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퀸' 비결은 '논어'
양효진(32)은 지난 8월 도쿄 올림픽을 끝으로 태극마크와 작별했다. 열아홉이던 2008년 처음 국가대표로 뽑히자 “휴가보다 태극마크가 좋다”고 기뻐하던 소녀는 14년간 대표팀 개근 센터로 세 차례 올림픽(2012 런던·2016 리우·2020 도쿄)을 뛰며 한국 여자 배구의 중흥기를 이끌었다.
◇아듀, 태극마크
양효진은 세르비아와의 동메달 결정전이 끝나고 라커룸에서 울었다고 했다. “메달을 꼭 따고 싶었어요. 똘똘 뭉쳐서 4강까지 오르고 나니 2012년 런던의 아픔을 씻을 다시 없을 기회를 잡았다 싶었거든요. 결국 4등을 했는데, 세계의 벽을 끝내 못 넘은 느낌이라 눈물이 쏟아졌어요.”
도쿄까지 가는 길은 험난했다. “올림픽 한 달 앞두고 이탈리아에서 발리볼 네이션스 리그(VNL)를 뛸 때 정말 힘들었어요. V리그 종료 직후라 선수들이 지쳐있는데,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님이 다그쳐서 한 달 중에 하루 쉬고 훈련과 경기만 반복했어요. 패배가 거듭되니까(한국은 VNL 16국 중 15위) 분위기는 가라앉고, 감독님은 비디오와 분석지를 보여주며 ‘왜 못하느냐’며 귀 따갑게 혼내고... 그래도 그렇게 잔소리하려고 코치진은 밤새 시뻘건 눈으로 경기 데이터 들여다보는 걸 아니까 ‘나도 열심히 해야지’ 마음을 다잡았어요.” 양효진은 “감독님 지시는 블로킹 손 모양부터 점프 타이밍 등 모든 게 세밀한데 저도 매 경기 분석지를 달달 외우며 따라가려고 애쓰다 보니 배구 눈이 훨씬 트였다”라고 했다.
14년간 정든 태극마크는 미련 없이 내려놨다. “오래 전부터 ‘도쿄에서 모든 걸 불태우고 끝내자’고 결심했습니다. 올림픽을 기점으로 세대 교체를 해야 하는데, 한국도 2024 파리 올림픽을 위해선 지금부터 준비해야하거든요. (김)연경 언니와 함께 도쿄까지 모든 힘을 쏟아부었기 때문에 후련합니다. 후배들이 앞으로 잘해줄거라 믿어요.”
◇논어로 수련한 블로퀸
‘블로퀸’ 양효진은 전설의 길을 걷는다. V리그 남녀부 최초 개인 통산 1200블로킹(1269개)을 돌파했고, 여자부 통산 득점 1위(6003점)에 올라있다. 2007년 현대건설 입단 후 15년째 한결같이 운동한 결과다. 술·담배는 안 하고 커피도 2년 전 마시기 시작했다. 매일 오후 10시면 침대에 누워 숙면한다. 그의 일탈은 빵이다. “밀가루도 몸에 안 좋으니까 일주일에 한번만 빵을 먹기로 했어요. 아침마다 빵 먹고 싶지만 눈 질끈 감고 과일을 먹어요.” 그는 “기록은 연연 안 하고, 몸이 안 아플 때까지 선수로 뛰고 싶다”고 했다. 지난 4월 결혼했는데 “엄마가 된다면 아이가 눈에 밟혀 못 뛸 것 같다”고 웃었다.
스트레스는 독서로 푼다. “고상한 척 오해 살까 봐 말하기 싫다”고 했지만, 철학책 읽는 것을 즐긴다고 했다. 가장 좋아하는 책은 논어(論語)다. 논어로 마음을 다스리며 프로 생활을 견뎠다. “신인 때 숙소에 TV가 없었거든요. 군대처럼 엄한 규율 속에서 지내며 책이 유일한 탈출구였는데 ‘남의 허물을 말하기 전에 내 허물부터 보라’ 같은 논어의 문장들이 힘이 됐어요.” 그는 요즘도 스마트폰으로 게임 대신 e북 독서를 즐기고, 영어 단어를 외우며 행복해한다.
지난 시즌 V리그 최하위였던 현대건설은 8월 KOVO컵 우승으로 2021~2022시즌 V리그 예열을 마쳤다. 16일 정규 리그 개막을 맞는 양효진은 올 시즌 목표로 부상없이 시즌을 완주하는 것과 후배들과 합심해 ‘무서운 팀’이 되는 것을 꼽았다. “강성형 감독님과 선수들 호흡이 잘 맞아서 훈련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다. 저희 팀이 얼마나 끈끈한지 팬들께 성적으로 증명하고 싶어요.”
훈련 시간이 됐다며 일어서는 양효진에게 요즘 읽는 논어 구절을 물어봤다. 그는 쑥스러운 얼굴로 답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노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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