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권의 묵묵] 고문의 추억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2021. 10. 15.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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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함께 살 수 없다는 처분 내렸기에
그들의 보호시설 구금을 용인하고
우리는 그곳의 폭력에 눈감는다
그곳이 아우슈비츠 닮아갈수록
우리도 나치를 닮아가고 있다

그의 몸은 뒤로 꺾여 있었다. 수갑을 채운 손목을 등으로 돌려 발목과 함께 묶었기 때문이다. 머리에는 공포 영화에서나 볼 법한 기이한 장구가 뒤집어씌워져 있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몸을 꼼지락거리거나 흔들의자처럼 몇 차례 흔들어보는 것뿐이었다. 어떤 날은 20분이었지만 어떤 날은 세 시간이었고 어떤 날은 네 시간을 넘기기도 했다. 시설물이라고는 변기 하나가 고작인 독방에서 한 인간이 그렇게 고문을 당했다.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올해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서 일어난 일이다. 사진과 짧은 영상을 보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말문이 막혀서가 아니라 애초에 이런 걸 정당화할 수 있는 말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고문을 정당화한답시고 관리자들이 내놓은 말들은 고문만큼이나 끔찍했다. 이들에 따르면 이것은 고문이 아니라 보호였다. 이곳은 외국인보호소이고, 그는 보호외국인이며, 머리에 뒤집어씌운 것은 보호장구이고, 그에게 특별한 보호조치가 취해진 것은 난동을 부리며 자해행동을 했기 때문이란다. 말하자면 폭력으로부터, 무엇보다 스스로를 해치는 폭력으로부터 그를 지키기 위한 조치였다는 것이다.

변호사의 전언에 따르면 출입국본부의 한 간부는 이런 영상이 나가봐야 국민들이 공감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법무부가 편집한 해명 영상을 본 사람들은 그 간부의 말처럼 반응했다. 많은 이들이 난동을 부리는 피해자를 비난했고 가해자인 보호소를 두둔했다. 어쩌면 국민으로서는 어려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옷을 벗고 의자를 집어던지며 공무원과 몸싸움을 벌이는 외국인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인간으로서, 생명체로서는 어떤가. 보호라는 명목으로 구금된 인간, 자유를 찾아 온 나라에서 난민 자격을 신청한 인간이 “동물원의 동물처럼 케이지에 갇혀” 학대받을 때, 무엇보다 아픈 몸에 대한 치료를 거부당했을 때, 저 행동을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것은 손발이 묶인 채 몸이 뒤로 꺾인 생명체가 몸을 빼려고 발버둥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난동을 부렸다.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겪은 부당한 폭력에 대항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두 병의 샴푸를 마시고서야”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노라고도 했다. 과연 누구를 이해하기가 어려운가. 아픔을 호소하며 두 병의 샴푸를 마신 사람인가, 두 병의 샴푸를 마신 것을 보고서야 반응을 보이는 사람인가.

10년 전 나는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한 장애인이 자신이 수용되었던 시설을 말하면서 샴푸 이야기를 했다. 그곳 생활교사들은 관리 인력이 부족할 때는 발달장애아들에게 곧잘 ‘CP’라는 약을 먹였다고 했다. 아이들이 욕실에서 비누를 먹거나 샴푸를 마셨기 때문이다. 약을 먹이고 나면 아이들은 사고를 치지 않았고 자해행동도 하지 않았다. “하루 종일, 때로는 이틀이고 사흘이고 깨어나지 못하고 잠만 잤죠.” 이런 시설들을 조사할 때면 항상 수용자들에게 묻는 문항이 있다. 구타를 당한 적이 있는지, 몸을 결박당한 적이 있는지, 독방에 감금된 적이 있는지.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고 앞으로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곁에는 이런 인간수용시설들이 있다. 이름은 보호시설인데 실상은 구금시설이다. 이 구금에는 영장도, 재판도, 형기도 없다. 여기 갇힌 사람들은 범죄를 저지른 게 아니라 사회에서 함께 살 자격을 부인당한 사람들이다. 누군가는 권리상 그렇고 누군가는 사실상 그렇다. 이러한 처분이 가능한 것은 우리 안에 그것을 떠받치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장애인은 짐’이라거나 ‘이방인은 적’이라는 인식이 그것이다. 국민에게 부담을 지우고 해를 끼치는 존재들. 그래서 사람들은 이들의 시설 구금을 용인하고 여기서 자행된 폭력에 눈을 감는다. 함께 살 수 없다는 처분을 내렸기에 그렇게 처분된 이들이 머무는 곳이 짐짝보관소가 되었는지 포로수용소가 되었는지는 관심 밖인 것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곳이 아우슈비츠를 닮아갈수록 우리도 나치를 닮아간다는 사실이다.

이번 고문사건의 가해자인 화성외국인보호소의 홈페이지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한국을 떠나기 직전 좋은 추억과 이미지를 간직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 고문사건의 피해자는 여기에 화답하듯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게 있었던 모든 일을 하나도 잊지 않았습니다. … 화성보호소에서 나를 고문했던 사람의 얼굴과 모든 것을 기억합니다.”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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