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창] 내가 일본 제품을 구입하지 않는 이유
[경향신문]
2년 전쯤부터 나는 일본 제품을 일절 구입하지 않고 있다. 대다수 한국 국민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즈음에 있은 일본의 수출 규제가 부당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수출 규제 이전엔 일제를 종종 구입하고 애용했다. 유니클로 바지에 티셔츠, 아식스 운동화를 즐겨 신었다. 시계마저 몇 년 전 구입한 세이코 다이버 워치를 착용할 때면 몸에 걸친 모든 것이 일본 브랜드일 때도 있었다. 그러던 내게 ‘아베 내각’의 수출 규제는 ‘탈일제’의 각성제가 됐다.
일본이 문제 삼은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아미드 세 가지는 삼성과 SK, LG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패널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소재다. 일본이 한국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주요 기업의 숨통을 끊겠다고 작정한 마당에 일제 구입은 정신 빠진 짓이라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일제(제국주의) 강점기를 벗어난 뒤에도 또 다른 ‘일제(일본 제품) 강점기’에 갇혀 있었다. 1970~1990년대 일본의 산업 기술력은 징그러울 정도로 강했다. 어릴 적, 우리 집이나 친구 집에는 코끼리 밥솥, 내쇼날 헤어드라이기, 소니 워크맨, 캐논 카메라 같은 일제 공산품이 한두 개씩은 꼭 있었다. 당시 아이와란 브랜드의 대형 카세트레코더가 우리 집에 들어왔는데, 음질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비틀스 3집 앨범의 4번째 수록곡을 찾아서 첫 부분부터 들려주는 ‘오토 뮤직 서치’라는 기능도 있었다. ‘사람이 어떻게 이런 걸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였다.
어른들이 내뱉는 ‘일제는 똥도 좋다’는 말에 자존심이 상했지만, 국산을 사용하고 싶어도 마땅한 대체품이 없었다. 제조업뿐만 아니었다. 당시 일본은 아시아 최강의 ‘소프트 파워’ 보유국이었다. ‘고이비토요’를 부른 이쓰와 마유미, ‘돈보’의 나카부치 쓰요시로 대표되는 일본 가요는 한국에서도 커다란 팬덤을 쌓고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는 필독서처럼 여겨졌다.
내가 ‘일제 콤플렉스’에서 벗어난 시기는 2010년 전후쯤이었던 것 같다. 한국 경제가 선진국과 어깨를 견줄 만한 수준으로 성장하고, 구매력도 일본을 따라잡으려던 시기였다. 개인적으로는 ‘위시 리스트’에만 존재하던 ‘명품’을 조금 무리하면 살 수 있게 된 시기이기도 하다. 특히 한국산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의 성능이 일취월장하면서 일제는 내 관심사에서 가뭇없이 사라졌다. 어쩌다 일제 브랜드를 구입해도 유니클로처럼 저렴하고 막 사용할 수 있는 생필품이 전부였다.
엄밀히 말하면 일제의 본질은 ‘짝퉁’이다. 유럽산이나 미국산 명품을 베낀 것들이 대부분이다. 색다른 기능에 스펙도 최고 수준이지만 실제 사용해 보면 그 제품의 존재 이유나 본질을 놓친, ‘웃자란 가지’인 경우가 적잖다. 오디오 마니아들이 마크레빈슨이나 스투더, 윌슨오디오 같은 서구권 브랜드를 찾는 이유다. 피아노는 스타인웨이나 뵈젠도르프, 시계는 롤렉스 또는 오데마 피게가 최고 반열에 자리 잡고 있다. 자동차도 그렇다. 일본차는 포르셰와 벤츠에 견줄 바가 못 된다.
내가 일제 구매에 거부감을 느끼는 또 다른 이유는 일본 시장의 지독한 배타성과 ‘혐한의 소비’ 때문이다. 1억3000만명 가까운 인구를 가진 일본 시장에서 한국산 자동차는 1년에 버스 몇 대를 제외하고는 팔리지 않는다. 사막과 북극에서도 차를 파는 현대차가 포기한 몇 되지 않는 나라가 일본이다. 삼성은 일본으로 수출하는 스마트폰에 삼성 로고를 넣지 않고 갤럭시만 새겨 판다. 품질은 차치하고 한국 제품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이처럼 한국산이 일본에서 멸시를 당하고 있음에도 올 들어 지난 9월까지 일본 브랜드 수입차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6% 늘어난 1만5328대 판매됐다. 흔히 일본차는 가격에 비해 품질이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여부를 떠나 그런 잣대로 구입했다면 합리적인 소비를 지향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이 수출을 규제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합리적인 소비는 ‘현명한 소비’와 등가 교환 대상이 아니다.
일본은 강제징용 같은 과거사 문제를 부정하고, 무역 보복으로 한국을 굴복시키려 하고 있다. 수출 규제를 시작한 아베와 후임자 스가가 퇴진하고 기시다 후미오 내각이 출범했지만 기조가 변한 건 없다. 우리는 지금 일본과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다. 올바른 역사인식으로 무장한 냉철한 소비가 필요한 오늘이다.
김준 경제에디터 j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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