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30] 가짜 청년

정상혁 기자 2021. 10. 1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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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은 정체가 모호한 상징 자본이다. 나이나 혼인 여부 같은 명확한 분계선이 없음에도, 왠지 모를 촉망되는 미래를 암시해 후한 인심을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청년은 근본이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다. “청년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고 외쳤던 독립운동가 이상재(1850~1927) 선생도 처음 듣고는 그 뜻을 몰라 어리둥절했다는 설이 있다. 당시만 해도 소년은 성인이 되는 즉시 집안을 건사할 장년으로 직행한 탓이다. 고로 청년은 시대 변화로 야기된 일종의 책임 유예를 의미할 것이다. 일시적이나마 ‘까임 방지권’으로 간주되는 이유다.

청년을 앞세운 노쇠한 정신이 그러나 청년을 좀먹고 있다. 청년이라는 무구(無垢)한 도전의 이미지를 팔아 편히 배 불리려는 장사꾼이 활개치는 까닭이다. 번화가만 나가면 ‘청년○○’ 부류의 상호를 내건 식당이 자주 눈에 띈다. 웬만하면 가지 않는다. 전부는 아니겠으나, 비싸고 부실한 메뉴를 그들의 증명할 수 없는 열정에 대한 응원으로 정당화하는 경우가 태반이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관련 인터넷 게시 글에서 “청년=어린 사기꾼”이라는 댓글을 봤다. “청년·열정·감성=믿고 거르는 삼대장”이라는 댓글도 있었다. 작금의 민심을 보여준다.

‘가짜 청년’의 폐해는 ‘가짜 총각’ ‘가짜 수산업자’만큼이나 심각하다. 청년 신분이 수준 미달을 가능성으로 위장하는 위선적 수단에 불과하다는 의혹을 확산시키기 때문이다. 정치권만 봐도 ‘청년○○’ 부류의 직함이 여럿이다. 청년 대변인 자격으로 야당을 향해 “청년 인재 영입에서 보여준 공정성 문제”를 비판했던 어린 여대생은 2년 뒤 이렇다 할 경력과 자아 비판도 없이 1급 공무원인 청와대 청년비서관에 임명됐고, 야당 대표의 “막말”을 지적하던 여당 청년 대변인은 지난달 상대 진영 지지자에게 전화로 쌍욕을 퍼부은 사실이 들통나 사과문을 올렸다. 이들의 계급장에 ‘청년’이 붙은 이유를 정확히 알 길 없으니, 아직 미숙한 인간이라는 자기 고백이겠거니 짐작할 뿐이다.

청년은 위태로워지고 있다. 지난달 한 20대 청년이 인천의 한 아파트 외부 유리창을 청소하다 떨어져 숨졌다. 서울 구로구 아파트에서, 공덕역 환기구 공사 현장에서, 경기도 이천 물류 창고에서도 20대 청년이 잇따라 추락해 사망했다. 올해 상반기에만 산업재해로 사망한 20~30대 청년이 100명이 넘는다. 안전한 곳에 앉아 세 치 혀로 청년을 들먹이는 대신, 이들은 실제 위험한 높이로 향했다. 목숨을 걸고 묵묵히 일했다. 그러다 밧줄이 끊어졌다. 이들의 실패는 용인되지 않았고, 재도전과 각광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현대는 조선 청년에게 행운을 주는 득의(得意)의 시대”라고 만해 한용운은 1929년 조선일보에 썼다. “조선 청년의 주위는 역경인 까닭이다.” 파이팅을 당부하는 비극적 역설이었다. 100년 전인데 청년을 둘러싼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도 다만 만해의 마지막 당부를 반복할 수 있을 따름이다. “청년은 자애(自愛)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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