을 둔 공정한 급식체계로 우직하게 나가야 할 것이다. 개혁의 기회는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여기서 머뭇거리면 앞으로 또 10년을 우리 장병들은 버릴 음식을 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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