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그늘] 상경
[경향신문]
올해는 코로나19에 잔병치레까지 하느라 서울 나들이가 힘들었다. 모처럼 기차를 타고 가는데 들녘의 벼가 노란빛을 띠기 시작했다. 밭에 들깨 말리는 모습이 지나가고, 잡초가 무성한 빈집의 마당도 보였다. 서울로 가까이 갈수록 벼는 더 노란빛을 띠었다. 북쪽으로 갈수록 벼가 더 누렇다는 것은 추위를 대비해서 제 스스로가 서두르는 것이리라.
용산역에 내려서 전철을 탈까 하다가 택시를 탔다. “어디서 올라오세요?” 늙수레한 운전기사가 말을 걸어왔다. 지역에서 갓 올라왔다 해서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있겠는가. 또 세상 돌아가는 일이 뭐 좋은 게 있다고 생면부지의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싶겠는가. 기사는 부동산 이야기부터 했다. “세상에 10억이 뉘 집 개 이름이랍디까? 그냥 집값이 올랐다 하면 10억이에요. 그게 말이 되나요?” 대꾸가 없자 백미러로 나를 주시했다. 나는 무겁게 내려앉아 보이는 창밖의 상가들을 바라보았다. “안 그래요?” 기사가 나에게 대답을 요구했다. ‘그만하세요’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네” 하고 대꾸를 했다. “평창동에서는 보물을 마당에다 숨겨두고 영감이 죽었는데 마누라가 포클레인으로 온 마당을 다 파서 찾았대요.” 서울역쯤 왔을 때 기사는 “아차, 미터기 꺾는 것을 깜박했네” 하기까지 하는 것이다. 잠시 말을 그치는가 싶더니 기사는 또 말을 이어갔다. 경복궁 쪽으로 꺾자 이제는 ‘대통령 걱정’을 한다. 차를 세우자 미터기에 6400원이 찍혔다. 나는 1만원을 건네주었다. ‘남 걱정 마시고 자기 일 잘하시죠.’ 마음속으로 전한 말이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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