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환의 지방시대] 넓고도 꽉 찬 '만원 서울' 경기로 50년 연속 영토 확장

오영환 입력 2021. 10. 15. 00:31 수정 2021. 10. 15. 0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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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본 수도권 패권사


서울은 팽창했고, 경기·인천을 더한 수도권은 인구 불패신화를 쓰고 있다.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용산구와 서초구. [연합뉴스]
‘서울을 사수하자. 어떻게 올라온 서울 길이었던가. 어떻게 버티어 온 서울의 6년이던가. 그리고 어떻게 얻게 된 이 자랑스런 도시의 시민이 된 영광이던가. 그것을 다시 잃게 되어서는 안 된다. 다시 쫓겨나게 되어서는 안 된다. 친척과 친지가 없음으로 하여 내가 이 자랑스런 도시의 시민이 되고자 겪어야했던 수많은 고초들을 자손만대 나의 후손들과 이웃들에게는 다시 겪게 하지 말아야 한다.’

소설가 이청준(1939~2008년)이 문단 데뷔 시절을 되돌아보면서 1977년에 쓴 글(연보)은 비장하다 못해 전투적이다. 전남 장흥 출신인 그는 광주에서 중·고를 나와 서울대 4년생이던 1965년 단편 ‘퇴원’이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이청준의 회고는 1960년대 학업과 취업차 서울로 떠난 지방 젊은이의 심정을 웅변한다. 서울은 성공의 꿈과 퇴출의 두려움을 함께 먹고 자기 증식했다. 인프라의 집중은 집중을 불렀다. 한국 근대화·산업화의 기관차로 성장해갔다. 서울은 물심양면의 거대 블랙홀이 됐다.

「 지방은 젊은이 유출로 주변부 전락
초저출산율의 수도권 집중 해소가
전체 출생아 감소 완화하는 출발점
지방도 폐쇄적 토착 문화 깨뜨리고
서울 사람 이주하는 도시돼야 생존

1960년대 중반 이호철의 장편 소설 『서울은 만원이다』 그대로다. ‘서울은 넓다. 아홉 개의 구(區)에, 가(街), 동(洞)이 대충 잡아서 삼백팔십이나 된다. … 그러나 이렇게 넓은 서울도 삼백칠십만이 정작 살아보면 여간 좁은 곳이 아니다. 가는 곳마다, 이르는 곳마다 꽉꽉 차 있다. 집은 교외에 자꾸 늘어서지만 연년이 자꾸 모자란다. 일자리는 없고, 사람들은 입만 까지고 약아지고, 당국은 욕사발이나 먹으며 낑낑거리고, 신문들은 고래고래 소리나 지른다.’ 넓고도 좁은 서울, 일자리 부족, 집중의 폐해는 60년 전이나 지금이나 오십보백보다.

서울을 떠받친 것은 지방이다. 지방의 노동력·에너지·식량 공급 없는 서울은 상상조차 어렵다. 서울시가 정도(定都) 600년인 1994년에 벌인 서울 토박이 찾기 사업 결과를 보자. 토박이 기준은 ‘1910년 이전 한성부(漢城府)에 정착한 선대들의 후손 중 서울시 행정구역 내에 계속 거주해오고 있는 시민’이다. 두 달 동안 신고를 받은 결과 3564가구 1만3583명이 토박이로 선정됐다. 당시 서울 인구의 0.12%였다. 순수 서울 혈통은 극소수다.

송은영 박사는 서울이 이주민의, 이주민에 의한, 이주민을 위한 도시라고 말한다. 김성룡 기자

『서울 탄생기』(2018년, 푸른역사)의 저자 송은영 연세대 국학연구원 전문연구원(문학박사)은 이 서울을 두고 이주민의, 이주민에 의한, 이주민을 위한 도시라고 말한다. 이주민들이 만든 정체성으로 채워져 있다고도 했다. 책은 문학 지리적 관점에서 1960~70년대 소설 110여 편을 통해 서울의 사회사를 추적한 문제작이다.

Q : 이주민의 정체성이라는 말이 흥미롭다.
A : “서울의 현대사는 지방민의 이주사이자 팽창사 그 자체다. 인구의 95% 이상이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사람들이다. 이들은 서울 토박이와 다른 의미로 ‘서울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만들었고, 자신들이 살아온 지역의 문화를 서울로 끌어들이고 융합시켜 새로운 서울을 만들었다. 누구든 서울로 가서 자유와 기회를 누릴 수 있다는 환상은 앞으로도 서울을 팽창·성장시킬 원동력이다. 이 점은 지방 도시도 고민해야 할 문제다. 앞으로 서울 사람을 포함한 이주민의 도시가 돼야 생존할 수 있다. 지역의 토착 문화와 폐쇄성을 깨뜨리면서 새롭고 개방적 로컬리티(locality)를 만들 준비가 돼 있는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Q : 과거 소설이 그리는 서울 흡인력의 요체는.
A : “1960~70년대 통계를 보면 서울 이주 요인의 80% 이상이 경제적 이유였다. 그러나 당시 소설 속 주인공들은 돈을 벌어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는 경제적 이유가 종종 다른 이유와 결합해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들은 지역사회의 촘촘하게 얽힌 인간관계와 고루한 규범에서 벗어날 자유를 찾아서, 고급 문화부터 저급 문화까지 다양한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싶어서, 또는 자신과 자식에게 교육의 기회와 경제적 안정이라는 미래를 선사하기 위해서 상경했다.”

