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세상] 종이팩, 그 망할 놈의 친환경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2021. 10. 15.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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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망할 놈의 친환경을 할 바에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낫다. 최근 스타벅스는 50주년을 맞아 재사용 컵을 공짜로 주는 친환경 행사를 열었다. 행사 당일 스타벅스에는 대기 음료 650잔, 대기 인원 7633명이 몰려들었다. 음료를 시킬 때마다 나오는 컵을 받기 위해 주문이 밀려들었고, 매장 주변에는 채 마시지 못한 음료와 일회용 컵들이 버려졌다. 그 와중에 환경주의자보다 더 분노한 사람들이 바로 내부자들이었다. 스타벅스 매니저들은 선거 유세차량처럼 스타벅스를 비판하는 트럭을 운행했다. ‘친환경’ 컵을 나눠주는 행사 며칠 전만 해도 스타벅스는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이유로 개인이 들고 온 친환경 컵 사용을 거절해왔다.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요즘 기업들은 너나없이 환경, 사회, 지배구조의 책임을 강조하는 ESG 경영을 도입한다. 한마디로 지구와 사회를 이롭게 하는 경영을 하겠다는 선언이다. 하지만 재활용 굿즈와 예쁜 재사용 컵을 뿌리고 비닐봉지 대신 종이 쇼핑백을 사용하면 친환경인가? 나는 돼먹지 못한 친환경 캠페인이 잘나가는 꼴에 배알이 꼴렸고, 잔여백신 대기 줄보다 더 긴 스타벅스 대기 줄에 인류애가 사위어갔다. 이처럼 친환경을 빌미로 환경을 망치는 행위를 녹색으로 세탁한다는 의미의 ‘그린워싱’ 혹은 ‘위장 환경주의’라고 한다.

또 다른 그린워싱 사례로 종이팩이 있다. 나무가 더디게 자라는 국내의 경우 해외 목재를 수입해 종이를 만든다. 목재를 가공하는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물이 사용되고 염소 표백 과정에서 환경이 오염된다. 하지만 요즘엔 종이만 두르면 죄다 친환경이 된다. 비닐봉지는 1960년대 말 종이봉투로 잘려나가는 나무를 구하기 위해 스웨덴에서 발명되었다. 사실 궁극의 친환경은 플라스틱이냐 종이냐의 소재 문제가 아니라 꼬질꼬질해질 때까지 얼마나 오래 사용하는지 여부도 중요하다. 더 이상 제품을 사용할 수 없을 때 재활용이 잘되거나 스르륵 분해되어 사라지면 된다. 종이류가 친환경 대접을 받는 이유는 쉽게 분해되고 재활용이 잘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이팩류는 종이에 대한 우리의 기대를 저버린다. 음료를 담는 종이팩은 위생 때문에 재활용 원료가 아닌 새 천연펄프만을 사용한다. 종이팩류는 분리배출 대상인 종이, 금속캔, 플라스틱, 스티로폼 중 재활용률이 가장 낮다. 즉 새 원료로 만들어 한번 쓰고 버린다. 근 20년간 종이팩류는 재활용이 까다로운 플라스틱보다 재활용이 안 됐다. 작년 종이팩 재활용률은 19%다. 이 수치는 학교와 군대 등 단체 급식의 종이팩만 재활용되고 일반 종이팩은 하릴없이 버려졌다는 증거다. 종이팩의 한 종류인 멸균팩 재활용 시설의 경우 한 시간에 1500㎏의 재료가 필요한데, 멸균팩이 부족해 해외에서 수입하거나 공장 문을 닫아야 한단다.

우리가 분리배출한 그 많은 종이팩들은 다 어디 갔을까. 일부 지자체는 주민센터에서 종이팩을 수거하지만 정작 지자체의 재활용 선별장에서는 종이팩을 따로 수거하지 않는 곳이 많다. 환경부는 종이팩과 종이를 분리하라지만 정작 종이팩 전용 분리배출함을 설치하거나 선별장의 종이팩 수거 의무화를 시행하지 않는다. 관련 기업은 종이팩 재활용률이 낮아서 오히려 재활용 의무 분담금을 적게 낸다. 망할 놈의 친환경에 정신줄 놓지 말고 진짜 친환경을 가져와야 한다.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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