수도권 인구 추이와 비율

Q : 현재와 비교해본다면.
A : “지금의 청년들도 마찬가지 이유로 서울로 오고 있다. 하지만 60~70년대의 상경 1세대는 자식에게 서울 출신이라는 지위를 물려준 뒤 그 과거를 잊어버렸고, 부모덕에 서울이 고향이 된 2세대와 3세대는 원래부터 서울이 자신의 공간이라고 믿는다. 소설 속 주인공들이 들려주는 과거의 역사는 현재 청년들의 고단한 삶이 바로 1세대 상경민이 겪어야 했던 역사의 반복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Q : 주택난과 내 집 마련의 꿈은 과거나 지금이나 한가지다.
A : “60~70년대는 ‘서울 하늘 아래 저 많은 불빛 중에 왜 내 방의 불빛 하나는 없는가’ 탄식한다는 점에서 지금과 비슷하지만, 주거 상황은 지금과 아주 달랐다. 당시 서울에 갓 도착한 사람들은 친척 집이나 친구 집을 전전하거나, 심지어 건너 아는 사람이 있으면 친분이 없어도 신세를 졌다. 가족 단위로 상경한 사람들은 산기슭이나 천변, 기차역 주변 같은 국공유지에 천막이나 판잣집을 만들어놓고 살았다. 주택난과 주거 불안은 6·25 전쟁 이후 서울이 한 번도 해결한 적이 없는 난제였고, 자기만의 방 또는 내 집에 대한 갈망은 지금보다 더 강렬했다.”

권역별 인구 순이동(유입·유출) 추이

Q : 서울은 교외로 팽창했고, 인구 이동 측면에서 수도권은 불패의 신화를 쓰고 있다.
A : “서울의 인구 흡수와 수도권의 팽창 문제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지방 도시는 토박이 청년들이 평생 그 지역에서 일하는 것을 상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모두가 서울로 가고 싶어하는 현재에는 불가능하다. 오히려 인구 유출도, 유입도 많아 이주와 이동이 자유로운 도시가 수도권 또는 다른 지역의 청년들을 흡수하는 데 용이하다고 본다. 다른 하나는 지방 도시 발전과 일자리 창출 방안을 논의할 때 20~30대 남성 청년이 아니라 여성·어린이·노인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점이다. 여성이 취업에서 억압이나 차별을 느끼지 않고 어린이를 안전하게 키우고 교육할 수 있는 도시라면, 노인들이 서울로 가지 않아도 될 만큼 병원과 공원이 확충되어 있다면, 결국 누구라도 그 도시에서 살고 싶어 할 것이다. 사회적 약자의 최저선을 올리는 일이 지역사회 전체를 살리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서울은 통계상 이제 이주민의 도시가 아니다. 2015년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를 보자. 서울 인구 951만명 가운데 47.9%가 서울 태생이다. 80년의 41.5% 이래 상승곡선이다. 나머지는 경기 7.9%, 전남 7.6%, 전북 5.8%, 충남 5.2%, 경북 4.8%, 강원 3.3%, 경남 3.1%, 충북 3.0% 순이다. 서울은 경기와 인천에 대해선 인구 순유출(전입〈전출) 도시이기도 하다. 경기는 이동 통계를 낸 1970년 이래, 인천은 경기에서 분리된 81년 이래 계속 서울 인구가 순유입됐다.

반면 서울은 영호남 인구의 순유입지다. 1970~2020년의 50년간 경북과 경남 인구는 단 한 해의 예외도 없이 서울로 순유출 됐다. 이 기간 전남은 2015년 단 한 차례, 전북은 2011년과 2015년 두 차례만 서울 인구가 순유입 됐고, 나머지는 전출 초과였다. 전남·북의 서울 인구 순유입은 공공기관 이전과 맞물려 있고, 그나마 규모는 864명에 불과하다. 10~30대의 수도권 순유입 고착화는 더 큰 문제다. 2020년 연령별 이동을 보면 수도권은 10·20·30대가 전입 초과였고, 다른 연령층은 전출 초과였다. 호남권(광주·전남·전북)은 10·20·30대가 순유출 됐고, 다른 연령층은 순유입됐다. 영남권(부산·울산·경남·대구·경북)은 전 연령층에서 순유출을 기록했다.

인구 흐름은 서울 확장을 통한 수도권 패권 형성사에 다름 아니다. 국토 면적의 12%인 수도권에 인구의 절반이 넘어섰다. 국가중추기능, 상장기업 본사, 주요 대학과 의료·문화 시설과 연구개발 역량, 고급 일자리가 쏠려 있다. 지방은 젊은이가 빠져 소멸로 치닫는다. 수도권 승자, 지방 패자의 중심과 주변 구조는 견고하다. 나라 전체론 합계출산율이 인구가 쏠린 서울(2020년 0.64)과 대도시권이 전국 평균(0.84)을 밑돌아 저출산을 부채질하는 악순환에 빠졌다. 여기에 고령화 물결은 수도권에도 밀어닥치고 있다. 30년 후 한국 사회는 지속 가능할 것인가. 수도권 패권 종식과 지방 거점 도시들이 반짝반짝 빛나는 분산형 국토는 그 출발점이다.

오영환 지역전문기자 겸 대구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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